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성인 웹툰 , 투믹스의 <목줄>
지난 주에는 아쉬웠던 성인웹툰에 대해 글을 썼는데요. 오늘은 그 반대의 사례를 들어볼까 합니다. 투믹스에서 연재중인 <목줄>이라는 작품인데요. 글에는 이화성 작가, 그림에는 손봉규 작가가 수고해주고 계십니다.
천애고아가 된 여주인공 지현은 살아남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비정한 현실에 익숙해져야만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한 지현은 성인이 되는 날 자신의 후견인인 권력자에게 처녀를 바칩니다. 사시에 합격하고 검사가 되고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 자존감도 내던진채 개처럼 살아가던 지현은 어느 날 작전을 수행하다가 미친 '놈'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평탄하게 잘 풀려나갔던 지현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합니다.
<목줄>의 설정에 일단 눈길이 가는데요. 물론 권력과 성의 결탁을 다룬 작품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가령 다음에서 연재되는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도 비슷한 장르로 볼 수 있겠죠. 하지만 화류계 여성이 아닌 현직검사가 그저 더 높은 권력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진다는 설정은 꽤 신선합니다. 주인공의 나레이션과 함께 진행되는, 주인공의 비중이 아주 큰 웹툰이기 때문에, 그 설정이 어설프면 극이 붕 뜬 느낌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초반부터 왜 지현이 그런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를 정확히 설명해 주는 것이 이 작품의 첫번째 미덕입니다. 여검사가 된 지현이 범인의 검거를 위해 술집여자로 분장해 작전을 수행하다가 미친 놈과 엮이는 설정도 전혀 작위적이지 않고요. 잘 나가던 인생의 걸림돌로 여겨지던 '놈'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도 설득력있게 그려집니다. 나중에 지현은 잘나가는 듯 했던 자신의 삶이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놈'에 비하면 훨씬 비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하죠.
'놈'에 대해서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놈'은 지현을 술집여자로 오인하고 강제로 키스하고 성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화대를 주고 사라지죠. 여기까지는 그냥 미친놈처럼만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현은 부와 명예를 제공하지만 자신을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권력자들보다 '놈'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됩니다 '놈'은 비정상적인 인물입니다. 입으로 뱉은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빌린 돈과 빌려준 돈에 대한 정리는 칼보다도 정확하죠. 거짓과 술책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하루하루 버텨온 지현은 기이할 정도로 약속을 잘 지키는 '놈'에게 이상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놈' 역시 지현에게 묘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놈'은 지현이 검사라는 걸 알지 못합니다. 그에게 지현은 예쁘고 이 바닥 생리를 잘 몰라서 걱정하게 만드는,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는 여자입니다. 그는 지현의 육체를 욕망하지만 제대로 된 값을 치르려고 합니다. 화대 4만원은 그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고요, 그로서는 여자를 대하는 최고의 예우이기도 합니다. (그 나름의 방식으로요)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건다는 점에서 저는 웬지 존윅이 생각나더라고요. 모르시는 분은 영화를 보시길 :)
극이 진행될수록 지현은 점점 더 높은 사람에게 인계됩니다. 권력자에서 더 큰 권력자로 이동하는 거죠. 그리고 그 끝판왕인 '양회장'에게 인계되며 지현은 철저히 유린당합니다. 양회장은 절대 권력과 부를 소유한 인물로, 모든 권력자들의 왕과 같은 존재입니다. 검사들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잘 나가는 연예인들도 그 앞에서는 나체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야 합니다. 더 큰 권력을 누리기 위해 지현 역시 그 길을 선택합니다. 한 번 발을 들인 이상 빠져나갈 길은 없습니다. 지현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시키며, 더 큰 권력을 향해 가까이 다가갑니다. 하지만 그것은 양회장의 기분에 따라 뒤집힐 수 있는 모래성같은 것이죠. 그리고 지현은 절대 그들과 동등해질 수 없습니다. 조금 더 영리하고 예쁜 개일뿐인 거죠. 절체절명의 위기, 조금의 허점이라도 보이면 상대가 내 머리 위에 또아리를 틀고 볼을 깨무는 세계. 지현은 그 찰나에 '놈'을 구할 것을 선택합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현은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타인을 구한 것이라며 기뻐합니다. 언제나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남에게 기생해야 했던 그녀의 읊조림은 마음을 심하게 울립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섹스신이 낭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씬은 매회마다 등장하지만 스토리상 필요해서 들어갑니다. 씬을 넣기위해 스토리를 맞추는 상당히 많은 수의 웹툰과는 차별화되는 부분이죠. 또한 그 씬은 파격적이면서도 권력층의 실상을 정확히 묘사한 느낌을 줍니다. 여검사가 나체로 나이든 회장의 무릎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공유하는 장면들은, 실제로 있었던 성상납 사건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대체 어떻게 자료조사를 한 것일까? 단지 상상에만 기반한 걸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모든 설정이 현실적이고 묘사도 실감납니다.
물론 성적흥분을 목적으로 웹툰을 보는 독자들에겐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이 작품은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사실 이 작품은 성인이 볼 수 있는 등급일 뿐, '야툰'이라고 하기엔 좀 어폐가 있어요. 하지만 성인물에 대한 오해를 풀기에는 적절한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성의있는 그림과 설정,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숙함, 게다가 가장 좋은 건 나레이션의 대사가 좋아요. 뻔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 웹툰의 성격을 단정적으로 드러내는 한 컷을 개인적으로 꼽으면서 마무리를 지을까 해요. 지현의 거래로 폭력배들에게 '놈'이 풀려납니다. 지현은 '놈'에게 양회장 패거리를 찾아가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지현은 몰랐지만 그 부탁은 '놈'에게는 마치 자살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후에 밝혀지게 되겠지만) 그러나 '놈'은 지현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그리고 생뚱맞게 '니 가슴 한 번만 빨자'라고 말합니다. 글로는 그 묘한 정서를 다 옮길 수 없네요. 그리고 지현은 옷고름을 풉니다. 마치 아이가 엄마젖을 빨듯 지현의 가슴을 빨던 '놈'은 "잘 살아"라는 말만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그 행위는 '놈'에게 있어 단순한 성적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이성으로 육체적으로 좋아하는 한 여인의 부탁을 들어주면서(자신은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여인에게 흔적을 남기고 싶은 혹은 자신에게도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어떤 욕구였던 것이죠. 참고로 '놈'은 지현이 싫으면 거절해도 된다고 밝히니, 유린하려는 목적은 없었던 게 확실합니다. 이 웹툰은 '난 다른 성인툰과는 달라'라고 말하지 않지만, 이런 미묘한 씬들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다룸으로써 스스로 차이점을 만드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