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연재시작일: 2018.05.16
1. 작품 소개<br/><br/>“절대 당신을 먹지 않을게요.”<br/><br/><br/>뱀파이어와 인간 중 인간이 되는 것을 선택한 탓에, 피를 빨리며 살아가는 유온. 힘든 삶을 하루하루 이어가는 그녀 앞에 피투성이 소년, 강모영이 떨어진다.<br/>갓 뱀파이어가 된 모영은 특유의 연약함으로 유온을 자극하며 그녀의 삶으로, 마음으로 파고든다. 존재와 더불어 과거의 비밀까지 품은 채.<br/><br/><br/>“누나는 인간이라기엔 너무 달콤해서. 인간이 이런 냄새를 풍길 리가 없지.”<br/>그녀는 입에 든 것을 꿀꺽 삼켰다.<br/>“아…….”<br/>모영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흘렀다. 미처 삼키지 못한 핏줄기가 유온의 입꼬리를 따라 턱까지 뚝뚝 흘러내렸다.<br/>“내가 배는 안 고픈데, 이렇게 뚝뚝 흘리면 뭐라도 먹고 싶어지지 않겠어요?”<br/><br/><br/>2. 미리 보기<br/><br/>잿빛 벽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절명한 여자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희가 눈앞의 남자들을 올려다봤다.<br/>“런치박스…… 아니, 물음표는 그러니까 건들지 말라니까.”<br/>웨인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조심성이 없어 옷에 온통 튄 핏자국을 어떻게 닦아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다. 율리우스의 시선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나희를 향했다.<br/>“얜 어쩌지?”<br/>“물음표를 구해주려고 한 것 같긴 한데.”<br/>그땐 이 어린애 하나뿐이라 그냥 살려줬는데 지금은 나희 외의 다른 이들은 전부 죽었다. 목격자를 살려둘 것이냐 죽일 것이냐. 잠깐 기로에 놓인 웨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같은 일족의 피는 구역질이 날 만큼 역했다. 자신들의 피도 이런 냄새를 풍길 텐데 정말 그들의 주인은 괴식을 즐기는 게 분명하다 다시금 깨달으며 율리우스와 웨인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br/>“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아무한테도!”<br/>분명 그녀들과 쇼핑을 갔다는 걸 아는 일족들이 있으리라. 그녀들의 실종을 자신에게 묻겠지만 입을 다물겠다고 나희가 외쳤다. 외치는 입술에서 어쩔 수 없는 공포가 느껴졌다. 이가 딱딱딱딱 부딪치고 발음이 샜다.<br/>“이제 이건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br/>타박타박.<br/>계단을 내려오는 느린 발소리가 들렸다. 손에 초코를 입힌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내려선 강모영이 무심한 얼굴로 살육의 현장을 바라봤다. 두려움에 잔뜩 질린 나희가 강모영을 바라봤다. 그를 어디서 봤더라.<br/>“……호텔에서…….”<br/>유온의 곁에 있던 남자였다. 인간이 분명했다. 인간이 분명한데 왜 이런 이질적인 기운이 도는 걸까. 남자는 이 현장을 보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손발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피가 낭자한 현장을 유유히 걷는다. 아직 녹지 않은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로테스크했다.<br/>“멀리도 왔네요. 발목은 괜찮아요?”<br/>한참 동안 계단을 내려와야 했던 모영이 물었다. 자신에게 묻는 건 줄 알고 나희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의 시선은 그녀에게 머물러 있지 않다.<br/>“잘 뛰던데요.”<br/>웨인이 곁눈질로 설비실 안쪽을 가리키며 답했다. 나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을 타이밍을 놓쳤다. 주저앉아 있는 그녀를 지나쳐 모영이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퀴퀴한 먼지로 가득했지만, 모영은 곧장 한 곳으로 향했다. 로즈가 시신을 한쪽으로 옮기다가 모영을 발견했다.<br/>로즈를 무심히 지나친 시선이 파이프들로 가득 찬, 한 사람이 겨우 몸을 웅크리고 숨을 수 있는 공간을 향했다.<br/>“괜찮아요?”<br/>살갑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온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자신이 볼 수 있는 건 앞에 서 있는 모영의 다리뿐이었다.<br/>“모영아.”<br/>그의 눈이 유온이 몸을 욱여넣은 파이프 사이로 보이는 뾰족한 부분으로 향했다. 아이스크림보다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주 향이 진한 꽃의 꿀 냄새 같기도 하다.<br/>“다쳤어요?”<br/>모영이 묻고 나서야 유온은 어깨 쪽이 뜨끔한 걸 알아차렸다. 다리가 풀려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br/>“그냥 조금 긁혔나 봐.”<br/>서 있는 그의 구두코만 보며 그녀가 말했다. 그러자 불쑥, 허리를 숙인 그가 깊숙이 들어가 있는 유온을 바라봤다.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가 안전한 듯한 그녀를 발견하자 상냥하게 휘어진다.<br/>“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니까.”<br/>그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에 들린, 아주 조금 녹은 아이스크림을 좁은 공간을 통해 그가 건넸다.<br/>“왜 로즈 씨가 여기에 있어?”<br/>“우연이겠죠.”<br/>모영이 내민 아이스크림을 받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을 타고 초콜릿이 흘러내렸다.<br/>“아직 거기 좀 더 있어요. 이거 먹으면서.”<br/>그가 손을 좀 더 뻗었다. 떨리는 유온의 손이 아이스크림을 받아들었다. 손끝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할짝이면서 모영이 뒤처리 중인 로즈를 바라봤다.<br/>“나가면 안 돼?”<br/>“여기 좀 흉해서요. 예쁜 것만 봐요.”<br/>손가락에 흐른 아이스크림을 깨끗하게 빤 그가 다시 유온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한쪽 발목이 모영의 손아귀에 잡혔다. 도망치느라 반쯤 벗겨진 구두를 그가 다시 신겨준다. 군데군데 알맹이가 빠져 있다.<br/>“구두 다시 사야겠네요.”<br/>장식 부분이 긁히고 먼지가 잔뜩 묻어 있어 모영이 결국 유온의 구두를 벗겼다. 발목을 삐었는지 그 부분이 뜨끈뜨끈한 게 손바닥에 느껴진다.<br/>“떨지 마요, 응? 너무 늦게 와서 내가 미안하잖아.”<br/>그에게서 받아든 아이스크림콘을 너무 꽉 쥐는 바람에 부스러져 내렸다. 큰 몸을 굽히기도 힘들 텐데 내내 같은 자세로 모영은 다정하게 말을 붙였다.<br/>“네가 안 왔으면 했어.”<br/>“왜요?”<br/>“다칠까 봐.”<br/>“로즈가 없었으면 유온 씨가 죽을지도 몰랐는데? 죽기 직전에도 내 생각이 안 났어요?”<br/>유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 안으로 그들이 들어왔을 땐 끝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조원우가 자신을 이렇게 먹이로 던져줘 죽이려 한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br/>“그거 서운한데.”<br/>그가 다른 쪽 발의 구두 또한 벗겨냈다.<br/>“조심히 나와요. 업어줄게.”<br/>하얀색 원피스는 제 색을 잃어버리고 잔뜩 검댕이 묻어 있었다.<br/>“모영아.”<br/>“네.”<br/>“나는 먹이야.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일이 있을 거야.”<br/>“그건 좀 곤란하겠네요.”<br/>계속 이렇게 다치고 넘어지면 인간인 유온의 몸이 남아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모영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시선이 줄곧 찢어진 그녀의 어깨에 가 있다. 얇게 찢어져 있지만 냄새는 진하다.<br/>이곳에 있는 뱀파이어들은 환장하고 달려들 정도로. 그러다 그림자에 가려진 채인 피투성이가 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br/>자신이 아니었다면 그가 부리는 이들에게도 저 향기는 대단히 유혹적이었으리라.<br/>이왕이면 맛있는 걸 먹고 싶은 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매한가지일 테니.<br/>“앞으로는 아이스크림 살 때도 꼭 붙어 있어야겠어요. 떨어지지 말고. 길 잃지 않게.”<br/>다정한 손이 내밀어져 자신을 부른다. 나오라고 살랑살랑 흔들린다. 유온이 크림으로 잔뜩 젖은 손을 내밀었다. 단단하게 모영을 마주 붙잡았다.<br/>“조심히 나와요.”<br/>피 냄새와 자국은 어쩔 수 없지만 시체들은 일단 안 보이는 구석에 몰아넣어져 있다. 모영이 밖으로 기어 나온 유온을 꽉 끌어안았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떨어지자 다정했던 눈동자가 삽시간에 싸해진다. 문 옆에 서 있는 로즈와 시선이 엉켰다.<br/>“먼저 이렇게 안겨들고. 많이 놀랐나 봐요.”<br/>“……네가 끌어안은 거야.”<br/>“그럼 내가 많이 놀랐나 봐요.”<br/>옷이 더러웠다. 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영의 허리를 놓을 수가 없었다. 유온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따스하게 전해져오는 기운에, 그리고 자신의 허리를 천천히 도닥거리는 손에 놀란 마음이 진정된다.<br/>“예쁘게 입혀서 오늘 사진 찍으러 가려고 했는데.”<br/>어차피 흰색 원피스라 여권사진은 안 됐을 거라고 유온이 속삭이자 모영이 가슴을 떨며 웃었다.<br/>“그래요. 그럼 다음엔 검은 드레스를 사는 게 좋겠어요.”<br/>어떤 더러운 것이 묻어도 보이지 않는. 완벽하게 감추어줄 그 색이면 괜찮을 것 같다고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곧 자신의 등을 내밀었다. 구두를 신으면 된다고 거절했지만 모영은 끝내 억지로 유온을 안아 들었다.<br/>“눈 감고 10까지만 세어봐요.”<br/>유온이 얌전히 눈을 감았다. 모영의 혀가 유온의 얼굴을 돌아다닌다. 흐르고 굳어진 핏자국을 말끔하게 핥았다. 간지러운지 그녀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놓치지 않고 그 방향으로 따라온 혀가 기어이 모든 것을 느리게 핥아낸 뒤에야 물러났다.<br/>작은 실랑이를 하다 거의 기절하다시피 자신의 품에서 축 늘어진 그녀를 안고 설비실의 철문을 나섰다.<br/>나희는 여전히 살아 있다. 피로 물든 곳에서 버둥거리면서 웨인과 율리우스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유온을 안고 나오자 반사적으로 그게 제 생명줄이란 걸 알아차리고 부르려는 나희에게 모영의 무심한 눈동자가 향했다.<br/>입술이 다물어졌다.<br/>유온을 부르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그의 구둣발이 자신의 머리를 밟아 바스러뜨릴 것 같단 두려움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고 숨조차 쉬지 않았다.<br/>“음…….”<br/>축 늘어진 유온이 뒤척였다. 그의 오른쪽 가슴에 이마가 폭 기대진다.<br/>“어떻게 할까요?”<br/>“예쁘게 포장해서 가져다줘요. 엉망인 아이들을 관리하지 못한 건 주인의 책임이 크니.”<br/>누구에게 가져다주라는 소린지 알고 있는 웨인과 율리우스가 고개를 숙였다.<br/>“저 애도 함께 가져다줄까요?”<br/>“힉…….”<br/>숨넘어가는 소리가 오르자 모영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희가 서둘러 피 묻은 손바닥으로 스스로의 입을 막았다. 작은 소리조차 거슬렸는지 그의 눈은 벌레를 보는 듯한 짜증이 들어서 있다.<br/>“일단은 막아서긴 해서…….”<br/>그 처우가 매우 애매하다는 듯 웨인이 슬쩍 어린 나희의 편을 들었다. 알아서 하라는 얼굴로 대답을 대신한 모영은 더 이상 입을 떼지 않은 채, 내려왔던 그대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간다. 나희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가 내려왔을 때도 어느 순간부터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피로 범벅이 돼 있는 곳을 밟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br/>남자는 허공을 걷고 있었다.
1. 작품 소개“절대 당신을 먹지 않을게요.”뱀파이어와 인간 중 인간이 되는 것을 선택한 탓에, 피를 빨리며 살아가는 유온. 힘든 삶을 하루하루 이어가는 그녀 앞에 피투성이 소년, 강모영이 떨어진다.갓 뱀파이어가 된 모영은 특유의 연약함으로 유온을 자극하며 그녀의 삶으로, 마음으로 파고든다. 존재와 더불어 과거의 비밀까지 품은 채.“누나는 인간이라기엔 너무 달콤해서. 인간이 이런 냄새를 풍길 리가 없지.”그녀는 입에 든 것을 꿀꺽 삼켰다.“아…….”모영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흘렀다. 미처 삼키지 못한 핏줄기가 유온의 입꼬리를 따라 턱까지 뚝뚝 흘러내렸다.“내가 배는 안 고픈데, 이렇게 뚝뚝 흘리면 뭐라도 먹고 싶어지지 않겠어요?”2. 미리 보기잿빛 벽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절명한 여자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희가 눈앞의 남자들을 올려다봤다.“런치박스…… 아니, 물음표는 그러니까 건들지 말라니까.”웨인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조심성이 없어 옷에 온통 튄 핏자국을 어떻게 닦아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다. 율리우스의 시선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나희를 향했다.“얜 어쩌지?”“물음표를 구해주려고 한 것 같긴 한데.”그땐 이 어린애 하나뿐이라 그냥 살려줬는데 지금은 나희 외의 다른 이들은 전부 죽었다. 목격자를 살려둘 것이냐 죽일 것이냐. 잠깐 기로에 놓인 웨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같은 일족의 피는 구역질이 날 만큼 역했다. 자신들의 피도 이런 냄새를 풍길 텐데 정말 그들의 주인은 괴식을 즐기는 게 분명하다 다시금 깨달으며 율리우스와 웨인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아무한테도!”분명 그녀들과 쇼핑을 갔다는 걸 아는 일족들이 있으리라. 그녀들의 실종을 자신에게 묻겠지만 입을 다물겠다고 나희가 외쳤다. 외치는 입술에서 어쩔 수 없는 공포가 느껴졌다. 이가 딱딱딱딱 부딪치고 발음이 샜다.“이제 이건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타박타박.계단을 내려오는 느린 발소리가 들렸다. 손에 초코를 입힌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내려선 강모영이 무심한 얼굴로 살육의 현장을 바라봤다. 두려움에 잔뜩 질린 나희가 강모영을 바라봤다. 그를 어디서 봤더라.“……호텔에서…….”유온의 곁에 있던 남자였다. 인간이 분명했다. 인간이 분명한데 왜 이런 이질적인 기운이 도는 걸까. 남자는 이 현장을 보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손발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피가 낭자한 현장을 유유히 걷는다. 아직 녹지 않은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로테스크했다.“멀리도 왔네요. 발목은 괜찮아요?”한참 동안 계단을 내려와야 했던 모영이 물었다. 자신에게 묻는 건 줄 알고 나희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의 시선은 그녀에게 머물러 있지 않다.“잘 뛰던데요.”웨인이 곁눈질로 설비실 안쪽을 가리키며 답했다. 나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을 타이밍을 놓쳤다. 주저앉아 있는 그녀를 지나쳐 모영이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퀴퀴한 먼지로 가득했지만, 모영은 곧장 한 곳으로 향했다. 로즈가 시신을 한쪽으로 옮기다가 모영을 발견했다.로즈를 무심히 지나친 시선이 파이프들로 가득 찬, 한 사람이 겨우 몸을 웅크리고 숨을 수 있는 공간을 향했다.“괜찮아요?”살갑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온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자신이 볼 수 있는 건 앞에 서 있는 모영의 다리뿐이었다.“모영아.”그의 눈이 유온이 몸을 욱여넣은 파이프 사이로 보이는 뾰족한 부분으로 향했다. 아이스크림보다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주 향이 진한 꽃의 꿀 냄새 같기도 하다.“다쳤어요?”모영이 묻고 나서야 유온은 어깨 쪽이 뜨끔한 걸 알아차렸다. 다리가 풀려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그냥 조금 긁혔나 봐.”서 있는 그의 구두코만 보며 그녀가 말했다. 그러자 불쑥, 허리를 숙인 그가 깊숙이 들어가 있는 유온을 바라봤다.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가 안전한 듯한 그녀를 발견하자 상냥하게 휘어진다.“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니까.”그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에 들린, 아주 조금 녹은 아이스크림을 좁은 공간을 통해 그가 건넸다.“왜 로즈 씨가 여기에 있어?”“우연이겠죠.”모영이 내민 아이스크림을 받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을 타고 초콜릿이 흘러내렸다.“아직 거기 좀 더 있어요. 이거 먹으면서.”그가 손을 좀 더 뻗었다. 떨리는 유온의 손이 아이스크림을 받아들었다. 손끝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할짝이면서 모영이 뒤처리 중인 로즈를 바라봤다.“나가면 안 돼?”“여기 좀 흉해서요. 예쁜 것만 봐요.”손가락에 흐른 아이스크림을 깨끗하게 빤 그가 다시 유온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한쪽 발목이 모영의 손아귀에 잡혔다. 도망치느라 반쯤 벗겨진 구두를 그가 다시 신겨준다. 군데군데 알맹이가 빠져 있다.“구두 다시 사야겠네요.”장식 부분이 긁히고 먼지가 잔뜩 묻어 있어 모영이 결국 유온의 구두를 벗겼다. 발목을 삐었는지 그 부분이 뜨끈뜨끈한 게 손바닥에 느껴진다.“떨지 마요, 응? 너무 늦게 와서 내가 미안하잖아.”그에게서 받아든 아이스크림콘을 너무 꽉 쥐는 바람에 부스러져 내렸다. 큰 몸을 굽히기도 힘들 텐데 내내 같은 자세로 모영은 다정하게 말을 붙였다.“네가 안 왔으면 했어.”“왜요?”“다칠까 봐.”“로즈가 없었으면 유온 씨가 죽을지도 몰랐는데? 죽기 직전에도 내 생각이 안 났어요?”유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 안으로 그들이 들어왔을 땐 끝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조원우가 자신을 이렇게 먹이로 던져줘 죽이려 한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그거 서운한데.”그가 다른 쪽 발의 구두 또한 벗겨냈다.“조심히 나와요. 업어줄게.”하얀색 원피스는 제 색을 잃어버리고 잔뜩 검댕이 묻어 있었다.“모영아.”“네.”“나는 먹이야.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일이 있을 거야.”“그건 좀 곤란하겠네요.”계속 이렇게 다치고 넘어지면 인간인 유온의 몸이 남아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모영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시선이 줄곧 찢어진 그녀의 어깨에 가 있다. 얇게 찢어져 있지만 냄새는 진하다.이곳에 있는 뱀파이어들은 환장하고 달려들 정도로. 그러다 그림자에 가려진 채인 피투성이가 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자신이 아니었다면 그가 부리는 이들에게도 저 향기는 대단히 유혹적이었으리라.이왕이면 맛있는 걸 먹고 싶은 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매한가지일 테니.“앞으로는 아이스크림 살 때도 꼭 붙어 있어야겠어요. 떨어지지 말고. 길 잃지 않게.”다정한 손이 내밀어져 자신을 부른다. 나오라고 살랑살랑 흔들린다. 유온이 크림으로 잔뜩 젖은 손을 내밀었다. 단단하게 모영을 마주 붙잡았다.“조심히 나와요.”피 냄새와 자국은 어쩔 수 없지만 시체들은 일단 안 보이는 구석에 몰아넣어져 있다. 모영이 밖으로 기어 나온 유온을 꽉 끌어안았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떨어지자 다정했던 눈동자가 삽시간에 싸해진다. 문 옆에 서 있는 로즈와 시선이 엉켰다.“먼저 이렇게 안겨들고. 많이 놀랐나 봐요.”“……네가 끌어안은 거야.”“그럼 내가 많이 놀랐나 봐요.”옷이 더러웠다. 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영의 허리를 놓을 수가 없었다. 유온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따스하게 전해져오는 기운에, 그리고 자신의 허리를 천천히 도닥거리는 손에 놀란 마음이 진정된다.“예쁘게 입혀서 오늘 사진 찍으러 가려고 했는데.”어차피 흰색 원피스라 여권사진은 안 됐을 거라고 유온이 속삭이자 모영이 가슴을 떨며 웃었다.“그래요. 그럼 다음엔 검은 드레스를 사는 게 좋겠어요.”어떤 더러운 것이 묻어도 보이지 않는. 완벽하게 감추어줄 그 색이면 괜찮을 것 같다고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곧 자신의 등을 내밀었다. 구두를 신으면 된다고 거절했지만 모영은 끝내 억지로 유온을 안아 들었다.“눈 감고 10까지만 세어봐요.”유온이 얌전히 눈을 감았다. 모영의 혀가 유온의 얼굴을 돌아다닌다. 흐르고 굳어진 핏자국을 말끔하게 핥았다. 간지러운지 그녀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놓치지 않고 그 방향으로 따라온 혀가 기어이 모든 것을 느리게 핥아낸 뒤에야 물러났다.작은 실랑이를 하다 거의 기절하다시피 자신의 품에서 축 늘어진 그녀를 안고 설비실의 철문을 나섰다.나희는 여전히 살아 있다. 피로 물든 곳에서 버둥거리면서 웨인과 율리우스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유온을 안고 나오자 반사적으로 그게 제 생명줄이란 걸 알아차리고 부르려는 나희에게 모영의 무심한 눈동자가 향했다.입술이 다물어졌다.유온을 부르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그의 구둣발이 자신의 머리를 밟아 바스러뜨릴 것 같단 두려움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고 숨조차 쉬지 않았다.“음…….”축 늘어진 유온이 뒤척였다. 그의 오른쪽 가슴에 이마가 폭 기대진다.“어떻게 할까요?”“예쁘게 포장해서 가져다줘요. 엉망인 아이들을 관리하지 못한 건 주인의 책임이 크니.”누구에게 가져다주라는 소린지 알고 있는 웨인과 율리우스가 고개를 숙였다.“저 애도 함께 가져다줄까요?”“힉…….”숨넘어가는 소리가 오르자 모영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희가 서둘러 피 묻은 손바닥으로 스스로의 입을 막았다. 작은 소리조차 거슬렸는지 그의 눈은 벌레를 보는 듯한 짜증이 들어서 있다.“일단은 막아서긴 해서…….”그 처우가 매우 애매하다는 듯 웨인이 슬쩍 어린 나희의 편을 들었다. 알아서 하라는 얼굴로 대답을 대신한 모영은 더 이상 입을 떼지 않은 채, 내려왔던 그대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간다. 나희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가 내려왔을 때도 어느 순간부터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피로 범벅이 돼 있는 곳을 밟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남자는 허공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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