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웹툰 조석 작가의 사자후(獅子吼). 한국 웹툰판 시빌 워(Civil War) 발발?
2017년 8월 1일. 8월이 시작된 첫날, 네이버 웹툰 ‘마음의 소리’의 작가이자 웹툰 작가 협회 초대 회장인 조석 작가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성 만화가의 저격글을 올렸다.
글의 내용은 만화 시장이 다 망한 거 웹툰이 겨우 다시 시작해 살려 놓고 잘나가니, 기성 작가가 주인 행세하려 들고 상석이나 요구하며, 웹툰의 문제가 어쩌고저쩌고 하며 가르치려 든다고 한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일단, 지금 현재 웹툰의 부흥기를 주도한 것은 과거 시대의 출판 만화가들이 아니라, 현 시대의 웹툰 작가들이 맞다.
만화 시장이 고사 위기에 빠져 있다가 웹툰으로 세대교체를 이루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서 발전시켜 나간 것은, 스마트폰의 보급이란 환경적인 요인의 천운도 있겠지만 그전에 거기에 맞춘 작품 자체를 만들어 공급한 웹툰 작가의 공이며 이 부분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 때문에 웹툰이 흥한다고 해서 웹툰 시대에 활동한 적이 없는 기성 작가가 다짜고짜 찾아와 상석을 요구하며 대우를 해달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이게 무슨 디아블로 3 현상금 사냥 퀘스트 도는데 퀘스트 다 깨고 호라드림 상자 받으러 갔더니 디아블로 1 유저가 갑자기 난입해서 강제로 파티에 합류해 퀘스트 보상만 챙기고 떠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만화가 협회에서 웹툰 작가 협회가 분파시키면서, 조석, 주호민 등등 젊은 작가들이 회장, 부회장, 간부로 임명했다면, 그 젊은 피로 운영되는 걸 밀어줘야지. 대뜸 누군가 찾아와 나이로 밀고 붙여 한 자리 요구하는 건 부적절한 일이다.
네이버 작가를 자칭하는 익명의 글을 보면 일부 기성 작가가 작가 모임에 나와서 웹툰 작가를 상대로 똥군기를 부리고, 웹툰 작가 협회에 회비도 안 낸 작가들이 자꾸 협회 일에 간섭하려 드는 패악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몰상식한 일이라 웹툰 작가들이 반발하는 게 당연하다.
과거의 이력과 경력으로 부심을 부리는 것은 번짓수를 잘못 찾은 것으로, 현대의 현직 작가들한테 전혀 어필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예전에 무엇을 했었다' 이게 아니라 '요즘 무엇을 하고 있다.' 이거다.
웹툰이 지금 이렇게 흥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웹툰 시대 초기 때 기성 만화가들이 웹툰 자체를 깔보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었다. 작가 모임 술자리에서 웹툰 작가들 앉혀 놓고 웹툰도 만화냐고 까던 몰상식한 선배 작가에 대한 일화부터 시작해서 본인도 기성 만화가였다가 웹툰 작가로 클래스체인지 했으면서 요즘 웹툰 작가들 기본기 떨어지고 그림체 일본풍이라고 수준미달이라며 쯧쯧거리는 인터뷰를 했던 사례도 분명 존재 했다.
유료 웹툰 플랫폼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웹툰 그려봤자 돈이 얼마나 되냐 마냐를 따지며 웹툰의 미래가 불투명할 때는 맛 좀 보시라니까 밥상 뒤엎고 찬거리가 요거 밖에 없냐고 무시하더니, 웹툰의 미래가 밝다고 하니 냅다 밥상에 숟가락 얹는 것은 양심불량이다.
또한, 출판 만화와 웹툰은 시대도, 세대도, 스타일도 전부 다르니 출판 만화를 기준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가르치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지금 현 시대의 웹툰이 예전보다 전반적인 퀼리티가 상향되는 게 아니라 하향 평준화되고 있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웹툰 자체의 퀼리티가 낮다면 같은 작가로서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고, 퀼리티 상승을 위한 조언도 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물론 그게 딱 조언에서 그쳐야지,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한다 어쩐다 하고 강요하고 강제하는 것이 되면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지적과 조언은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웹툰이 출판 만화 시절의 만화보다 부족해 보인다고 해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여 가르치려들면 그 의도가 어떻든 간에 진심이 전해지기 힘들다.
반대로 웹툰 작가도 세대가 다르다고 해도 기성 만화가를 무조건 불신하는 건 좋지 못한 자세다.
기껏 머리나 빡빡 밀며 울고불고 했다는 문구는 과도한 디스다.
기성 만화가의 삭발식은 90년대 후반에 청보법으로 공윤심의와 검열로 한창 만화가 탄압될 당시. 젊은 만화가들이 모여서 삭발식으로 저항한 것이다. 지금의 젊은 웹툰 작가들이 심의의 큰 제약을 받지 않고 창작활동을 할 때. 그 시절의 젊은 작가들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 받는 가혹한 심의, 검열의 환경 속에서 그렇게 투쟁한 것이다.
그때 그 작가들의 노력이 지금 웹툰 시대의 부흥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과거 자체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조석 작가가 웹툰 1세대 작가라고 해도 그걸 디스할 자격은 없다. 그런 어려운 시대에 작가로서 살아본 것도 아닌데 왜 당신들은 그 시대를 극복해내지 못했냐고 까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근본적으로 한국 만화 시장이 고사 위기에 처한 것은 만화가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 청보법(청소년 보호법)에 만화계가 치명타를 입고 쇠락한 것이다. 그걸 기성 작가들이 무능하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 당시 만화계에서 청보법은 작가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대재앙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기껏 머리 빡빡밀고 울고불면서 만화 시장을 살리지 못했다고 하는 건 상식에 어긋나는 발언이다.
'우리들이 웹툰으로 여기까지 올 때 당신께선 무얼하셨나요?'라고 따져 묻던데, 만화책 화형 시대를 거쳐 청보법을 겪은 기성 작가들을 기준으로 보자면 그들은 웹툰 시대가 오기까지 그저 만화가로서 살아남았다. 만화가의 꿈을 버리지 않고, 만화를 그린다는 의지를 꺾지 않은 채 끝까지 버티면서 살아남은 것 뿐이다. 그렇게 살아남으면서 한국 만화 자체가 사라지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해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이제 스스로의 손으로 웹툰을 그리며 새 시대의 만화가가 된 것인데 만화 시장 망했다고 옛날 만화계 자체를 없던 취급하면서 웹툰이 되살렸노라 무에서 유를 창조한 듯이 말하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본래 만화계와 웹툰계가 시대/세대로 분리되어 있으니 작가로서의 선배, 후배의 개념을 따지기 어렵고, 애초에 창작계에서는 선후배 기수를 따질 만한 동문이나 소속 체계라고 할 것이 마땅히 없으니 나이와 경력에 따라 연장자 대우를 해주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그것을 초월할 정도로 연배가 높으신 분들은 선생님, 화백이라 부르며 존경을 표해야 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해서는 될 말과 안 될 말은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선배에 대한 예우를 지키란 게 아니다. 상식을 지키란 소리다.
뭔가 욱하는 심정으로 즉석에서 써내려간 글 같은데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다 해버리면 필연적으로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조석 작가가 올린 글에는 타겟이 명확하지 않아 불특정 다수의 기성 작가를 대상으로 한 것처럼 보여서 웹툰 작가 VS 출판 만화가의 진영 싸움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 무슨 초인, 아니 웹툰 작가 등록 법안 같은 걸 추진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러니한 건 조석 작가가 디스한 그 삭발식에 참여했던 만화가들 말인데. 그 중 일부는 지금 현재 웹툰 시대에 적응해서 신작 발표하면서 선전하고 있다. 조석 작가가 웹툰으로 여기까지 올 때, 새 시대에 뒤쳐지지 않고 부던히도 애를 쓰며 쫓아와 나란히 선 출판 만화 출신 작가들이 있는데 기성 만화가 자체를 구태로 치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든 이번 사건을 초래한 원흉이자 분탕종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현 시대의 웹툰 작가랑 구 시대의 만화가 사이의 감정의 골을 더욱 깊이 만든 작금의 현실이 개탄스럽다.
만화라는 공통의 화제로 구세대는 신세대를 이해하고, 신세대는 구세대를 존중해서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웹툰 작가와 출판 만화가. 아니, 만화인으로 대동단결해 함께 같은 미래로 나아가는 건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
화합의 때가 한창 이른 일이고 꿈에 불과하다면, 필자 개인의 호기심으로 최소한 이 사건의 흑막이 누군지 알고 싶다.
과연 이번 한국 웹툰판 시빌 워(Civil War)에서 제모 남작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