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문명 속에 은밀히 암약하는 초월적인 존재들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따분한 도시의 숨겨진 곳에 정상과는 거리가 먼 괴물들이 득실거리고, 괴물들끼리 혹은 인간들과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인다거나 하는 이야기 말이다. 불빛이 환하게 밝히고 있는 거리를 사람인 양 활보하는 이면의 주민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흔히 ‘어반 판타지(Urban Fantasy)’ 라고 부른다.

 

흡혈귀(Vampire)는 어반 판타지의 세계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종족의 하나이다. 오랫동안 판타지 창작물 속을 거닐면서 클리셰와 설정이 쌓여 설정을 짜는 데 용이하고, 탄탄한 팬층이 확보되어 있으며, 일반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덕분일 것이다. 물론 안이한 작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처럼 클리셰에만 의존하는 뱀파이어물은 뱀파이어라는 매혹적인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그저 지루할 뿐이지만 말이다.

 

 

 

 

웹툰 ‘뱀파이어(제목의 전부다)’ 도 어반 판타지에, 흡혈귀를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웹툰은 좋은 흡혈귀물이 대체로 그렇듯, 어느 정도는 그간 축적된 설정에 의존하면서도 나름의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이 세계에서 뱀파이어들은 아주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들과 역사를 함께한 존재들로, 언급된 내용으로 짐작하건대 그 이질성으로 인해 인간들과 끊임없이 다툼을 벌여왔던 것 같다. 도시에서 공존하는 인간(혹은 일반 구성원)과 뱀파이어 같은 괴물들 사이의 갈등은 어반 판타지의 정통이다. 끝나지 않은 전쟁에 지친 뱀파이어들은 인간들과 타협을 벌인다.

 

그 결과, 뱀파이어의 능력은 제약을 받게 되고 인간과 비슷하게 변하며, 싸움은 어느 정도 일단락 된 것 같다.

 

 

 

 

이야기는 ‘하루’ 와 ‘한희’ 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환희는 매우 특별하지만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평범한 뱀파이어다. 그는 담당 주치의의 관리를 받고 있으며 인간 연구진에 의해 개발된 물건으로 힘을 봉인당해 있다. 당연히 인간들의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다. 하루는 인간들의 배려(?)를 받아 시장 근처에서 살고 있다.

하루는 고등학교 여학생으로 노래를 잘하고 가수를 꿈꾸지만 평범한 여고생이다. 작품에서 묘사되는 성격을 보면 상당한 왈가닥이며 가수를 꿈꾼다지만 사고만 치고 다니는 아버지 때문에 매번 고생하며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길거리 공연을 하는 실정이다.

 

 

 

 

한희는 원칙적으로 관리자들의 ‘허가’가 없으면 힘을 해방시킬 수 없지만 우연히 하루의 길거리 공연을 감상하는 순간 봉인이 풀리고, 한희는 하루를 주시한다.

 

만화를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흑색 위주의 채색이다. 물론 다른 색깔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제한적으로, 꼭 필요한 것 같은 부분에만 사용된다. 대부분이 검은색과 하얀색으로만 이루어진 만화 속 세상은 어반 판타지 특유의 어두우면서도 날카로운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다.

전투 묘사도 이와 맞물려 현대 문명의 뒷면에서 은밀히 살아가며 갈등하는 뱀파이어들의 현실을 대변하는 듯하다. 흑백 위주의 채색과 과감히 생략되는 배경, 그리고 격렬한 움직임까지 뱀파이어들의 싸움은 말 그대로 먹잇감을 두고 다투는 야수들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스토리의 중심 축인 뱀파이어와 인간, 그리고 뱀파이어들끼리의 갈등 또한 앞서 언급한 대로 어반 판타지의 정통을 따르고 있다. 흡혈귀와 인간은 전혀 다른 종족이고, 흡혈귀들은 개개인의 역량은 인간을 훨씬 앞서지만 머릿수와 문명의 발전 속도에서 인간에게 훨씬 뒤지고 있다. 이때 인간들이 매력적인 제안을 내놓고 흡혈귀들은 자신들의 힘을 내려놓고 인간과 타협할 것인지 아니면 본연의 정체성을 지킬 것인지를 두고 격렬하게 갈등한다. 두 종족 간의 화합은 표면적으로 ‘공존’ 이라는 그럴듯한 표어를 내세우지만 양 쪽 모두 숨겨둔 꿍꿍이가 있음은 물론이다. 음모가 부딪히는 가운데 폭풍의 핵에 둘이 서 있는 하루와 한희는 인간과 뱀파이어, 두 종족을 사실상 적으로 돌리고 충돌한다. 웹툰 ‘뱀파이어’ 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