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고교생의 부탄가스 폭발 실험 사건. 한국 웹툰의 Please Don't try this at home
2017년 2월 15일경, 경기도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18살 고교생 A군이 부탄가스로 폭발력 실험을 하다가 실제 폭발 사고가 발생해 찰과상을 입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정확히, 아파트 5층 안방에서 부탄가스 폭발력 실험을 한다며 부탄가스 둘레에 휴지를 감고 테이프를 붙인 뒤 불을 붙여서 플라스틱 용기에 넣어 베란다에서 그걸 지켜봤는데 폭발이 발생해 그 여파로 안방 문과 베란다 창문이 파손되었고, 베란다에 있던 A군은 유리 파편에 맞아 찰과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경찰에서 A군은 웹툰에서 부탄가스 폭발력을 이용해 적을 물리치는 장면을 보고 실제 폭발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려고 실험을 했다고 증언을 했고, 해당 기사에서도 아예 ‘웹툰 본 뒤’ 고교생이 부탄가스 폭발력 실험하다 폭발이란 제목을 붙였다.
‘웹툰 본 뒤’라는 말을 강조하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실었는데 실제로 사건에 관련된 것이 어떤 웹툰인지조차 나오지 않았다.
네이버 웹툰에서 채용택 작가/김재한 작가의 토요 웹툰인 ‘부활남’이 해당 웹툰으로 추정되는데 2016년 6월 24일에 올라온 7화 내용 중 주인공이 홀홀단신으로 조폭들을 상대로 신문지로 감고 불붙인 부탄가스로 폭발을 일으켜 싸우는 내용이 나온다.
그건 만화 속 내용이지, 현실에서 따라하라고 그린 것이 아닐뿐더러, 부탄가스 용기 자체에 가열 금지에 대한 위험 경고문이 붙어 있다. 그 때문에 부탄가스 용기를 버릴 때는 용기를 거꾸로 세워서 남은 가스를 빼고, 직사광선을 피하고, 구멍을 뚫어 가스를 제거하는 방법 등이 권장되어 쓰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외도 아닌 아파트 집 베란다에서 그런 무모한 실험을 하고 피해를 입은 건 전적으로 실험자 본인의 잘못이다.
다 큰 성인이라면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져야 하지만 실험자가 18살 미성년자니 보호자인 부모의 관리 소흘 문제를 따져야 하는데, 굳이 기사의 제목을 ‘웹툰 본 뒤’로 강조해서 웹툰이 문제가 되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 만화계의 흑역사인 정병섭 사건의 데자뷰가 느껴진다.
정병섭 사건은 1972년 서울 상동구 하왕십리동에서 당시 나이 12세인 국민학생 정볍섭이 목을 메어 숨졌는데, 사망 이유가 평소 만화를 좋아하는 만화광이었는데,만화가게에 갔다 왔다가 누나에게 만화는 사람이 죽었다가도 살아나니 자신도 한 번 죽었다 살아나는지 시험해보고 싶다고 말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당시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정부와 언론이 만화를 사건의 범인으로 몰고가 대대적인 단속으로 이어져 만화 검열과 함께 만화 가게 보이콧 운동에 만화 화형식까지 벌어져 한국 만화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번 부탄가스 폭발 사건과 정병섭 사건을 함께 엮는 것은 쓸데없는 걱정인 기우(杞憂)이자 바늘 만한 것을 몽둥이만하다고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고가 터졌을 때 사건을 벌인 당사자의 잘못을 물어야지, 웹툰 탓으로 돌리는 건 안 될 일이다.
특정한 사건 때 어김없이 나오는, 사건 피의자가 어떤 게임을 즐겨 했다 뭐다 하면서 게임 탓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고 행여나 웹툰 규제와 검열의 목소리를 낸다면 45년 전에 발생한 정병섭 사건의 과오를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이 일으킨 문제를 만화와 결부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화 탓, 게임 탓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언론의 인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웹툰에 미국 프로 레슬링 단체 WWE의 경고문인 'Please Don't try this at home(집에서 따라하지 마시오)'가 붙어야 저런 일이 안 생길까?
근데 부탄가스 용기 내에 가열 금지 경고문만 봐도 기본 상식이 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벌이지는 않았을 텐데 진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