우리는 한때 어렸기 때문에 - [스포] 아유고삼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으며 한 아이의 내적 성장을 다룬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다. 자살, 왕따, 집안의 어려움, 범죄 이 중 어느 것과도 엮이지 않는 작품을 만든다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드라마틱한 성장에 가장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전개가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이야기 없이 드라마틱한 작품을 만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유고삼]은 땀냄새로 코끝이 시큰한 프롤로그와 다르게 고3이 된 아이들이 겪는 내적 갈등과 주변 인물들의 방황에 대해 다룬다. 이 과정은 당연히 드라마틱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이기에 나는 작품을 보는 내내 정말로 몰입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대학 진학으로 열등감을 느낀 아버지는 술에 취한채 집에 들어와선 핸드폰을 쳐다보는 아들에게 폭언을 내뱉는 다. 이에 아들은 충동적으로 집을 나가고, 이때가 수능이 3일 남은 시점이었기에 학교며 가족들이며 발칵 뒤집힌다. 자 이제 여기서 드라마틱한 전개는 어떤 전개여야 할까. 아들이 조폭과 얽힌다? 어마어마한 범죄에 휘말린다? 자살 시도를 한다. 어느쪽이든 극적인 이야기겠지만, 작품은 그런 걸 보여주지 않는다. 집을 나가면서 우리가 얼마나 주인공을 내몰았던가 고민하는 부모와, 자신이 옳은 일을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선생님을 보여준다.
이건 참 재밌는 이야기다. 작품은 심심하리 만큼 평탄하게 흘러가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그 편안함이 우리에게 불안함을 가져다 준다.너무 무사안일하게 지내는 주인공의 모습이 되려 불안한 것이다. 왜일까.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고, 주인공은 건강한데도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주인공의 모습이 우리에게 공감을 전해줄만큼 현실적이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여기서 현실적이란, 가출하고 학교 옥상에서 컵라면을 끓여먹는 모습이 아니다. 공부는 하고 싶지 않은 데 그렇다고 다른 하고 싶은게 있지도 않은 그 불안함. 어중간하게 반항하려드는 그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어릴적에 반항해본 기억이 있는가. 사실 나는 지금도 사회복지학이 나와 맞는지 고민 중에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꽤나 시간이 흘렀건만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아직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이다. 고등학생 때 하는 고민은 으레 그런 것이다. 내가 지금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것인가. 작품은 네비게이션을 비유로 들며. 예전엔 내가 아는 길이라는 게 있었는데 지금 우리는 맹목적으로 누군가의 지시를 따를 뿐이라고 아쉬워한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주인공은 당연히 반항하지만 무엇을 반항해야할지 아직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선생님이며 부모가 악할수 없다. 악하다기 보단 자신이 믿는 바가 명확하기에 벌어진 갈등이란 걸 강조한다. 아이는 뭘 할지 모르면서 공부만 강요하는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생각하고, 부모는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부를 이야기 한다. 갈등은 여기서 벌어지고, 둘 모두 옳고 그름이 있기에 작품도 우리도 쉽게 누구를 어떻다 단정할 수 없다.
이 대립 구도는 정말 흥미롭다. 학생이 자기 주관을 제대로 밝히고 선생이 그 의견에 제대로 논박하는 만화가 얼마나 됐던가. 그만 수능 보러 가자고 말하는 선생님에게, 이대로 돌아가면 난 그냥 철없는 아이일 뿐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해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나름대로의 성숙함을 지닌 아이의 모습이었다.
둘 다 그른 만화는 그리기 쉽지만 둘 다 옳은 만화는 그리기 어렵다. 대립한다기 보단 부딪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구도로 만들어낸, 조금은 만화같은 우리네 모습은 정말이지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다. 비유를 통한 연출부터 과거를 매끄럽게 이어나가는 서사 전개까지 모자란 부분이 하나 없었고 짧게 나타나는 캐릭터 개성까지 잡아낼 줄 아는 작품이었다. 참 좋은 작품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아쉬운게 하나 있었다면 경찰서에서 필요한 순간 제깍제깍 나타나서 보조 설명을 해주는 등장인물들이 조금 거슬렸다고 해두자.그 외에 사소한 결점이 있다면 넘어가도록 하자. 가끔은 그럴 때도 있어야 하는 법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