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에게 당당할 수 있는 선택 <덴마>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인 양영순 작가의 <덴마> 썸네일 이미지
천재와 범재 사이, 만화가로서의 양영순
2016년 가을, 양영순작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의 그는 데뷔이후 꾸준히 자신을 수식해왔던 “천재”라는 단어에 손사래를 치기 바빴다. 자신이 천재라면 연재 중 막힘이 있을 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범재”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양영순작가가 범재임을 인정할 독자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덴마>의 연재가 잦은 지각연재와 휴재를 거듭했음에도 “믓시엘”을 외치며 경배하는 덴경대들이 집결하는 것을 보면 <덴마>는, 양영순작가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스스로를 구원한 지로로부터 시작될 퀑들의 반격
2017년 첫 연재부터 지각한 <덴마> 2-626화 ‘3. The Knight(154)’와 2-627화 ‘3. The Knight(155)’는 그동안 약쟁이로 낙인 찍혀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던 발암캐릭터, 지로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독자에게 감동과 통쾌함을 선사했다. 지로의 회생은 오랫동안 보이지 않고 있는 <덴마>의 주인공 덴마와 퀑들을 몰아붙이고 있는 세력들, 그리고 그에 대한 음모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려줄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덴마> 2-626화 ‘3. The Knight(154)’ 중에서
– 과거의 나와 조우하게 된 현재의 지로.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준 것은 바로 지로, 자신이었다.
지로가 고래의 배 속을 통과하는 듯한 고난에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영약을 가지고 돌아오는 지난한 과정에서 지로의 과거의 추억은 소중한 매개가 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매개물을 이전 화에서 보여주고 필요한 때에 그 매개물을 다시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덴마>에 대해 경탄하게끔 한다.
<덴마> 2-624화 ‘3. The Knight(152)’ 중에서
– 현재의 내가 과거의 어려웠던 순간을 조우하게 되며 느끼는 내적 갈등.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전하는 안도감
<덴마>에서 지로의 존재는 독자에게 조차 “쟤는 안돼”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민폐 캐릭터였다. 지로의 방황의 시기가 길었던 탓에 결코 나아질 수 없을 것이라고 모두들 인식했을 것이며 그가 다시 일어선다고 해서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로는 예상을 뒤엎고 당당히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지로를 일으켜 세운 것은 행복했던 때의 추억이었고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가 고난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로가 과거의 아픔을 떨치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전하는 위로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는 보편적 진리의 위안과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비단, 지로라는 한 캐릭터의 회생이 인류의 역사라는 관점으로 나아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해왔다는 것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덴마> 2-627화 ‘3. The Knight(155)’ 중에서
– 현재의 지로가 과거의 자신에게 전하는 위로와 고마움.
표현하려는 존재, 그 존재를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존재
양영순작가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캐릭터들은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응당 거기에 있어야할 것 같아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덴마가 덴마이기 위해 필요한 캐릭터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변주가 거대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이끌어나가는 주체이고, 이러한 주체들의 향연이 촘촘하고 조밀하게 설계된 구성 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기지와 캐릭터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내용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보편적 진리를 향하는 것이라면, 작가가 범재든 천재든 관계없이 <덴마>는 그 자체로 이 시대의 명작이다.
홍난지(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