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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뽀짜툰> & 아카데미 후보작<컨택트> 닝겐들이여, 한 살 늙었다고 좌절 말라

EditorAnne | 2017-02-06 00:20

(웹툰과 최근 개봉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살아갑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몇 살인지는 알 길 없지만 아무리 어린 사람도 하루하루 근면하게 늙어가는 세포를 막을 수는 없는 법.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뀐 지 2년차, 확실히 몸이 다릅니다. 똑같이 먹어도 살이 더 찌고 똑같이 운동해도 살이 덜 빠져요. 생일선물 품목도 확연히 달라졌어요. 고급 화장품, 향수 따위는 받아도 반갑지 않아요. 왜냐고요? 이제 취향이라는 게 생겼거든요. 저는 색조화장품은 생략하는 데다, 향수도 딱 하나만 쓰는 여자란 말이죠. 그래서 요즘은 받고 싶은 선물을 정했다가 알려주는데 대략 아이허브를 통한 영양제나 압박스타킹, 간단한 운동기구 같은 것들이죠. :)


변화가 꼭 나쁜 건 아니에요. 푸념하듯 적었지만 사실 요즘 아주 즐겁거든요. 넓은 부엌이 있는 곳에서 지내게 됐는데 20대 중반 셰어하우스 생활을 하며 익혔다가 묵혀둔 요리 실력을 다시 발휘하는 중이에요. “내 인생에 샤넬백은 없겠지만 대신 유기농 식단으로 채우겠어!” 야심차게 외치며 팬을 달구고 버터를 녹이고 마늘을 볶아요. 냄비에 물을 끓이고 파스타면을 넣고 소금을 뿌려요. 마늘과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청양고추에 버터를 녹여 볶은 프라이팬에 잘 익힌 면을 넣고 뒤적뒤적하는 순간의 기쁨을 혹시 아세요? 통후추를 갈아 뿌리고 파마산 치즈도 곁들여요. 마무리는 파슬리 가루. 어제는 꽤 유명한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진짜로 제가 만든 게 훨씬 맛있었다고요. 술자리도 집에 친구를 초대해 열어요. 술꾼 앤이 이렇게 변했다며 많이들 놀라죠. 나날이 두툼해지는 팔뚝 살과 허벅지는 여전히 스트레스지만, 이런 변화는 아름다운 것 같아요.


아름다운 변화라고 해서 꼭 기쁜 건 아니에요. 최근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연재중인 채유리 작가의 <뽀짜툰>을 보고 다시금 그 사실을 마음에 새겼죠. <뽀짜툰>은 고양이를 키우는 애묘인 들 사이에서는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이죠.

[웹툰 리뷰]뽀짜툰 - 유리
서정적이고 실감나는 고양이의 아름다운 그림도 그림이지만, 애완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가 아니면 그려낼 수 없는 세밀한 일상의 결이 잘 살아있기 때문이죠. 최근의 몇 회는 이 만화의 팬들에게는 읽기 힘든 내용이었을 겁니다. 작가가 키운 첫 고양이인 짜구의 죽음을 다뤘기 때문인데요. 복막염에 걸린 짜구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그려내 읽는 내내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요.

[웹툰 리뷰]뽀짜툰 - 유리

작가는 짜구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합니다. 그나마 잘 먹는 사료를 구하고, 병원에 데려가 수시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하려 애쓰죠. 그러나 짜구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됩니다. 점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고통에 울부짖으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짜구를 보면서 작가는 안락사를 고민합니다.

[웹툰 리뷰]뽀짜툰 - 유리
하지만 의식이 명확한 짜구를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실행하지는 않습니다. 혀로 물을 마시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짜구는 어느 새벽 극심한 고통에 괴로워하고 끝까지 생명을 놓을 수 없었던 작가는 결국 안락사를 선택합니다. 짜구가 떠난 후 온 가족은 슬픔에 잠깁니다. 그러나 작가는 다른 고양이들 앞에서 슬픈 내색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짜구는 때로 작가의 꿈에 생전의 건강한 모습 그대로 나타납니다. 더 이상 아픔이 없는 곳에 있다는 사실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웹툰 리뷰]뽀짜툰 - 유리

[웹툰 리뷰]뽀짜툰 - 유리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체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황홀하면서도 무서운 일입니다. 변화하는 세상의 법칙에서 사랑이라는 감정도 변하지만, 대상도 변합니다. 함께 늙고 쇠약해지는 것은 슬프지만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낸다면? 가슴이 무너지는 슬픔을 감내하는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칩시다. “이렇게 아플 거면 차라리 00을 사랑하지 않는 게 나았을까?” 확신하건데 열에 아홉은 아니라고 할 겁니다. 변화와 상실은 사랑을 얻는 데 치러야 하는 대가니까요.

[웹툰 리뷰]뽀짜툰 - 유리[웹툰 리뷰]뽀짜툰 - 유리

(영화 포스터 & 스틸 컷 출처 : 파라마운트 픽처스)

최근 개봉한 영화 <컨택트>를 보면서 저는 본질적으로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어요. 영화의 여주인공인 루이스가 맞닥뜨리는 것도 결국 같은 상황이거든요. 비극적인 결말을 알면서도 사랑하기를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루이스는 기꺼이 선택합니다. 그녀는 삶이란 취향에 맞는 것만 골라 먹을 수 있는 초콜릿 상자 같은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얻기 위해 가장 큰 슬픔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아무리 큰 슬픔도 그것을 선택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A국의 이상한 대통령과 K국의 불안한 정세와 J국의 방사능대란 때문에 괜히 심장이 쪼그라드는 요즘. 저 같은 소시민이 할 수 있는 건 결국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선택하고 변화로 인한 상실까지 받아들일 각오를 하는 것. 그리고 변화의 흔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 인상 써서 생긴 이마 주름이랑 웃어서 생긴 눈가 주름은 같은 주름이라도 천지차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푸지게 파스타 두 그릇 만들어 먹었으니, 이 글 다 쓰고 운동장 5바퀴 가볍게 뛰고 오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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