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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민감한 사안으로부터 살아남기

大王 | 2016-09-30 10:00


“기자 님. 그 아이템은 아무래도 좀 예민한 사안이라......

데스크에서 다른 걸로 가자고 하시네요......”


나는 거절당했다. 담당 에디터의 고민이 길게 늘어선 말줄임표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화 <터널>과 소설 <거짓말이다>를 소개하며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제안을 넣었던 참이었다. 사실, 안 될 거라는 걸 어느 정도는 예감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자 듣고 있던 선배는 “당연히 잘리겠지. 그게 되겠냐.”고 핀잔을 줬다. 

생각해보니, 나는 다른 매체에서 또 거절당했다. 아니 먼저 거절당한 적이 또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지금 와서 이유가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정치적 이유 따위는 아닌 ‘너무 무겁고...’ 같은 얘기였다. 웹툰 <슬픈 대학원생의 초상>을 소개하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지면 성격 상 좀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 민감한 사안으로부터 살아남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글 C 그림 김채영


사안이 민감해 특정 집단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어 글 하나 더 보태는 걸로 독자들의 피로를 가중시킬 수 있다. 세상에 즐겁고 아름답고 재미있는 게 많이 있으니 어둡고 싫고 힘들고 누군가를 상처 줄 수밖에 없는 글을 쓰는 대신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낫다. 비단 세월호나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삼성 반도체나 용산참사 강남역 살인사건 쌍용차…. 이런 사안들 모두가 비슷한 취급을 받아 왔을 거다. 그럼에도 아니 그러니까 좀 써봐야겠다. 세상에 백인백색이니 누군가는 썩 좋지 못한 이 글에서 시작해 생각이 뻗어나가고 책을 찾아볼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슬픈 대학원생의 초상>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갓 대학원에 입각한 석사 1학기의 풋내기 대학원생일 뿐이었고, 교수가 나에게 하는 명령은 명령 그 자체로서도 절대적이었다. 내가 감히 어떻게 교수를 의심할 수 있었겠는가.’ 랩실에서 교수는 절대군주라는 거 다들 알 거다. 권위를 가진 자의 말에 반박하고 반대 움직임을 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교수가 구축한 시스템에 의지하면 얼마나 석학생활이 심플해질 수 있는지 알 거다. <거짓말이다>에서 배와 함께 바다 속에 가라앉은 학생들의 시신을 수습했던 잠수사는 잠수병이라는 천형이 기다리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잠수한다. ‘일이 끝나고 내가 아프면 끝까지 국가가 치료해줄 거야.’ 라고, 시스템의 공고함을 믿으며. 그는 다시 잠수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선내에서 대기하라는,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안내 메시지를 믿고 배에서 기다렸다. 권위와 전문성을 가진 이의 말에 의지했던 삼백 명 넘는 사람들은 모두 희생자가 되었다. 


그 민감한 사안으로부터 살아남기

<거짓말이다>, 김탁환 지음, 북스피어 펴냄


이 사람들은, 잘못이 없다. 잘못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권력 자체가 되는 거대한 (잘 돌아가지도 않는)시스템에 있다. <슬픈 대학원생의 초상>에서 위의 독백을 했던 이는 지도교수의 실험조작에 연루되어 검찰 출두명령을 받는다. 맹세코 그는 조작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실험 데이터를 거꾸로 써야 맞다는 교수의 말에 의심하지 않고 결과를 수정했던 일을 떠올린다. 참아야만 했고 눈감아야 했고 의심치 않고 따랐던 일들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교수를 믿지도, 교수가 쌓아올린 거대한 성채의 실체를 믿지도 못하게 되었을 때 <슬픈 대학원생의 초상>이 나왔을 거다. 세월호 사태를 지켜본 국민들 또한 이제 시스템을, 국가를 믿지 않는다. 얼마 전 경주에서 진도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알아서 밖으로 나가 무너질 것 없는 넓은 공터로 모여 들었다. 야간 자율학습 중이던 학생들은 “가만 있으라”는 선생의 말을 무시하고 건물 밖을 빠져 나갔다. 

무언가를 절대적으로 믿어도 괜찮은 세상은 아마 아홉 번째 평행우주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아무것도 믿지 못해 의심부터 하고 보는 회의주의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은 너무 우울하지 않은가. 언제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있고, 합리적 근거에 의한 의심이 그저 음모론으로 취급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건 믿음만이 가득한 세상보다도 이뤄내기 어려울까?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믿었던 자’들의 희생을 통해 의심해야 한다. 알려는 노력해야 하고, 계속 시끄럽게 떠드는 용기가 필요하다.

주변에 산적한 시스템의 불합리를,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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