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녹슨
-
끝나지 않는, 녹슨
교보문고
작품소개
연재시작일: 2015.04.27
『끝나지 않는, 녹슨 』은 주인공 미리와 비행청소년인 친구 서애, 종군위안부였던 서애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서 개인의 상처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다르지만, 동일하게, 어떻게 반복되는지, 현재까지 연원하고 있는 역사의 상흔을 그려낸 점을 높이 샀던 2011년 5.18문학상 수상작 「끝나지 않는, 녹슨」을 비롯해서, 그 전후로 문예지에 발표했던 소설들을 함께 묶은 책이다. 소설 속으로할머니! 다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위에 안개가 온통 뿌옇게 끼여 똑똑히 보이지는 않지만, 자그마한 몸매에 유난히 숱이 많고 까만 머리카락, 분홍색 입술과 하얀 얼굴,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 서애, 서애가 맞았다. 할머니! 분명히 서애가 저기 서서 너를 보고 할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너는 순간 당황했다. 서애가 어떻게 여기까지. 하지만 너는 곧 정신을 차리고 서애의 목소리를 따라 부둣길을 달려갔다.-「끝나지 않는, 녹슨」 서애는 할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했다. 남에게 당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상대를 짓밟아버리겠다고 했다. 서애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 친구인 너까지 이용한 측면도 있었다.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네게 온 것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답을 낼 수는 없었다. 어쨌든 너는 서애를 쫓아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서애는 언제나처럼 너에게서 또 멀어졌다.-「끝나지 않는, 녹슨」 옆 그네는 비어 있다. 그런데 김미자는 거기에 누가 타고 있기라도 하듯 다정스런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그네」 한 명의 그림자는 한 명의 그림자 속에 숨어있다. 한 명의 그림자 속에 묻혀버린 한 명의 그림자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시간은 언제쯤일까. 강물처럼 흐르는 게 시간이니 그 순간이 오긴 올 것이다. 혹은 서서히, 아니면 태초의 시간처럼 성큼 생겨나 자기를 가렸던 그림자를 오히려 덮치는 배반의 순간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그네」 그것은 이제 반듯한 대리석이 아니었다. 날이 밝아오면 경비의 손에 의해 쓰레기처리장으로 치워질 폐기물이었다.-「국민교육헌장은 잘 외우는지」어릴 때 나를 종종 괴롭혔던 기침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작은집에 가버리고 나면 집안은 메마른 우물처럼 휑했다. 오빠는 건넛방에 틀어박혀 공부를 했고, 어머니는 마실을 나갔는지 마루에도 기척이 없었고, 할머니와 언니, 나만 안방에 남곤 했다. 할머니는 아랫목에서 말없이 바느질을 하고 있었고, 나는 윗목에서 기침을 콜록거리며 언니와 인형놀이를 했다. 기침을 할 때마다 할머니가 끌끌거리며 혀를 찼다. 하지만 하루는 길었고, 기침은 내가 하려고 하는 게 아닌데 계속 나왔다. 그때처럼 내가 직접 선택을 한 게 아닌데, 남들이 정해놓은 대로 내가 선택 받는 입장이 되는 것, 그 거대한 불일치 앞에서 무력할 뿐인 나를, 그런 인간들을, 동정하는 것인가.-「국민교육헌장은 잘 외우는지」 간질거리며 이마를 짚은 손가락 사이로 연녹색의 아기 고사리 잎이 뻗어 나오고 있다.-「외면」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형상이 다시 겹쳐진다. 어쩌면 난 두려웠는지 모른다. 어머니처럼 살게 되는 상황에 내가 놓이는 일이 생길까봐. 그러고 보니 이게 더 신빙성이 있었다. 얼마 전 올케와 미도와 함께 산 아버지의 봄 잠바, 연한 푸른색이 아버지의 굵은 주름을 감춰줄 것 같았던 옷의 까끌까끌한 감촉이 손끝에 되살아난다. 아버지는 현실 속에 있었다. 오히려 나는 어머니의 환상을 껴안고 살아온 건 아닐까. 외출 준비가 점점 더 느려진다.-「외면」
Webtoonguide Popul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