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본]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전2권/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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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본]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전2권/완결)
YES 24
작품소개
연재시작일: 2018.02.06
1. 작품 소개<br/><br/>※ 본 도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 1, 2권 합본입니다.<br/><br/>“……사랑만큼 사람을 가장 크게 옭아매는 건 없죠.”<br/><br/><br/>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카운슬러 나디아.<br/>어느 날 그녀가 받은 제안은 2개월간 동안 테러전담 전문가 바스티안을 상담하라는 것이었다.<br/>가벼운 마음으로 그 제안에 응한 나디아였지만, 지금 눈앞의 이 남자는 너무나도 매혹적이다!<br/><br/><br/>“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br/>“물어보세요.”<br/>갑자기 호흡이 크게 뛰어 그를 달래듯 큰 숨을 내쉬어야 했다.<br/>“혹시 저한테 관심 있으세요?”<br/>바스티안이 작게 웃었다.<br/>“그걸 이제 아셨나요?”<br/><br/><br/>2. 미리 보기<br/><br/>“말 거는 사람은 없었어요?”<br/>“쳐다보지도 않던데요.”<br/>바스티안이 웃으며 핸들을 왼쪽으로 돌렸다. 부드럽게 굴러간 차체가 얼마 못 가 신호에 멈춰 섰다.<br/>“어디로 가면 되나요?”<br/>“헤이거 스트리트요. 그랜드 힐즈.”<br/>“상담실도 그랜드 힐즈에 있지 않았나요?”<br/>맞다. 상담실은 보우 스트리트에 있다. 헤이거 스트리트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곳이다.<br/>“제 모든 생활의 축은 그랜드 힐즈에 속해 있거든요. 대학에 입학하던 그때부터 전 줄곧 그랜드 힐즈에서 살았어요.”<br/>기숙사를 들어가려 했지만 추첨에 떨어졌다. 본래 카슨 대학은 학문 탐구에는 아낌없는 지원을 쏟아도 기숙사 같은 부가적인 부분에는 그다지 투자를 않는 학교였다.<br/>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카슨 대학의 기숙사는 단 두 동뿐이며, 입실은 추첨제였다.<br/>“그럼 여기 코타 주에는 대학 때문에 오신 거군요?”<br/>“그렇죠. 카슨 대학이었으니 망정이지 다른 데였다면, 부모님은 절 절대 시엘라 주 밖으로 보내주지 않았을 거예요.”<br/>아무리 까다로운 부모님을 가진 친구라도 나디아보다는 모든 게 빨랐다.<br/>특히, 나디아의 부모님은 자식이 눈앞에서 멀어지는 데 굉장히 민감했는데 만약 카슨이 아닌 고만고만한 대학에 합격했더라면 부모님은 독립을 지원해주는 대신 통학이 가능한 곳을 찾으라고 학교 리스트를 내밀었을 것이다.<br/>“전 부모님 마음이 이해가 가는데요? 이렇게 예쁜 딸을 문밖에 두는 건 꽤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일일 테니까요. 모든 사람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걸 아는 이상은 더욱더요.”<br/>세상에. 부모님을 이해하는 사람을 지금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나디아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부모님을 이해하는 건 그 자신들과 옆에 앉아 있는 바스티안뿐이다.<br/>문득 바스티안에게 물었다.<br/>“만약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의 첫 외박은 언제 시켜줄 건가요?”<br/>“글쎄요. 열여섯?”<br/>생각보다 빨랐다.<br/>“대신 GPS를 달아둘 겁니다.”<br/>“예?”<br/>잘못 들었나 했다. 바스티안이 흘끔 나디아를 곁눈질했다.<br/>“GPS요. 위치추적장치. 그것만 있으면 어디든 보낼 수 있죠.”<br/>“아이한테 GPS를 단다고 동의를 구할 셈인가요? 허락을 얻기 어려울 텐데요?”<br/>의아해서 묻자 도리어 바스티안이 의문 섞인 얼굴을 했다.<br/>“GPS를 누가 허락을 맡고 다나요? GPS는 상대 모르게 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름에 ‘추적’이 붙는 거랍니다, 선생님.”<br/>황당함이 지나쳐 웃음으로 터져나왔다.<br/>“몰래 달았다가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요?”<br/>“전 누가 뭐래도 GPS를 달 겁니다.”<br/>타협 없는 단호함에 나디아는 웃으며 충고했다.<br/>“그렇다면 아이한텐 들키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런 걸 달았다가 들키는 순간, 화해는 백년 후에나 가능할 테니까요.”<br/>“명심하죠.”<br/>바스티안이 즐겁게 대꾸했다.<br/>“아, 저기 가로등에서 세워주세요.”<br/>건너편에 익숙한 길이 보여 얼른 손을 들었다.<br/>“여기요?”<br/>“예. 제 아파트는 여기에서 걸어 올라가면 되거든요.”<br/>천천히 속도를 줄인 바스티안이 길가에 차를 대면서 주위를 훑었다.<br/>늦은 밤, 집을 지키는 개들도 잠을 자는 지금, 거리는 죽은 듯이 고요했고 띄엄띄엄 줄지어 있는 가로등만 탁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br/>“데려다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br/>“잠깐만요. 같이 가요.”<br/>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나디아를 서둘러 붙잡고 바스티안이 시동을 껐다. 집까지 금방이니 괜찮다고 만류했지만 바스티안은 듣지 않고 고집스레 따라왔다.<br/>어둑한 길을 바스티안과 함께 나란히 걸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6월치고는 조금 선선하다. 그러나 이 선선함도 조만간 열풍으로 바뀌겠지.<br/>발치의 돌멩이를 피해 오른쪽으로 비켜갔다.<br/>“피자 좋아하세요?”<br/>바스티안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br/>“좋아해요.”<br/>“제가 잘 아는 피자집이 있는데, 지금 가실래요?”<br/>걸음을 멈추었다. 따라 선 바스티안이 나디아를 빤히 바라봤다.<br/>“지금요?”<br/>“거긴 새벽 3시까지 문을 열고 있거든요. 조각피자집인데 인기가 좋아요. 맛은 장담합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br/>집이 코앞이다. 다섯 걸음 정도 남았을까. 게다가 지금은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내일 일찍부터 일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고 지금 들어가서 씻고 잘 준비를 해도 이미 늦은 상태였다.<br/>“무슨 피자가 있는데요?”<br/>그러나 입에서 나온 건 거절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호응이었다.<br/>“뭐든 다 있어요. 8불만 추가하면 토핑도 자유롭게 고를 수 있죠. 그 8불 하나로 먹고 싶은 토핑은 다 넣을 수 있는 거예요.”<br/>바스티안이 상기된 표정으로 신나게 말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디아도 덩달아 들뜨기 시작했다.<br/>“전 도우에 치즈가 들어가지 않으면 그 어떤 피자도 먹지 않아요.”<br/>“저도요. 제가 그래서 제일 사랑하는 피자가 딥 디쉬 피자예요.”<br/>그뿐인 말인데 웃음이 새어나왔다.<br/>결국 나디아는 발길을 돌려 내렸던 차에 다시 올라탔다.<br/>피자가게가 있는 곳은 코벨리스 사거리 중심가였다. 몇 번 길을 오가면서 봤던 곳이다. 카운터 옆에는 각종 토핑 재료들이 줄지어 놓여 있고, 테이블은 건물 벽면을 따라 총 여섯 개가 있었다.<br/>나디아와 바스티안이 잡은 자리는 문가 근처였다. 맨 처음 나디아는 소고기와 올리브가 올라간 가게 시그니처 메뉴를 시켰고, 그 다음에는 바스티안과 함께 자유 토핑을 골랐다.<br/>고작 베이컨과 바질의 위치를 선정하는 것뿐인데도 즐거워 목소리가 커졌다. 얘기가 길어진다. 틈틈이 시계를 확인했지만 흘러가는 시간이 나디아를 움직이게 만들 수는 없었다.<br/>새벽, 사람들이 오고 다시 떠나는 동안 나디아는 여전히 바스티안과 함께 문가 근처 테이블에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br/>“혹시 마샤 헤이즈라고 압니까?”<br/>핫도그 포장을 벗기면서 바스티안이 물었다.<br/>수요일, 오후 3시. 바스티안은 핫도그 상자를 들고 상담실을 찾았다. 흰 박스에 노란 글씨로 ‘허니허니’라고 적혀 있었는데, 일반적인 것보다 크고 속이 푸짐하게 채워져 있었다. 바스티안의 말에 의하면 커노레이에서 가장 유명한 핫도그라고 했다.<br/>그리고 그 유명세의 이유로 커노레이에서 퇴사한 직원이 차린 가게라는 설명을 덧붙였다.<br/>“여배우 아닌가요?”<br/>“아시네요? 연예인에 관심이 없어 모르실 줄 알았는데.”<br/>“그렇게 유명한 배우는 저도 알고 있어요.”<br/>타는 듯한 붉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그 여배우는 눈에 띄는 외모에 더해 연기력까지 갖춘 몇 안 되는 대표 여성배우로 나디아 역시 그녀가 출연한 몇몇 개의 영화를 알고 있었다.<br/>“갑자기 그 배우는 왜 물어보는 건가요?”<br/>“이번에 제가 그 마샤 헤이즈와 같이 일을 하게 됐거든요.”<br/>바스티안이 한입 크게 핫도그를 베어 물며 말했다.<br/>“다니엘은 어쩌고요?”<br/>“다니엘과도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니엘의 의뢰로 대신 그녀를 맡게 된 거죠.”<br/>“경호를 해주는 건가요?”<br/>“그것도 그렇고 사전에 날 수 있는 이상한 싹을 미리 없애는 거죠. 아름다운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 잡초를 제거하는 것처럼.”<br/>바스티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br/>“왜요? 왜 그렇게 웃는 거예요?”<br/>“다니엘이 지독한 사랑에 빠져 있다고 한 말, 기억해요?”<br/>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나디아는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br/>“말도 안 돼요. 마샤 헤이즈는 결혼했잖아요?”<br/>“그리고 지금 별거 중이죠. 그녀의 말에 따르면 별거는 벌써 3년도 더 된 일이라고 하더군요. 재산 때문에 완벽하게 정리를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에요. 조만간 이혼 발표를 할 겁니다.”<br/>놀라운 가십이었다. 마샤 헤이즈의 남편이 누구였는지 생각하다 언젠가 영화감독이라는 말을 들은 걸 기억해냈다.<br/>“그래서 마샤 헤이즈의 경호를 하는 건가요? 이혼 발표 때문에요?”<br/>“아직 재산 분할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든요. 빠른 이혼을 위해서 그녀가 상당수 포기하긴 했지만 지금 같은 때에 다니엘의 이름이 나온다면, 이걸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다니엘이 제게 의뢰를 한 겁니다. 이혼이 제대로 성립될 때까지 그녀의 주변을 살피기 위해서요.”<br/>핫도그에서 삐져나온 소스가 바스티안의 손등에 흘렀다. 휴지 한 장을 뽑아다 바스티안에게 건넸다.<br/>“마샤 헤이즈는 다니엘이 무기상인이라는 걸 알까요?”<br/>놀라움이 가시자 그녀는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든 걸 알고도 함께하기로 결정한 걸까.<br/>“글쎄요. 하지만 그런 건 아무 문제도 안 될 겁니다. 그녀가 알고 있다면 각오를 했다는 뜻이고, 모르더라도 이제 와 빠져나오기엔 너무 늦었을 테니까요.”<br/>바스티안이 빙긋 웃으며 휴지를 둥글게 구겨 빈 상자에 던져 넣었다.<br/>“말했잖아요. 지독한 사랑에 빠져 있다고.”<br/>“……사랑만큼 사람을 가장 크게 옭아매는 건 없죠.”<br/>바스티안의 말대로 마샤 헤이즈에게는 이 사랑을 위해 직진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은 없을지도 모른다.<br/>“아, 다음 주 상담은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샤의 촬영 때문에 지방에 가게 되었거든요.”<br/>“어쩔 수 없죠. 괜찮아요.”<br/>남은 날을 헤아려봤다. 벌써 6월 둘째 주. 남은 상담은 두 번뿐이고 그중 하나가 이렇게 깨졌으니 이제 바스티안을 만날 일도 결국 한 번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br/>왠지 서운한 기분이 들어 그런 자신에게 살짝 놀랐다.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그런 걸까. 그러기엔 감정의 색이 짙은 것이 신경 쓰였다.<br/>“선생님?”<br/>“예? 아, 말씀하세요.”<br/>바스티안의 부름에 나디아는 서둘러 생각을 지워냈다.<br/>“그래서 말인데 다음 상담은 다른 날짜에 해도 될 까요?”<br/>“다른 날짜요?”<br/>“목요일 어떠세요?”<br/>나디아는 머뭇거렸다. 커노레이에는 수요일에만 출근하고 있었다. 일정을 바꾸려거든 그린 힐즈 제 상담실의 예약표를 확인해야만 한다.<br/>“상담표를 확인해봐야 하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실래요?”<br/>일어나려는 나디아를 바스티안이 붙들었다. 손목에 감긴 손을 흘긋 쳐다보자 바스티안이 웃으면서 부드럽게 나디아를 도로 자리에 앉혔다.<br/>“상담실이 아니라 같이 저녁을 먹었으면 하는데요.”<br/>바스티안이 지그시 나디아를 바라봤다.<br/>“꼭 소개해드리고 싶은 레스토랑이 있거든요.”<br/>은근한 어조. 맞닿아 있는 살결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뜨거움. 나디아는 민감하게 바스티안을 의식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고, 동시에 이것이 그 옛날 라이언 켄트너 때와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br/>‘맙소사.’<br/>자신은 바스티안에게 반해 있는 것이다. 마치 남 일처럼 진단 내린 후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인가 빠르게 고찰하기 시작했다.<br/>다른 게 없었다. 완벽한 저 얼굴 때문이다. 환상적인 몸매 때문이야. 저런 얼굴과 몸으로 나디아에게 친밀하게 굴기 때문이다. 바스티안은 지나치게 웃었다. 원래 저렇게 잘 웃는 성격인지도 모르지.<br/>아니야, 너무 지나치게 웃었다.<br/>……어째서 사랑이란 항상 이렇게 예고도 없이 다가오는 걸까. 언제, 어느 때에 시작되는 건지 알려준다면 좋을 텐데. 사랑이란 것은 깨달으면 언제나 이미 시작된 후였다.<br/>바스티안의 말이 맞다. 마샤 헤이즈는 뒤늦게 연인에 대한 진실을 알아도 절대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br/>나디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br/>“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br/>“물어보세요.”<br/>갑자기 호흡이 크게 뛰어 그를 달래듯 큰 숨을 내쉬어야 했다.<br/>“혹시 저한테 관심 있으세요?”<br/>바스티안이 작게 웃었다.<br/>“그걸 이제 아셨나요?”<br/>장난처럼 대꾸하고 곧 표정을 바꿔 진지하게 이어 말했다.<br/>“선생님만 괜찮다면 같이 저녁을 먹고, 앞으로도 계속 만났으면 하는데 어떠세요?”<br/>……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디아 또한 그러고 싶었으니까.<br/>“목요일 몇 시에 볼까요?”<br/>바스티안이 환하게 웃었다.<br/>“상담실이 언제 문을 닫죠?”<br/>“7시에는 닫아요.”<br/>“그럼 7시 반 어때요? 제가 상담실로 가죠.”<br/>가슴이 뛰었다. 목요일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벌써부터 기대감이 부피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목요일, 입속으로 되뇐다. 목요일 저녁 7시 반. 몇 번이고 속으로 생각했다. 1. 작품 소개※ 본 도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 1, 2권 합본입니다.“……사랑만큼 사람을 가장 크게 옭아매는 건 없죠.”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카운슬러 나디아.어느 날 그녀가 받은 제안은 2개월간 동안 테러전담 전문가 바스티안을 상담하라는 것이었다.가벼운 마음으로 그 제안에 응한 나디아였지만, 지금 눈앞의 이 남자는 너무나도 매혹적이다!“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물어보세요.”갑자기 호흡이 크게 뛰어 그를 달래듯 큰 숨을 내쉬어야 했다.“혹시 저한테 관심 있으세요?”바스티안이 작게 웃었다.“그걸 이제 아셨나요?”2. 미리 보기“말 거는 사람은 없었어요?”“쳐다보지도 않던데요.”바스티안이 웃으며 핸들을 왼쪽으로 돌렸다. 부드럽게 굴러간 차체가 얼마 못 가 신호에 멈춰 섰다.“어디로 가면 되나요?”“헤이거 스트리트요. 그랜드 힐즈.”“상담실도 그랜드 힐즈에 있지 않았나요?”맞다. 상담실은 보우 스트리트에 있다. 헤이거 스트리트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곳이다.“제 모든 생활의 축은 그랜드 힐즈에 속해 있거든요. 대학에 입학하던 그때부터 전 줄곧 그랜드 힐즈에서 살았어요.”기숙사를 들어가려 했지만 추첨에 떨어졌다. 본래 카슨 대학은 학문 탐구에는 아낌없는 지원을 쏟아도 기숙사 같은 부가적인 부분에는 그다지 투자를 않는 학교였다.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카슨 대학의 기숙사는 단 두 동뿐이며, 입실은 추첨제였다.“그럼 여기 코타 주에는 대학 때문에 오신 거군요?”“그렇죠. 카슨 대학이었으니 망정이지 다른 데였다면, 부모님은 절 절대 시엘라 주 밖으로 보내주지 않았을 거예요.”아무리 까다로운 부모님을 가진 친구라도 나디아보다는 모든 게 빨랐다.특히, 나디아의 부모님은 자식이 눈앞에서 멀어지는 데 굉장히 민감했는데 만약 카슨이 아닌 고만고만한 대학에 합격했더라면 부모님은 독립을 지원해주는 대신 통학이 가능한 곳을 찾으라고 학교 리스트를 내밀었을 것이다.“전 부모님 마음이 이해가 가는데요? 이렇게 예쁜 딸을 문밖에 두는 건 꽤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일일 테니까요. 모든 사람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걸 아는 이상은 더욱더요.”세상에. 부모님을 이해하는 사람을 지금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나디아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부모님을 이해하는 건 그 자신들과 옆에 앉아 있는 바스티안뿐이다.문득 바스티안에게 물었다.“만약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의 첫 외박은 언제 시켜줄 건가요?”“글쎄요. 열여섯?”생각보다 빨랐다.“대신 GPS를 달아둘 겁니다.”“예?”잘못 들었나 했다. 바스티안이 흘끔 나디아를 곁눈질했다.“GPS요. 위치추적장치. 그것만 있으면 어디든 보낼 수 있죠.”“아이한테 GPS를 단다고 동의를 구할 셈인가요? 허락을 얻기 어려울 텐데요?”의아해서 묻자 도리어 바스티안이 의문 섞인 얼굴을 했다.“GPS를 누가 허락을 맡고 다나요? GPS는 상대 모르게 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름에 ‘추적’이 붙는 거랍니다, 선생님.”황당함이 지나쳐 웃음으로 터져나왔다.“몰래 달았다가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요?”“전 누가 뭐래도 GPS를 달 겁니다.”타협 없는 단호함에 나디아는 웃으며 충고했다.“그렇다면 아이한텐 들키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런 걸 달았다가 들키는 순간, 화해는 백년 후에나 가능할 테니까요.”“명심하죠.”바스티안이 즐겁게 대꾸했다.“아, 저기 가로등에서 세워주세요.”건너편에 익숙한 길이 보여 얼른 손을 들었다.“여기요?”“예. 제 아파트는 여기에서 걸어 올라가면 되거든요.”천천히 속도를 줄인 바스티안이 길가에 차를 대면서 주위를 훑었다.늦은 밤, 집을 지키는 개들도 잠을 자는 지금, 거리는 죽은 듯이 고요했고 띄엄띄엄 줄지어 있는 가로등만 탁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데려다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잠깐만요. 같이 가요.”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나디아를 서둘러 붙잡고 바스티안이 시동을 껐다. 집까지 금방이니 괜찮다고 만류했지만 바스티안은 듣지 않고 고집스레 따라왔다.어둑한 길을 바스티안과 함께 나란히 걸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6월치고는 조금 선선하다. 그러나 이 선선함도 조만간 열풍으로 바뀌겠지.발치의 돌멩이를 피해 오른쪽으로 비켜갔다.“피자 좋아하세요?”바스티안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좋아해요.”“제가 잘 아는 피자집이 있는데, 지금 가실래요?”걸음을 멈추었다. 따라 선 바스티안이 나디아를 빤히 바라봤다.“지금요?”“거긴 새벽 3시까지 문을 열고 있거든요. 조각피자집인데 인기가 좋아요. 맛은 장담합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집이 코앞이다. 다섯 걸음 정도 남았을까. 게다가 지금은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내일 일찍부터 일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고 지금 들어가서 씻고 잘 준비를 해도 이미 늦은 상태였다.“무슨 피자가 있는데요?”그러나 입에서 나온 건 거절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호응이었다.“뭐든 다 있어요. 8불만 추가하면 토핑도 자유롭게 고를 수 있죠. 그 8불 하나로 먹고 싶은 토핑은 다 넣을 수 있는 거예요.”바스티안이 상기된 표정으로 신나게 말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디아도 덩달아 들뜨기 시작했다.“전 도우에 치즈가 들어가지 않으면 그 어떤 피자도 먹지 않아요.”“저도요. 제가 그래서 제일 사랑하는 피자가 딥 디쉬 피자예요.”그뿐인 말인데 웃음이 새어나왔다.결국 나디아는 발길을 돌려 내렸던 차에 다시 올라탔다.피자가게가 있는 곳은 코벨리스 사거리 중심가였다. 몇 번 길을 오가면서 봤던 곳이다. 카운터 옆에는 각종 토핑 재료들이 줄지어 놓여 있고, 테이블은 건물 벽면을 따라 총 여섯 개가 있었다.나디아와 바스티안이 잡은 자리는 문가 근처였다. 맨 처음 나디아는 소고기와 올리브가 올라간 가게 시그니처 메뉴를 시켰고, 그 다음에는 바스티안과 함께 자유 토핑을 골랐다.고작 베이컨과 바질의 위치를 선정하는 것뿐인데도 즐거워 목소리가 커졌다. 얘기가 길어진다. 틈틈이 시계를 확인했지만 흘러가는 시간이 나디아를 움직이게 만들 수는 없었다.새벽, 사람들이 오고 다시 떠나는 동안 나디아는 여전히 바스티안과 함께 문가 근처 테이블에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혹시 마샤 헤이즈라고 압니까?”핫도그 포장을 벗기면서 바스티안이 물었다.수요일, 오후 3시. 바스티안은 핫도그 상자를 들고 상담실을 찾았다. 흰 박스에 노란 글씨로 ‘허니허니’라고 적혀 있었는데, 일반적인 것보다 크고 속이 푸짐하게 채워져 있었다. 바스티안의 말에 의하면 커노레이에서 가장 유명한 핫도그라고 했다.그리고 그 유명세의 이유로 커노레이에서 퇴사한 직원이 차린 가게라는 설명을 덧붙였다.“여배우 아닌가요?”“아시네요? 연예인에 관심이 없어 모르실 줄 알았는데.”“그렇게 유명한 배우는 저도 알고 있어요.”타는 듯한 붉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그 여배우는 눈에 띄는 외모에 더해 연기력까지 갖춘 몇 안 되는 대표 여성배우로 나디아 역시 그녀가 출연한 몇몇 개의 영화를 알고 있었다.“갑자기 그 배우는 왜 물어보는 건가요?”“이번에 제가 그 마샤 헤이즈와 같이 일을 하게 됐거든요.”바스티안이 한입 크게 핫도그를 베어 물며 말했다.“다니엘은 어쩌고요?”“다니엘과도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니엘의 의뢰로 대신 그녀를 맡게 된 거죠.”“경호를 해주는 건가요?”“그것도 그렇고 사전에 날 수 있는 이상한 싹을 미리 없애는 거죠. 아름다운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 잡초를 제거하는 것처럼.”바스티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왜요? 왜 그렇게 웃는 거예요?”“다니엘이 지독한 사랑에 빠져 있다고 한 말, 기억해요?”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나디아는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말도 안 돼요. 마샤 헤이즈는 결혼했잖아요?”“그리고 지금 별거 중이죠. 그녀의 말에 따르면 별거는 벌써 3년도 더 된 일이라고 하더군요. 재산 때문에 완벽하게 정리를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에요. 조만간 이혼 발표를 할 겁니다.”놀라운 가십이었다. 마샤 헤이즈의 남편이 누구였는지 생각하다 언젠가 영화감독이라는 말을 들은 걸 기억해냈다.“그래서 마샤 헤이즈의 경호를 하는 건가요? 이혼 발표 때문에요?”“아직 재산 분할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든요. 빠른 이혼을 위해서 그녀가 상당수 포기하긴 했지만 지금 같은 때에 다니엘의 이름이 나온다면, 이걸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다니엘이 제게 의뢰를 한 겁니다. 이혼이 제대로 성립될 때까지 그녀의 주변을 살피기 위해서요.”핫도그에서 삐져나온 소스가 바스티안의 손등에 흘렀다. 휴지 한 장을 뽑아다 바스티안에게 건넸다.“마샤 헤이즈는 다니엘이 무기상인이라는 걸 알까요?”놀라움이 가시자 그녀는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든 걸 알고도 함께하기로 결정한 걸까.“글쎄요. 하지만 그런 건 아무 문제도 안 될 겁니다. 그녀가 알고 있다면 각오를 했다는 뜻이고, 모르더라도 이제 와 빠져나오기엔 너무 늦었을 테니까요.”바스티안이 빙긋 웃으며 휴지를 둥글게 구겨 빈 상자에 던져 넣었다.“말했잖아요. 지독한 사랑에 빠져 있다고.”“……사랑만큼 사람을 가장 크게 옭아매는 건 없죠.”바스티안의 말대로 마샤 헤이즈에게는 이 사랑을 위해 직진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은 없을지도 모른다.“아, 다음 주 상담은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샤의 촬영 때문에 지방에 가게 되었거든요.”“어쩔 수 없죠. 괜찮아요.”남은 날을 헤아려봤다. 벌써 6월 둘째 주. 남은 상담은 두 번뿐이고 그중 하나가 이렇게 깨졌으니 이제 바스티안을 만날 일도 결국 한 번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왠지 서운한 기분이 들어 그런 자신에게 살짝 놀랐다.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그런 걸까. 그러기엔 감정의 색이 짙은 것이 신경 쓰였다.“선생님?”“예? 아, 말씀하세요.”바스티안의 부름에 나디아는 서둘러 생각을 지워냈다.“그래서 말인데 다음 상담은 다른 날짜에 해도 될 까요?”“다른 날짜요?”“목요일 어떠세요?”나디아는 머뭇거렸다. 커노레이에는 수요일에만 출근하고 있었다. 일정을 바꾸려거든 그린 힐즈 제 상담실의 예약표를 확인해야만 한다.“상담표를 확인해봐야 하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실래요?”일어나려는 나디아를 바스티안이 붙들었다. 손목에 감긴 손을 흘긋 쳐다보자 바스티안이 웃으면서 부드럽게 나디아를 도로 자리에 앉혔다.“상담실이 아니라 같이 저녁을 먹었으면 하는데요.”바스티안이 지그시 나디아를 바라봤다.“꼭 소개해드리고 싶은 레스토랑이 있거든요.”은근한 어조. 맞닿아 있는 살결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뜨거움. 나디아는 민감하게 바스티안을 의식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고, 동시에 이것이 그 옛날 라이언 켄트너 때와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맙소사.’자신은 바스티안에게 반해 있는 것이다. 마치 남 일처럼 진단 내린 후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인가 빠르게 고찰하기 시작했다.다른 게 없었다. 완벽한 저 얼굴 때문이다. 환상적인 몸매 때문이야. 저런 얼굴과 몸으로 나디아에게 친밀하게 굴기 때문이다. 바스티안은 지나치게 웃었다. 원래 저렇게 잘 웃는 성격인지도 모르지.아니야, 너무 지나치게 웃었다.……어째서 사랑이란 항상 이렇게 예고도 없이 다가오는 걸까. 언제, 어느 때에 시작되는 건지 알려준다면 좋을 텐데. 사랑이란 것은 깨달으면 언제나 이미 시작된 후였다.바스티안의 말이 맞다. 마샤 헤이즈는 뒤늦게 연인에 대한 진실을 알아도 절대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나디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물어보세요.”갑자기 호흡이 크게 뛰어 그를 달래듯 큰 숨을 내쉬어야 했다.“혹시 저한테 관심 있으세요?”바스티안이 작게 웃었다.“그걸 이제 아셨나요?”장난처럼 대꾸하고 곧 표정을 바꿔 진지하게 이어 말했다.“선생님만 괜찮다면 같이 저녁을 먹고, 앞으로도 계속 만났으면 하는데 어떠세요?”……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디아 또한 그러고 싶었으니까.“목요일 몇 시에 볼까요?”바스티안이 환하게 웃었다.“상담실이 언제 문을 닫죠?”“7시에는 닫아요.”“그럼 7시 반 어때요? 제가 상담실로 가죠.”가슴이 뛰었다. 목요일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벌써부터 기대감이 부피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목요일, 입속으로 되뇐다. 목요일 저녁 7시 반. 몇 번이고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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