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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단편만화 모음집 - 시를 그리는 그녀의 이야기

위성 | 2015-09-03 23:02

 

 

 

공부는 안하고 만화책이나 본다고 아들 놈 등짝을 후려치던 부모님들은 반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절에도 만화는 충분히 예술적인 가치를 생산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면 환쟁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기생이라던 고릿적 시절의 편견은 이제 접어야 할 때가 아닐까.

 

 고은정 작가는 이런 어른들에게 먼저 추천해 주고 싶은 만화를 그려낸다. 시를 메인 재료로 거기에 어울리는 책과 영화와 음악을 곁들인, 다 보고 난 뒤에는 든든하게 잘 먹었다는 기분이 드실 수 있는 만화를 선보이겠다고 담담히 선언하는 작가님. 그 모습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단순히 그녀가 즐길 거리는 만드는 것 이상의 철학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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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거나 이 웹툰은 시작부터의 주제가 시여서 그런 걸까. 그 비유부터 시적인 표현으로 단편만화 모음집의 포문을 연다. 마치 오랫동안 갈고 닦은 아우라가 느껴지는 문학 작가처럼 말이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이제 막 시작한 신인에 불과하다는 점인데 그런 면에서 볼 때 웹툰의 순기능이 제대로 발현된 케이스가 아닐까 한다. 숨은 고수들의 등용문을 마련해주는 것과 동시에 그 폭을 좁게 잡아 등수를 매기지 않고 조금 더 넓게 포용한다는 것 말이다.

 

 총 열 두 편으로 이루어진 이 단편 모음집은 마치 스티븐 킹의 단편 모음집을 읽었을 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상 속에서 어딘가 기묘한 점들이 커다랗게 부각되어 있고, 나의 시선이 왜곡된 것인지 세상이 왜곡되어 버린 것인지 알 수 없는 물음표들이 각 장마다 둥둥 떠다니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단편을 꼽자면 열역학 제2 법칙인데 희망과 절망, 그리고 다시 희망을 그리는 방식이 굉장히 고전적이면서도 예쁘게 그려져 있다. 살랑살랑 봄빛에 몸을 흔들며 거리를 수놓는 벚꽃들처럼. 져버릴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4월이면 다시 꽃봉오리를 피어 올리는 그 꽃들처럼. 인간 역시 언제나 절망 속에서도 다시 살고, 사랑을 한다.

 

 나는 몇 컷 되지 않는 한 페이지의 단편 웹툰에서 감수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문구와 간결한 그림들을 보는 것이 꽤나 즐거워, 결국 코인을 써가며 마지막 편까지 천천히 정독을 하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소장해 두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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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무색을 띄고 있는 것처럼 하얗게 표현된다. 컬러가 등장하는 건 거의 없는 셈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조금 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작가가 읊조리는 하나하나의 문구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한 시도 또한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져 창백한 그림들의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마지막 웹툰까지 모두 읽고 난 뒤에는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말했던 것들이 이야기에 잘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먹은 뒤에 든든할 뿐만 아니라, 읽는 동안에도 한 입 한 입이 모두 즐거웠고 맛있었다.

 

 원하는 바를 글과 그림으로 충분히 표현하는 걸 보니 고은정 작가의 차기작들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바로 페북까지 찾아보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신인작가에게 제대로 매혹당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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