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어른들의 고백서 <찌질의 역사> , <인천상륙작전> 외
네이버 웹툰 ‘찌질의 역사’가 끝났다. 민기는 모두 다 얻었다. 왕따를 당해 자살했다고 여긴 한 고등학생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고, 기자를 그만두고 오랜 꿈이었던 소설가가 됐고,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했던 가을과 재결합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더할 나위없다. 자신이 저지른 모든 실수를 다시 주워 담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내고, 인간적으로도 한층 더 성장한 것이다. 회사와 애인에 팽당한 그를 다시 정신 차리게 만든 건 아이러니하게도 설하, 민기를 한없이 찌질하게 만들었던 옛 사랑이었다. 정말 찌질한 것은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설하의 말을 듣고 민기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이후 그는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국장에게 알랑 방구를 껴 뉴스 기자석에 다시 앉는다. 그 다음 생방송을 통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고등학생의 증거물을 보관하고 있으며 현재 ‘국장’이 분석중이라고 발언해 버린다. 있을 법한 일이고 영리한 반전인 건 맞다. 하지만 갑자기 영화 <더킹>의 주인공 조인성이 겹친다. 십년 넘게 어마무시한 권력으로 사리사욕을 채워온 검사 정우성의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필요했던 게 고작 기자들 앞에서 한 방 터트리는 기자회견 뿐? 배알이 꼴린다. 두 남자 분들, 그런 게 가능한 세계로 우리도 데려가주겠니?
#2. 사람은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세상도 그렇다.
<인천상륙작전>에 등장하는 ‘삼촌’은 의심할 여지없이 나쁜 놈이다. 일본의 앞잡이 짓을 해먹었으니까. 그리고 광복이 되자마자 자신이 살겠다고 일본 앞잡이를 죽여 버리지 않았나. 하지만, 이 삼촌의 한 마디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인 것을. 삼촌 입장에서는 살기 위해 자신의 방식대로 한걸음 내딛은 것뿐이다.
차라리 삼촌은 솔직하다. 더 무서운 것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뛰쳐나갔던 선량한 얼굴의 양반 할아버지다. ‘가네다 요시히로’라는 일본 이름을 쓰면서도 늘 한복을 즐겨 입었고, 일본의 앞잡이 짓을 하면서도 몰래 독립군의 군자금을 빼돌렸던 지식인. ‘세상이 어찌 될지 모르니 양쪽을 항상 살펴야 한다’고 말하며, 광복 후 할복자살한 일본인의 집에 숨어들어와 주도면밀하게 재산을 빼돌리는 태연한 얼굴. 웹툰 아래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세월만 바뀌었지 사람은 그대로... 그때그때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 K국과 A국 이야기
요즘은 꿈에도 트럼프가 나온다. 시도 때도 없이 입방아에 올라서 그런가 보지. 법륜 스님이 그러셨다. 오바마의 미국은 화장한 얼굴이고, 트럼프의 미국은 민낯이라고. 새삼 놀랍긴 하지만 어쩌면 국가 입장에서 전략을 수립하기에는 더 잘된 일일수도 있다고. 미국은 원래 그런 나라고, 나쁘다 좋다로 말할 수 없다고. 그래, 이제는 환상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최 여사의 뉴스를 보다 문득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흠칫 놀랐다. 분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겨움 아닐까? 나같은 멍청한 사람들이 또 있다면 우리는 사안의 중요성을 잊은채 지겨워하다가 시선을 돌리고 그리고 끝내 잊어버리겠지. 그리고 같은 일은 반복될 것이다.
“사람은 안변하는 것 같아. 개체로서의 인간은 안 바뀌지만 인류는 진보한다는 것이 신기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던 한 바보 대통령이 있었다. ‘그렇게 믿으니, 그렇게 빨리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게지요’라는 말이 입까지 차오른다. 인류는 정말 진보하고 있는 걸까? 일단 스스로를 돌아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어서, 차마 인류 전체로까지 눈을 돌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괴물이 되지 않아도 살아남는 법을 그리는 웹툰이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하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