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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어 삼키다 - 여전히 나를 찌르는 부서진 사랑의 조각들

위성 | 2015-09-03 23:56

 

 

 

양아치들의 사랑이란 건 어떤 걸까. 다를까? 아니면 감정을 분출하며 폭주하듯 뜨겁게 치솟을까. 이 웹툰은 ‘씹어 삼키다’라는 제목에서부터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더니 이내 깔끔한 문장에 인물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감수성을 제대로 자극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라디오에 잡히는 잡음처럼 별 의미 없이 모아지는 것 같지만, 조금씩 흩어져 있는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모이면 점차 그들의 아픔이 또렷하게 감지된다. 겨우 초반부에서 말이다. 아, 참고로 이 웹툰은 BL, 그러니까 boy`s love. 남성 간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다.

 

 그럼 처음 한 질문을 조금 바꿔 다시 이야기 해볼까. 동성의 사랑이란 건 어떤 걸까? 비밀스러울 수밖에 없고, 고난을 예측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사랑과 같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 핑크빛이라면 동성애는 그보다 붉은 핏빛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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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학년이 된 태화는 양아치 생활을 접고 조용히 입 닥치고 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 그와 한반이 된 색기 넘치는 예쁘장한 또 다른 양아치, 민재. 여기까지 들으면 거친 남자와 곱상한 남자애가 남들 눈 피해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구나 싶겠지만, 작가는 좀 더 인물들의 내면을 가까이서 훑어 내리며 내 예상을 뛰어넘는 감정의 깊이를 보여준다. 여기서 작가님께 사과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BL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프롤로그를 클릭했던 나를 용서 하소서. 작가님 덕분에 그 편견을 깨게 되었으니 감사하는 마음 또한 받아주시길.

 

 흑백의 그림체를 보다, 문득 어린 시절 미술 시간에 데칼코마니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똑같은 날개를 가진 나비가 펼쳐져야 하는데 이상하게 한 쪽 날개가 상해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고루 힘을 주어 종이를 접지 않아 물감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접어 누른 뒤 펼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보니 하얀 크레파스로 무언가를 그렸던 스케치북이었다. 그것을 찢어 썼으니 양쪽이 같은 그림이 나올 수가 없었다. 둘은 그런 그 때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한쪽 날개가 상한 데칼코마니. 한쪽은 날고 싶어 퍼덕이고, 한쪽은 퍼덕여도 날 수 없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래봐야 찢어버리면 그만일 청춘 속에 갇힌 종이 쪼가리 말이다.

 

 초조하고 꼴사납다고 말하는 태화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자기 위안을 하며 발버둥치고, 민재는 상처를 고스란히 내놓고 벌레가 꼬이도록 자신을 내버려 둔다. 그러다 깨닫는다. 혼자 퍼덕거리며 날아가 버리기엔 상대를 향한 마음이 너무나 무거워져 버렸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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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중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낮은 따뜻했고, 밤은 쌀쌀한. 계절과 계절의 중간쯤에.’

 

 사랑도 그렇다. 따뜻해서 한 꺼풀 벗으면 금세 감기에 걸리고 마는 변덕스러움. 시절과 시절의 어디쯤에서 또 나를 아프게 하려고 기다리니 말이다.

 

 당신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금기를 피할 수 없어 온몸으로 부딪혀 깨지고 멍들고 피 흘려 만신창이가 되어도 상관없는 그런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는지. 하나하나 조건을 따지며 스펙 미달이면, 즐기다 끝낼 인연 정도로 취급하는 요즘 세상에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조금은 부러웠다.

 

 ‘우린 미쳐도 된다는 허락을 서로에게 얻었다. 모든 게 무너지는 신호탄이었다.’

 

 그런 사랑을, 해 보았다는 사실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본능으로 씹어, 삼켜, 보았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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