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메 (한국문학전집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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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 (한국문학전집 433)
교보문고
작품소개
연재시작일: 2016.07.30
갓 둘레가 깔쪽깔쪽한 오십전짜리 은전 한 푼이 나의 총재산이었다. 이 오십전으로 서울까지의 삼백리 길 노자를 해야 했고, 이 오십전으로 백사지 땅이나 진배없는 서울에서 고학을 해야 했다. 아무리 물가가 싼 시절이라 하지마는 정말 터무니없는 공상이었다. 열세 살 때 일이다.

그때만 해도 집에서는 얼마간의 학비쯤은 보태어줄 수도 있는 형편이기도 했었다. 두 섬지기의 광작이었고 남한테 내어준 땅섬지기로 텃도지 들어오는 것도 약간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보조도 바랄 수 없이 일을 저지르고 집을 떠났었다. 서울공부 가는 것을 방해하는 형을 재떨이로 때리어 머리를 터뜨렸던 것이다. 아버지한테 붙들리기만, 하면 반은 죽는 판이다. 그날 밤을 메밀묵 장사 하는 복순네 집 벽장 속에서 새우고, 이튿날 새벽 먼동이 트기도 전에 길을 떠났던 것이다. 맨주먹으로라도 떠날 작정이었었다. 그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어머니가 오십전 한 푼을 주시면서,

"음성 가서 며칠 있다가 오너라. 끼니 거르지 말구 떡을 사먹는지 밥을 사먹든지 해."

이렇게 일러주신다. 아버지 성미를 아시기 때문에 어머니는 나보다도 더 겁이 나시는 눈치시었다. 처음 만져보는 닷 냥짜리다. 그때는 어린 생각에는 이 닷 냥만 가지면 조선땅이라도 살 수 있을 것처럼 내게는 큰돈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 해 설날 양직 분홍 두루마기를 새로 해 입었었다. 양직이 우리 시골에 처음으로 들어왔었다. 값이 비싸서 아무도 엄두도 못 내는데 어머니가 막내아들이라고 끊어주셨던 것이다. 그것을 입고 이화(모표)없는 마래기(모자)를 쓰고 나선 것이다.

집에서 이천까지는 백사십리나 된다. 장원까지는 지름길을 왔으니까 백이십리 폭이지만 열세 살 난 소년한테는 벅찬 길이었다. 그래도 그날로 이천까지 왔었다. 두 끼 먹고 하루 숙박에 한 냥(십전)이었다. 음성 외가댁에 가서 며칠 묵은 일은 있었지만, 집을 떠나서 객지에 나오기는 이것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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