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칼럼] 웹툰 작가의 명절 휴재, 작가도 독자와 똑같은 붉은 피가 흐르는 인간이다
다음 웹툰에서 토요일에 연재되는 작품 ‘천연 天緣'에 명절 휴재 공지가 올라왔다. 해당 작품이 연재되는 1월 28일은 설날이다. 그래서 명절 휴재가 올라온 것인데 거기에 달린 댓글이 비난 일색이었다.
굳이 휴재를 해야 하느냐, 세이브 원고도 많은데 왜 그걸 안 푸냐, 돈 내고 보라는 거냐, 명절이라서 휴재라니 왠 말이냐 등등 불평불만의 연속 속에서 다음 웹툰이 작가들에게 휴재를 퍼준다는 말이 캡춰되어 SNS상에서 리트윗되며 현직 웹툰 작가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해당 댓글에 나온 작가 휴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옳지 않다. 아니,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팩트 자체를 갖추지 못해서 생각나는 데로 그대로 말을 한 것이라 성급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다른 웹툰 플랫폼은 연휴라고 쉬는 웹툰 별로 없는데 다음 웹툰 작가들은 연휴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휴재해서 문제라고 하는데.. 그건 엄연히 웹툰 작가들이 휴재 리스크를 감수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휴재는 플랫폼이 주는 게 아니라 온전히 작가의 선택이다. 모든 플랫폼이 작가가 휴재하는 걸 임의로 막지는 않는다.
휴재를 하면 휴재를 한 화 수 만큼의 고료를 받지 못하는 게 수익적으로 작가가 감수해야 할 리스크다.
연휴라고 꼬박꼬박 챙겨먹는 휴재라는 말은, 최소한 휴재를 해도 돈이 나오는 유급 휴가에 독자 구독수가 바로 수익으로 직결되는 상태일 때 그런 말을 해야지. 무급 휴가라서 돈 못 받는 걸 감수하고 휴재하는 것을 가지고 작가와 플랫폼을 타박하는 건 가혹하다.
웹툰 연재는 기본적으로 연중무휴다. 연재하는 동안에는 명절은 물론이고 법적 공휴일에 쉴 수도 없고, 연차도, 월차도, 휴가도, 방학도, 아무 것도 없다. 병가의 개념도,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챙기기도 어렵다.
쉬는 날 없이 일주일에 한편씩. 만화를 그려서 올려야 한다. 명절날 쉬지 않고 작품 연재를 해도 보너스를 받는 것도, 추가 인센티브를 받는 것도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쉬어야 할 명절에도 만화를 그려서 올려야 한다는 건 엄연히 잘못된 것이다. 정확히는, 한국 웹툰에서 휴일을 보장하지 않은 연중무휴 연재 시스템 자체가 문제고, 거기에 길들여져 휴재하는 작가를 성토하는 독자가 있다는 게 현재 웹툰 시대의 비극이다.
웹툰 작가의 명절 휴재에 대해서, 작가와 독자 이전에. 웹툰 작가도 자신과 같은 인간이란 시점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비난하는 독자도 일을 하는 사회인이거나, 혹은 부모님이 일을 하시는데 명절에 쉬지 못하고 일을 하고. 명절에 쉬기라도 하면 주위에 왜 쉬냐고 주위에 비난을 받는다고 생각해 봐라. 참혹하지 않은가.
당장 28일 설날에 거리에 나가도 절반 이상의 가게가 설날이라 쉬고 있고, 영업중인 가게들도 직원들이 교대 근무로 쉬고 일하고 있는데.. 웹툰 작가가 설날이라고 휴재하는 게 그토록 고깝게 보인다면, 개인주의를 넘어선 이기주의가 극에 달해 인성(人性)이 부족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애초에 휴재하는 웹툰 작가한테 세이브 원고가 있는데 왜 안 푸냐고 비난하는 것도 말 같지도 않은 게, 미리 보기 유료 세이브 원고가 있다는 건 곧 상업 작가임을 방증하는 것이고. 상업 작가는 무료로 작품을 연재하는 게 아니라 엄연히 고료를 받고 연재하고 유료 결재 수익 또한 당연히 취할 수 있는 거다.
인성이 부족하고 공짜 좋아하는 독자들 무료로 보라고 작품 연재하는 게 아니다. 웹툰이 태생적으로 무료 연재로 시작해서 독자들도 무료로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고는 해도, 웹툰 작가들을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 공짜 웹툰 그리는 만화 기계로 취급하면 그게 되겠나. 이게 무슨 염전 섬노예도 아니고 말이다.
웹툰 작가가 휴재를 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독자 입장에서는 남의 일로 취급할 테니. 현대인으로서의 지성을 갖추고 있다면 이해를 시도하겠지만, 보통은 자기 감성만 우선시해서 타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는 게 일반적이리라.
단, 휴재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해도 너무 모질게 타박하지는 말자. 아쉽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는 건 독자로서 충분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독자이고 팬이니까 작품에 대한 지지와 애정 때문에 불평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것 까지는 가능하다.
허나, 명절날 왜 쉬냐고 타박하는 건 독자 이전에 인간으로서 너무한 처사다. 명절이니까 당연히 쉬어야 되는데 쉬지 못하는 상황이고. 명절이라서 편하기는커녕 명절을 지내는 게 힘들어 마감과 병행하는 게 불가능하니 리스크를 감수하고 쉬는 거지.
단적으로 예를 들어 보자. 차가운 군청색 하늘 아래 새벽 시간에 고향으로 내려가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제사상을 차리고. 일가친척 모두 모여 제사 지내고 밥 먹고 이야기 하다가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됐을 때 다시 차 몰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밤이 되어 달이 뜬 우리집에 도착한 설날이 내 만화 마감일이다?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찔한 일이다.
그럼 고향 내려가기 전에 원고 완성해서 마감을 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안 되니까. 힘드니까 쉬는 거다. 특히 설날, 추석은 제사 지내는 집은 쉬어도 쉬는 게 아닌 날이고 이건 어느 집이나 다 똑같고 작가들 집 역시 마찬가지다.
연휴에도 쉬지 않는 건, 연휴에도 쉬지 말아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쉬면 쉬는 만큼 돈을 벌지 못하니 이를 악물고 그리는 거다.
작가도 독자와 똑같이 붉은 피가 흐르는 인간이다. 작가와 독자 이전에 같은, 살아있는 인간이란 점을 상기하자.
2017년 신년 설날에 새해복 많이 받으라고 덕담을 하지 못할 망정, 명절 휴재한다고 타박하다니 진짜 너무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