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연재시작일: 2017.02.06
1. 작품 소개<br/><br/>※ 본 도서는 ‘위험한 계약’ 1, 2권 합본입니다.<br/><br/>『오늘부터 내일까지는 엔젤의 시간은 내 거야.』<br/><br/><br/>답답한 한국의 일상에서 도망치듯 떠난 미국 여행, 그곳에서 정은은 마성의 남자 잭 휴즈를 만난다. 잭 휴즈의 끊임없는 구애 속에서 우연히 그가 자신을 속인 것을 알게 된 정은은 오해를 풀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br/>그런 정은을 따라온 잭 휴즈가 그녀에게 건넨 것은, 다름 아닌 한 장의 계약서. 두 달의 계약. 그 시간 동안 그가 원하는 것은 정은, 바로 그녀의 모든 것.<br/><br/><br/>『나는 계약서에 사인했어. 당신이 원하는 게 잭 휴즈라면서? 그럼 가져가보라고. 몸도 마음도 전부 다 가져가봐. 그럼 당신이 이기는 거야. 당신이 이기면 원하는 건 다 해주지. 내가 해줄 수 있는 한에서 말이야. 단 내가 내건 두 달 안에 해야 해.』<br/><br/><br/>2. 미리 보기<br/><br/>『나한테 할 말이라는 게 고작 그거였어?』<br/>『무슨 소리죠?』<br/>『쪽지에 쓴 거.』<br/>아차 싶었다. 그에게 지금 진실을 이야기해야 했지만 어쩐지 자신의 꼴이 우스워 보였다. 당장 동생들 학비가 급했고 생활비와 병원비까지 겹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말을 하면 솔직해질 수 있었지만 그에게 매달리는 수많은 여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다고 말을 안 하자니 그가 오해하는 것도 싫었다.<br/>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그가 뭔가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하얀 서류봉투였다. 정은은 기계적으로 봉투를 받았다. 서류가 들어 있음직한 봉투였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봉투를 열어 안에 있는 것들을 꺼냈다. 계약서라고 적힌 서류였다.<br/>‘뭐지? 우리 회사를 인수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는데 그 계약서인가?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거야? 이유가 뭐지?’<br/>정은은 서류의 맨 위에 적힌 이름을 보자 너무 놀라 입을 벌리고 말았다. 자신의 이름이었다. 자신에게 보내는 계약서였다. 그녀는 눈만 깜빡거리며 그를 응시했다. 그는 얼음이 들어가 있는 술을 마시는 것 같았다. 노란 액체가 잔 안에서 작게 파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br/>『읽어보고 사인해. 절대로 당신에게 불리한 계약서는 아니야.』<br/>『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br/>『읽어보라고 했어.』<br/>정은이 벌떡 일어나자 잭이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녀는 핸드백을 집어 들고 문으로 향했다. 뒤에서 그의 음성이 들렸다.<br/>『지금 가면 후회할 거야. 회사에서 당장 내일 사표를 내라고 할 테고 집은 경매에 들어갈지도 모를 테고 병원비도 내지 못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병원에서 나와야 할 거야. 게다가 동생들도 학교를 자퇴해야 할걸?』<br/>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많은 것들을 그는 한 번에 알아낸 모양이었다. 마치 그가 만들어놓은 덫에 걸린 사람처럼 정은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얼른 문을 열고 그에게서 벗어나야 했다.<br/>『길에서 구걸이라도 하면서 살 작정인가?』<br/>그의 마지막 말이 결국 그녀를 옥죄어 왔다. 정은은 망설이고 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뒤를 돌아 그를 보았다. 그는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어 앉아 그녀가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은은 정말이지 창피해서 죽고 싶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그에게 가는 대신 그 자리에 서서 그에게 들릴 수 있을 만큼의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br/>『정말 구걸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어떻게 하려고요? 구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게요?』<br/>그녀가 빈정거리자 잭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건 아닌가 싶었지만 정은은 이제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건네기로 한 쪽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엉뚱한 쪽지를 보고 화가 나 여기까지 자신을 찾아왔다면 분명 원하는 건 단 하나일터. 바로 자신일 게 뻔했다.<br/>그에게 내보일 것도 딱 하나, 자신 몸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지만 지금 우위에 있는 건 바로 그였다. 전에는 그녀가 우위에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br/>돈이 원수라는 말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절친한 친구인 수아에게 빌려도 무방했다. 수아라면 지금 정은에게 필요한 돈에 집까지 얹어서 줄 친구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친구에게 기대고 싶지 않았다. 친구를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건 아니다.<br/>그렇다면 지금 남은 방법은 딱 하나. 그에게 기대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그녀의 직장을 좌지우지할 위치에 있었다. 병원비를 빌리는 것도 아니었다. 생활비를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딱 하나 그녀가 계속 직장에 다니게 해달라는 것 정도는 해도 될 성싶었다.<br/>하지만 지금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게 두고 볼 사람 같이 보이지 않았다. 정은은 자신의 얼굴에서 감정을 싹 지워버렸다. 감정이 튀어나오면 될 일도 안 될 거다. 특히 그의 앞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br/>『농담은 그만해. 하나도 재미없어.』<br/>『그래요? 난 재미있으라고 한 소리였는데 안 그랬다면 사과하죠.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계약서 말고 따로 할 말은 없는 것 같은데요?』<br/>정은은 당당하게 말한 다음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br/>『수술비용은 어떻게 하려고?』<br/>‘망할. 젠장.’<br/>욕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하마터면 그녀가 아는 온갖 욕이란 욕은 죄다 쏟아낼 뻔했다. 물론 그는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눈치 빠른 그가 욕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br/>그는 아버지가 수술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이식수술이다. 한국에서는 한도 끝도 없이 기다려야 하는 수술이다. 물론 자식들이 서로 이식해드리겠다고 했다가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며 그런 소리를 할 바에는 다시는 병원에 오지도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br/>특히 정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동생들이 혹시라도 그런 마음을 품거든 안 보겠다고 전하라는 말도 꼭 하셨었다. 그런데 수술에 대해 안다는 건 이식수술이 가능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녀의 귀가 쫑긋해졌다. 머리로는 이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그녀의 심장은 다른 소리를 내라고 속삭였다.<br/>『안 되는 거 알면서 그런 말은 왜 해요?』<br/>『안 되다니?』<br/>그는 정말 모르는 얼굴이었다.<br/>『미국도 그렇겠지만 한국은 더 심해요. 이식수술 순서를 기다리는 것보다 하늘의 별을 따는 게 더 쉬울 거라고요. 그러니까 수술은 없다고 보는 게 나을 거예요.』<br/>『내가 할 수 있다면?』<br/>정은의 귀가 갑자기 커졌다. 그녀는 엄청난 효녀는 아니었다. 자신이 심청이가 아니니 인당수에 몸을 던질 일도 없었고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신장 하나를 내어준다는 것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물론 혈액형이 달라 그녀는 아예 제외대상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도 그의 제안은 그녀를 자석처럼 잡아당겼다.<br/>『할 수 있다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설령 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안 팔아요. 즉 나는 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했어요.』<br/>정은이 이를 갈며 외쳤다. 그러자 잭이 입술을 늘어뜨렸다.<br/>『언제 산다고 했어? 난 그럼 말 안 했어.』<br/>『그럼 아까 계약서에 쓴 건 뭐죠?』<br/>정은이 어금니를 사리물며 물었다.<br/>『사는 게 아니라 교환하자는 거였어.』<br/>『교, 교환?』<br/>『그래. 난 교환을 말하는 거였어. 대체 뭘 읽은 거야?』<br/>정은은 기가 막혔다. 그게 그 말이었다.<br/>“나 원 참. 누구를 약 올리는 거야? 이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br/>『영어로 하라고 했을 텐데?』<br/>그는 자신이 못 알아듣는 말을 중얼거리는 정은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정은은 소파 앞까지 다시 걸어왔다. 그녀는 계약서를 들어 다시 읽었다.<br/>정은과 잭이 맺는 계약서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기로 하는 내용이 주된 것이었다. 잭이 원하는 건 뻔했다. 바로 그녀의 몸일 테고 그녀가 원하는 건 바로 그의 돈이라고 생각할 게 틀림없었다.<br/>『내가 원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br/>『그건 거기 적으면 되는 거야.』<br/>『좋아요. 적죠. 대신 당신이 먼저 적어요. 그럼 나도 적을 테니까.』<br/>정은이 사악하게 웃었다. 잭은 자신의 양복 상의에서 펜을 꺼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펜을 사용하는 잭을 보며 정은은 참 잘난 사내라 생각했다.<br/>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그의 품에 안겨 그에게 키스를 받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화들짝 놀라 얼른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br/>『당신도 하지 그래?』<br/>그가 계약서를 내밀었다. 정은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계약서 아래에 잭의 조건이 적혀 있었다. 그녀가 눈을 여러 번 깜빡거리며 다시 읽고 또 읽었다.<br/>『이게 대체 뭐죠?』<br/>『말 그대로야.』<br/>『내 시간을 원한다니 그게 무슨 뜻이죠?』<br/>『딱 두 달이야. 그거면 돼. 일분일초도 다 내 거야. 물론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 그렇게 된다는 거지.』<br/>몸도 아니고 내 자신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달라니 이건 무슨 꿍꿍이인가 싶었다. 어쨌든 다른 것 보다는 나아 보이기도 하면서도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잠이 모자라 그런 건지 정신이 혼미하았다.<br/>『내 교환 조건이에요.』<br/>정은은 뭔가를 적어 잭에게 내밀었다. 잭은 계약서를 받아들자마자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다. 정은은 아까 마시다가 만 물을 다시 들이켰다. 얼음이 녹아 있어 더 차가웠다. 정신이 들게 하는 덴 이만한 게 없다.<br/>『좋아.』<br/>『뭐라고요?』<br/>정은은 당연히 거절할 줄 알고 핸드백으로 다시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br/>『대신 당신이 가져가봐.』<br/>『그게 무슨 뜻이죠?』<br/>정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br/>『나는 계약서에 사인했어. 당신이 원하는 게 잭 휴즈라면서? 그럼 가져가보라고. 몸도 마음도 전부 다 가져가봐. 그럼 당신이 이기는 거야. 당신이 이기면 원하는 건 다 해주지. 내가 해줄 수 있는 한에서 말이야. 단 내가 내건 두 달 안에 해야 해.』<br/>정은은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진 꼴이 되어버리자 입을 벌린 채 그가 일어나 자신의 옆자리에 앉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의 턱을 들어올렸다.<br/>『오늘부터 내일까지는 엔젤의 시간은 내 거야. 그동안 뭘 할지 고민해볼까? 이건 어때?』<br/>그가 키스를 시작하자 정은은 그제야 졸음이 싹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과 마음을 얻어야 계약서에 적힌 대로 서로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었다. 그것도 기회는 딱 한 번뿐이었다.<br/>위험천만한 계약서에 사인을 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정은은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버렸다.<br/>그는 그녀를 안아 올렸다. 그가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커다란 킹사이즈 침대가 있는 어둑한 침실이었다. 두 사람은 다음 날 아침까지 나오지 않았다.
1. 작품 소개※ 본 도서는 ‘위험한 계약’ 1, 2권 합본입니다.『오늘부터 내일까지는 엔젤의 시간은 내 거야.』답답한 한국의 일상에서 도망치듯 떠난 미국 여행, 그곳에서 정은은 마성의 남자 잭 휴즈를 만난다. 잭 휴즈의 끊임없는 구애 속에서 우연히 그가 자신을 속인 것을 알게 된 정은은 오해를 풀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그런 정은을 따라온 잭 휴즈가 그녀에게 건넨 것은, 다름 아닌 한 장의 계약서. 두 달의 계약. 그 시간 동안 그가 원하는 것은 정은, 바로 그녀의 모든 것.『나는 계약서에 사인했어. 당신이 원하는 게 잭 휴즈라면서? 그럼 가져가보라고. 몸도 마음도 전부 다 가져가봐. 그럼 당신이 이기는 거야. 당신이 이기면 원하는 건 다 해주지. 내가 해줄 수 있는 한에서 말이야. 단 내가 내건 두 달 안에 해야 해.』2. 미리 보기『나한테 할 말이라는 게 고작 그거였어?』『무슨 소리죠?』『쪽지에 쓴 거.』아차 싶었다. 그에게 지금 진실을 이야기해야 했지만 어쩐지 자신의 꼴이 우스워 보였다. 당장 동생들 학비가 급했고 생활비와 병원비까지 겹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말을 하면 솔직해질 수 있었지만 그에게 매달리는 수많은 여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다고 말을 안 하자니 그가 오해하는 것도 싫었다.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그가 뭔가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하얀 서류봉투였다. 정은은 기계적으로 봉투를 받았다. 서류가 들어 있음직한 봉투였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봉투를 열어 안에 있는 것들을 꺼냈다. 계약서라고 적힌 서류였다.‘뭐지? 우리 회사를 인수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는데 그 계약서인가?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거야? 이유가 뭐지?’정은은 서류의 맨 위에 적힌 이름을 보자 너무 놀라 입을 벌리고 말았다. 자신의 이름이었다. 자신에게 보내는 계약서였다. 그녀는 눈만 깜빡거리며 그를 응시했다. 그는 얼음이 들어가 있는 술을 마시는 것 같았다. 노란 액체가 잔 안에서 작게 파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읽어보고 사인해. 절대로 당신에게 불리한 계약서는 아니야.』『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읽어보라고 했어.』정은이 벌떡 일어나자 잭이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녀는 핸드백을 집어 들고 문으로 향했다. 뒤에서 그의 음성이 들렸다.『지금 가면 후회할 거야. 회사에서 당장 내일 사표를 내라고 할 테고 집은 경매에 들어갈지도 모를 테고 병원비도 내지 못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병원에서 나와야 할 거야. 게다가 동생들도 학교를 자퇴해야 할걸?』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많은 것들을 그는 한 번에 알아낸 모양이었다. 마치 그가 만들어놓은 덫에 걸린 사람처럼 정은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얼른 문을 열고 그에게서 벗어나야 했다.『길에서 구걸이라도 하면서 살 작정인가?』그의 마지막 말이 결국 그녀를 옥죄어 왔다. 정은은 망설이고 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뒤를 돌아 그를 보았다. 그는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어 앉아 그녀가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은은 정말이지 창피해서 죽고 싶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그에게 가는 대신 그 자리에 서서 그에게 들릴 수 있을 만큼의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정말 구걸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어떻게 하려고요? 구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게요?』그녀가 빈정거리자 잭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건 아닌가 싶었지만 정은은 이제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건네기로 한 쪽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엉뚱한 쪽지를 보고 화가 나 여기까지 자신을 찾아왔다면 분명 원하는 건 단 하나일터. 바로 자신일 게 뻔했다.그에게 내보일 것도 딱 하나, 자신 몸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지만 지금 우위에 있는 건 바로 그였다. 전에는 그녀가 우위에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돈이 원수라는 말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절친한 친구인 수아에게 빌려도 무방했다. 수아라면 지금 정은에게 필요한 돈에 집까지 얹어서 줄 친구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친구에게 기대고 싶지 않았다. 친구를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건 아니다.그렇다면 지금 남은 방법은 딱 하나. 그에게 기대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그녀의 직장을 좌지우지할 위치에 있었다. 병원비를 빌리는 것도 아니었다. 생활비를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딱 하나 그녀가 계속 직장에 다니게 해달라는 것 정도는 해도 될 성싶었다.하지만 지금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게 두고 볼 사람 같이 보이지 않았다. 정은은 자신의 얼굴에서 감정을 싹 지워버렸다. 감정이 튀어나오면 될 일도 안 될 거다. 특히 그의 앞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농담은 그만해. 하나도 재미없어.』『그래요? 난 재미있으라고 한 소리였는데 안 그랬다면 사과하죠.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계약서 말고 따로 할 말은 없는 것 같은데요?』정은은 당당하게 말한 다음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수술비용은 어떻게 하려고?』‘망할. 젠장.’욕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하마터면 그녀가 아는 온갖 욕이란 욕은 죄다 쏟아낼 뻔했다. 물론 그는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눈치 빠른 그가 욕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그는 아버지가 수술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이식수술이다. 한국에서는 한도 끝도 없이 기다려야 하는 수술이다. 물론 자식들이 서로 이식해드리겠다고 했다가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며 그런 소리를 할 바에는 다시는 병원에 오지도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특히 정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동생들이 혹시라도 그런 마음을 품거든 안 보겠다고 전하라는 말도 꼭 하셨었다. 그런데 수술에 대해 안다는 건 이식수술이 가능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녀의 귀가 쫑긋해졌다. 머리로는 이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그녀의 심장은 다른 소리를 내라고 속삭였다.『안 되는 거 알면서 그런 말은 왜 해요?』『안 되다니?』그는 정말 모르는 얼굴이었다.『미국도 그렇겠지만 한국은 더 심해요. 이식수술 순서를 기다리는 것보다 하늘의 별을 따는 게 더 쉬울 거라고요. 그러니까 수술은 없다고 보는 게 나을 거예요.』『내가 할 수 있다면?』정은의 귀가 갑자기 커졌다. 그녀는 엄청난 효녀는 아니었다. 자신이 심청이가 아니니 인당수에 몸을 던질 일도 없었고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신장 하나를 내어준다는 것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물론 혈액형이 달라 그녀는 아예 제외대상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도 그의 제안은 그녀를 자석처럼 잡아당겼다.『할 수 있다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설령 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안 팔아요. 즉 나는 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했어요.』정은이 이를 갈며 외쳤다. 그러자 잭이 입술을 늘어뜨렸다.『언제 산다고 했어? 난 그럼 말 안 했어.』『그럼 아까 계약서에 쓴 건 뭐죠?』정은이 어금니를 사리물며 물었다.『사는 게 아니라 교환하자는 거였어.』『교, 교환?』『그래. 난 교환을 말하는 거였어. 대체 뭘 읽은 거야?』정은은 기가 막혔다. 그게 그 말이었다.“나 원 참. 누구를 약 올리는 거야? 이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영어로 하라고 했을 텐데?』그는 자신이 못 알아듣는 말을 중얼거리는 정은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정은은 소파 앞까지 다시 걸어왔다. 그녀는 계약서를 들어 다시 읽었다.정은과 잭이 맺는 계약서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기로 하는 내용이 주된 것이었다. 잭이 원하는 건 뻔했다. 바로 그녀의 몸일 테고 그녀가 원하는 건 바로 그의 돈이라고 생각할 게 틀림없었다.『내가 원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그건 거기 적으면 되는 거야.』『좋아요. 적죠. 대신 당신이 먼저 적어요. 그럼 나도 적을 테니까.』정은이 사악하게 웃었다. 잭은 자신의 양복 상의에서 펜을 꺼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펜을 사용하는 잭을 보며 정은은 참 잘난 사내라 생각했다.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그의 품에 안겨 그에게 키스를 받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화들짝 놀라 얼른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당신도 하지 그래?』그가 계약서를 내밀었다. 정은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계약서 아래에 잭의 조건이 적혀 있었다. 그녀가 눈을 여러 번 깜빡거리며 다시 읽고 또 읽었다.『이게 대체 뭐죠?』『말 그대로야.』『내 시간을 원한다니 그게 무슨 뜻이죠?』『딱 두 달이야. 그거면 돼. 일분일초도 다 내 거야. 물론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 그렇게 된다는 거지.』몸도 아니고 내 자신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달라니 이건 무슨 꿍꿍이인가 싶었다. 어쨌든 다른 것 보다는 나아 보이기도 하면서도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잠이 모자라 그런 건지 정신이 혼미하았다.『내 교환 조건이에요.』정은은 뭔가를 적어 잭에게 내밀었다. 잭은 계약서를 받아들자마자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다. 정은은 아까 마시다가 만 물을 다시 들이켰다. 얼음이 녹아 있어 더 차가웠다. 정신이 들게 하는 덴 이만한 게 없다.『좋아.』『뭐라고요?』정은은 당연히 거절할 줄 알고 핸드백으로 다시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대신 당신이 가져가봐.』『그게 무슨 뜻이죠?』정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는 계약서에 사인했어. 당신이 원하는 게 잭 휴즈라면서? 그럼 가져가보라고. 몸도 마음도 전부 다 가져가봐. 그럼 당신이 이기는 거야. 당신이 이기면 원하는 건 다 해주지. 내가 해줄 수 있는 한에서 말이야. 단 내가 내건 두 달 안에 해야 해.』정은은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진 꼴이 되어버리자 입을 벌린 채 그가 일어나 자신의 옆자리에 앉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의 턱을 들어올렸다.『오늘부터 내일까지는 엔젤의 시간은 내 거야. 그동안 뭘 할지 고민해볼까? 이건 어때?』그가 키스를 시작하자 정은은 그제야 졸음이 싹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과 마음을 얻어야 계약서에 적힌 대로 서로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었다. 그것도 기회는 딱 한 번뿐이었다.위험천만한 계약서에 사인을 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정은은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버렸다.그는 그녀를 안아 올렸다. 그가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커다란 킹사이즈 침대가 있는 어둑한 침실이었다. 두 사람은 다음 날 아침까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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