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동동 - 맛있는 돼지고기의 세계
조경규 작가의 다른 음식 만화를 보아왔다면, 이 돼지고기 동동 극 중에 나오는 아내와 딸의 모습이 그의 실제 아내와 딸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던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딸이나 아내가 하는 행동이나 대사의 묘사가 그가 사실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가족들을 관찰했다는 걸 알 수 있게끔 해준다.
아내는 사실 요리에 재주가 없다. 퇴근하고 나서도 요리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것도 괴롭지만, 엄마의 요리를 먹는 것 또한 괴롭다는 딸아이.. 그래도 아빠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퇴근길에 김치찌개를 하기 위해 돼지고기를 사달라는 아내의 요구에도 척척 알아서 고기도 사 오고 요리까지 하는 멋진 남편이자 아빠다. 일반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로 김치찌개를 끓이는 것도 좋지만, 뼈가 붙은 갈비로 김치찌개를 끓이면 뼈에서 단맛이 우러나와 더 맛이 좋다는 그만의 엄청난 노하우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뼈가 육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맛있게 모여 도란도란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찰나,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출을 하셨다며. 그런데 친엄마가 가출하셨다는 이유가 참 귀엽다. 다름 아닌 아버지가 어머니가 만드신 스키야키를 보며 고기만 먹지 말고 야채도 좀 먹으라고 했기 때문. 오래된 연인들이나 결혼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이 항상 그렇듯이 다툼의 주제는 사소한 데서 시작한다. 이유만 보면 별것 없지만, 그 안에는 사실 아내가 고기를 좋아하는데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고기가 더 먹고 싶어서 야채도 좀 먹으라 했을 수도 있고, 또 어머니가 사실 고기만 드시는 타입 일수도 있고.. 그래도 그게 서운한 날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딸과 아빠 얘기를 두런두런 하고 사위 얘기도 할 수 있는 것은 딸이 시집가고 나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래서 딸과 엄마는 친구 같다고 하나보다. 어머니와 순댓국도 먹고, 삼겹살도 구워 먹고.. 이렇게 먹을것 하나로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보니 먹는다는 것은 참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돼지고기에는 사람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트림 토판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어 꾸준히 먹으면 성격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우울증 같은 질병을 예방하는데도 좋다는 토막 상식이 매화 함께 들어있어 농림부 캠페인 만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조경규 작가는 정말 음식을 사랑하고, 그만의 음식 철학이 있다. 이런 정성과 사랑 때문일까? 그가 그리는 음식 그림들은 모두 아주 맛깔스럽고, 그 사랑이 듬뿍 묻어난다. 조경규 작가가 스토리를 풀어내는 방식은 그의 성격과 닮아있어 참 좋다. 있는 그대로, 포장하지 않고 캐릭터들의 성격을 표현한다.
사실 나쁜 캐릭터들은 미움을 받게 되어 있고, 생각 없는 캐릭터들도 미움을 받기 마련. 독자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스토리에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고, 그것이 필요하다 생각되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예전에 필자가 한 리뷰에서 예술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가 한가지 이상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예술의 목적 자체가 메시지나 느낌을 전달하는 것에도 있지만, 대중으로 하여금 틀을 깨는 발상 전환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전 미술 중에는 대부분 또라이 취급을 받던 것들이 현대에 와서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어버린 것처럼, 사회에 신랄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것도 예술가들이고, 통념을 바꾸는 것도 예술가들이다. 현재는 거친 반항의 시대를 지나 다소 평화에 안주하고 지내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있지만 조경규는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예를 들어 현재 건강하게 먹는 식습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거세지며 그의 웹툰 또한 여러 번 도마 위에 오른적이 있지만 그는 맛있게 먹는 것이 건강하게 먹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적 있다. 이 말도 맞는 말인 게 과거 언론에서 MSG가 몸에 해로운 조미료인 양 난리를 부린 적이 있는데 최근에는 자연식품에 모두 조금씩 들어있는 우리가 느끼는 ‘맛'의 진액 같은 것이라고 보도된 적이 있다. 이런 보도들을 볼 때마다 언론이 말한다고 그대로 믿는다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이 있는 편이 살아가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과거 사람들이 원자력에 대해 무지하던 시절 사람들은 그것이 피부와 건강에 좋다고 믿었고 회사들은 화장품, 장난감, 입욕제, 향수 등 여러 제품을 내놓았다. 해서.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가 지금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훗날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거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매일 챙겨 먹는 비타민 보조제들도 사실 세월이 지나면 옛날 사람들은 무지해서 비타민 보조제를 먹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자료가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오히려 이런 시대에 조경규 작가의 존재 자체가, 그의 작품 자체가 더 의미 있어지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행복하게 살기만도 모자란 삶. 뭣하러 머리 아프게 신경을 써가며 먹나. 필자는 조경규 작가의 모든 의견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무리한 요구에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음식에 대한 철학과 사랑을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관철하는 그가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