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 미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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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 미로운
YES 24
작품소개
연재시작일: 2020.04.10
언젠가 한번은 마주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br/>살면서. 그래, 어쩌면. 하지만 이런 식은 결코 아니었다.<br/><br/>“의외네. 빨아 달란다고 빨아 주는 부류인 줄은 몰랐는데.<br/>빨기만 했겠어? 잘하면 아예 드러누워 박히기도 했을 거야, 그렇지?”<br/><br/>비딱하게 구는 그라도 상관없었다.<br/>도움이 필요했고, 결국은 얽히게 된 사이.<br/>시작과 동시에 확연하게 나뉘고 만 갑과 을.<br/>혼란스럽다. 의준이 제 부탁을 들어준 이유는 뭘까.<br/>단순한 호의일까. 혹은 지나간 일에 대한 복수인가. 아니면…….<br/><br/>“기의준.”<br/>“말해.”<br/>“너 대체 나랑 뭘 하고 싶은 거야?”<br/>“하자면 할 거야?”<br/><br/>심장이 내려앉는다.<br/>집요하게 쳐다보는 까만 눈동자에,<br/>잔뜩 잠긴 느른한 목소리에.<br/>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br/>멋대로 생겨나려는 이 위험한 감정들을, 늦기 전에 부디.<br/><br/><br/>미리보기<br/>“고개 좀 들지.”<br/>주택가의 좁은 골목 안쪽 끝. 차의 시동이 꺼진 지 한참이나 지나서야 은하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도 섣불리 옆자리를 돌아보지 못하는 그녀에게 의준이 작게 투덜거렸다.<br/>“뭐 하냐.”<br/>“뭐가.”<br/>“나 안 보고 어디 보냐고.”<br/>“듣고 있어, 말해.”<br/>“공은하.”<br/>“왜.”<br/>“걱정 마, 이자는 돈으로 안 받아.”<br/>아무리 생각해도 10프로는 너무한 거 아니냐고, 좀 깎아 줄 수 없겠느냐고 말이라도 꺼내 보려던 은하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마주친 의준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했다.<br/>“무슨 뜻이야?”<br/>“말 그대로.”<br/>“돈으로 안 받으면?”<br/>“돈 말고 다른 걸로 받겠다는 거지.”<br/>“다른 거라면, 어떤…….”<br/>은하가 입을 다물었다. 순간 떠오른 낮의 불쾌한 기억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죽어라 노려보는 은하의 경멸 섞인 눈빛에 곧 상황을 파악한 의준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br/>“무슨 생각 하는데.”<br/>“못 해.”<br/>“뭘.”<br/>“그런 거, 절대로 그거 나는 할 생각이…….”<br/>“누가 원한대?”<br/>냉기가 가득 실린 차가운 목소리에 은하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의준이 조소를 날렸다.<br/>“착각하지 마. 나 그때의 기의준 아니야.”<br/>“…….”<br/>“너한테 고백하던 기의준 사라진 지 오래라고. 알아들어?”<br/>“……그럼 이자로 뭘 원하는데.”<br/>“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지. 돈 말고 뭐가 좋을지.”<br/>생략된 의준의 뒷말이 멋대로 머릿속에 되뇌어졌다. 돈 말고 어떤 걸 받아야 분이 풀릴까.<br/>부디 심사숙고해 보겠다는 의준의 입가에 명백한 승자의 미소가 걸렸다. 불량하게 뒤틀린 입술보다 전혀 웃고 있지 않은 새까만 눈동자가 왠지 더 거슬려 은하는 못내 시선을 거뒀다. 언젠가 한번은 마주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살면서. 그래, 어쩌면. 하지만 이런 식은 결코 아니었다.“의외네. 빨아 달란다고 빨아 주는 부류인 줄은 몰랐는데.빨기만 했겠어? 잘하면 아예 드러누워 박히기도 했을 거야, 그렇지?”비딱하게 구는 그라도 상관없었다.도움이 필요했고, 결국은 얽히게 된 사이.시작과 동시에 확연하게 나뉘고 만 갑과 을.혼란스럽다. 의준이 제 부탁을 들어준 이유는 뭘까.단순한 호의일까. 혹은 지나간 일에 대한 복수인가. 아니면…….“기의준.”“말해.”“너 대체 나랑 뭘 하고 싶은 거야?”“하자면 할 거야?”심장이 내려앉는다.집요하게 쳐다보는 까만 눈동자에,잔뜩 잠긴 느른한 목소리에.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멋대로 생겨나려는 이 위험한 감정들을, 늦기 전에 부디.미리보기“고개 좀 들지.”주택가의 좁은 골목 안쪽 끝. 차의 시동이 꺼진 지 한참이나 지나서야 은하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도 섣불리 옆자리를 돌아보지 못하는 그녀에게 의준이 작게 투덜거렸다.“뭐 하냐.”“뭐가.”“나 안 보고 어디 보냐고.”“듣고 있어, 말해.”“공은하.”“왜.”“걱정 마, 이자는 돈으로 안 받아.”아무리 생각해도 10프로는 너무한 거 아니냐고, 좀 깎아 줄 수 없겠느냐고 말이라도 꺼내 보려던 은하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마주친 의준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했다.“무슨 뜻이야?”“말 그대로.”“돈으로 안 받으면?”“돈 말고 다른 걸로 받겠다는 거지.”“다른 거라면, 어떤…….”은하가 입을 다물었다. 순간 떠오른 낮의 불쾌한 기억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죽어라 노려보는 은하의 경멸 섞인 눈빛에 곧 상황을 파악한 의준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무슨 생각 하는데.”“못 해.”“뭘.”“그런 거, 절대로 그거 나는 할 생각이…….”“누가 원한대?”냉기가 가득 실린 차가운 목소리에 은하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의준이 조소를 날렸다.“착각하지 마. 나 그때의 기의준 아니야.”“…….”“너한테 고백하던 기의준 사라진 지 오래라고. 알아들어?”“……그럼 이자로 뭘 원하는데.”“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지. 돈 말고 뭐가 좋을지.”생략된 의준의 뒷말이 멋대로 머릿속에 되뇌어졌다. 돈 말고 어떤 걸 받아야 분이 풀릴까.부디 심사숙고해 보겠다는 의준의 입가에 명백한 승자의 미소가 걸렸다. 불량하게 뒤틀린 입술보다 전혀 웃고 있지 않은 새까만 눈동자가 왠지 더 거슬려 은하는 못내 시선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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