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디 씬 - 떠나지 못하는 영혼을 달래 주세요
기억나지 않는 꿈을 꾼 다음 날은 어쩐지 기분이 찜찜하다. 건망증에 걸린 것처럼 조금 전까지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무언가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일어나면 상쾌한데, 방금 전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던 어떤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그 때부터 하루 종일 까마득하게 먹구름이 낀 하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소개하려는 웹툰의 제목 얼레디 씬은, 이미 본 듯한 풍경을 말한다. 처음 보았는데 왜인지 낯설지 않은 순간 말이다. 이 설명 어디선가 본 적 있지 않나? 바로 데자-뷰다. 동생 소원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 예지몽을 꾼다. 그런데 대부분의 꿈은 잠에서 깨는 찰나의 순간 휘발되어 날아가 버리고, 몇몇 장면들만 남게 되는데 이것을 그려 다음 날 일어날 일의 단서로 삼는다.
어린시절 소망과 소원 자매의 부친사로, 처음부터 어머니가 없었던 쌍둥이 자매는 피붙이라고는 단 둘밖에 없는 천애고아가 된다. 그 둘은 눈물을 훔치며 두 손을 꼭 붙잡는다. 복수를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소녀들의 능력이 비범하다. 동생 소원은 예지몽을 꾸고, 그걸 바탕으로 언니 소망은 퇴마를 한다. 그리고 한 맺힌 동물의 령이 떠도는 곳에서 만나게 된 류 진. 퇴마가 아니라 아예 령을 죽이려는 그를 방해한 소망은 쓰러지는데, 왜인지 그는 이미 소망과 소원에 대해 알고 있는 듯하다. 잠에서 깬 다음날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남의 집에서 함께 다과를 하고 사과를 썰고 커피까지 정성스레 만들어주며 놀라운 친화력을 발휘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이 쌍둥이 자매들도 알고 있는 류 현의 동생이다. 그와의 사연은 대체 무엇일까. 또 류 현과 류 진 사이에서 있었던 일은.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몇 개씩 포개지면서 이야기는 하나의 설계도가 되어간다.
구성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워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이 웹툰의 미덕은 단순히 자극적인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보다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영혼 하나, 하나에 담겨져 있는 사연이다. 한 맺힌 영혼들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에서 울부짖는 데는 다 그네들만의 이유가 있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각각의 스토리들이 꽤나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 영혼들을 달래어 성불시키기 위해 주인공들은 고군분투한다. 물론 그 대가로 돈을 받기는 하지만, 그건 일종의 희생과도 직결된다. 소방서에서 일하는 소방관들은 돈을 받고 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불을 끄는 일은 봉사정신과는 상관이 없다, 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인물들은 밤마다 괴로운 꿈을 꾸고, 타인의 죽음을 대신 경험하고, 무시무시한 영혼들과 대적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쓰는 등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간다.
조금 어려웠던 것은 이야기가 조금 두서없이 진행이 된다는 점이다. 중심인물들의 과거와 현재가 오가기도 하고, 주변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가 오가기도 한다. 또한 그 정체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다른 세계의 존재임이 분명한 캐릭터들이 수수께끼처럼 이야기의 중간 중간 등장해 흐름 사이사이에 징검다리처럼 자리 잡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 때문에 잠시 흐름을 놓기도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있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만약 서늘한 여름의 끝자락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 중이신 분들이 있다면 바로 이 웹툰, 얼레디 씬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