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왕국 일본은 없다. - 일본만화가들은 과연 부유한가
해당 칼럼은 2005.09.01에 작성되었습니다.
12년이 지난 후 일본에서 일본 만화가 차지하는 위상과, 한국에서 웹툰이 차지하는 위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주류 문화로 편입되기 시작한 웹툰은 이제 양적&질적 팽창을 넘어 다른 미디어 영역으로 확장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00.
일본은 만화 왕국이다. 이 대전제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만화 왕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은 그 만화왕국의 화려함에 걸맞게 대단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화려한 성공담은 인근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한국 시장에도 전해지고 최근 한국의 어려운 출판 만화 시장의 사정과 비교되어 대단히 크게 다가오게 마련이고 이런 성공담의 상당부분은 물론 경제적인 성공에 대한 부분이다. 그러나, 한국에 알려진 일본 만화가들의 화려한 성공은 극히 일부만의 이야기가 과장되어진 측면이 있으며 그 이면은 그렇지만도 않다. 오늘은 이러한 일본 만화 작가들이 과연 실재로 얼마만한 경제적인 이윤을 보장받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 보자.
01.
재미삼아 일본에서 정점에 오른 몇몇 작가들의 성공담을 간단하게 소개해보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만화 [드래곤 볼] 의 작가인 도리야마 아키라. 그의 경우, 슈에이샤와의 독점 계약 조건이 화제가 되는데 천재 작가로 불리는 그를 잡아두기 위해서 출판사 측이 내민 독점 계약 조건은 “다른 잡지에서 만화를 그리지 않을 것” 이라는 조건하에 계약금 10억엔 ( 한화로 약 90억원 ) 이었다고 한다. 즉, 아무것도 안하면 10억엔이라는 거금을 준다는 조건이었다. 그가 거주하는 나고야 지역에서는 주변에서 가장 거액의 세금을 납부하는 그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는 것을 막기위해서 나고야 공항에서 그의 집까지 직통 도로를 뚫어준 것이나, 일본의 섬을 몇개 소유하고 있다는 이야기 또한 화제가 되었다. [란마 1/2], [이누야샤] 등으로 유명한 타카하시 루미코 같은 작가가 일본의 소득세 랭킹 상위권에 꾸준히 오르는 것 (일본은 소득세를 많이 납부한 사람을 언론에 공개하는 편이며, 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나 , [시티 헌터] 로 유명한 작가인 호죠 츠카사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맨션을 충동구매 했다는 이야기나 [짱구는 못말려] 의 작가인 요시토 우스이가 [짱구…] 로 번 돈으로 지가 비싸기로 유명한 도쿄 안에 집을 두채 지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이외에, 그 만화의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만화 부수 면에서는 일본의 각 잡지에서 상징적인 판매부수로 불리우는 100만부 (그것도 누적이 아니라 초판 100만부다) 를 넘는 작가들이 셀수 없이 많고, 이런 대량 부수 신화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이 [원피스] 의 초판 260 만부이다. (이전에는 타케히코 이노우에의 [슬램덩크] 로 250만부를 찍었다) 단지 오해가 없었으면 하는 것은, 이른바 이런 소년지의 히트 만화들은 단가가 390엔 전후로, 500 엔대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청년지의 그것과는 실질적인 작가 수익면에서 보자면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단행본 1 권당 작가의 몫으로 배당되는 돈은 정가의 10%로 정해져 있으므로, 성공한 작가들이 얼마만한 거액의 인세를 받아가는지 짐작이 가능하며, 왜 위에 나온대로 마치 드라마에서나 등장할 만한 에피소드가 만들어지는 지를 알만한 대목이다.
이런 성공담은 물론 바다 건너 한국에도 전해져 한국의 만화 종사자들이 일본 시장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되며, 이는 한국에서 잡지 만화의 판짜기를 할때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러한 성공한 소수 작가들의 화려한 외양에 가려서 극히 일반적인 만화가들의 생활은 어떠한지가 알려져 있지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의 보통 만화가들의 생활은 과연 어떤 것일까?
02.
보통 일본 메이져 만화 잡지의 원고료는 1만엔 안팎으로 정해져 있다. 한국이 3-4 만원 선에서 원고료가 책정이 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대단히 많은 금액으로 보일지 모른다.
(중소 만화 잡지에서는 7000-8000 엔 정도에서 시작하는 곳도 있다)
주간 잡지 연재를 생각할 경우 보통 한 회에 평균 20 페이지 정도를 연재하게 되는데 이렇게 보자면 80 페이지에 80 만엔 정도의 수익을 얻게 된다. 대단히 많은 금액으로 보일지 모르나 이게 그렇지가 않다. 대부분이 생활에 쪼들리는 생활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유는 일본의 만화 원고 제작에는 아주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최근의 일본 만화는 결코 혼자 힘으로 제작하기 어렵다. 만화의 작화 수준이 매우 고도화되어 있는 편인데다가 주간 만화를 중심으로 짜여진 일본의 만화 체제는 보통 3-4 명 정도의 스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이런 스텝을 수용할 사무실은 필수이고, 전세 등의 주택 임대 개념이 없는 일본이다 보니 대부분 8-9 만엔 이상하는 비싼 월세를 내고 사무실을 월 단위로 임대해서 사용한다. (그나마 이것은 주택사정이 여하한 교외의 이야기이고 도쿄의 경우라면 12-13 만엔을 호가한다) 여기에 일본의 인건비 체제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른바 문하생이라 하여, 최소한의 용돈 정도만을 주고 만화가로 자립할 때까지 만화를 가르치며 작업을 도우게 하는 것이 한국의 체제임에 반하여 일본은 시간 단위로 임금을 주고 스텝을 고용하는 체제다. (따라서 드물기는 하지만 데뷔는 하지않고 평생 스텝으로만 일을하는 프로 어시스턴트도 있는 것이다) 일본의 스텝 임금이 보통 한시간에 3000엔 정도로 아주 고가임을 생각한다면 일이 있을 때만 이들을 소집하여 일을 시킨다고 하여도 그 돈이 아주 막대하다. 그리고 스텝들의 식대라든지 사무실 유지비, 만화 재료비 등에도 적지않은 돈이 들어간다. 이런 원인으로 일본의 만화가는 하나의 작품을 유지하기 위해서 막대한 돈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원고료의 개념은 정말로 만화를 제작하기 위한 제작비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것들을 제외하고 정작 작가에게 떨어지는 수익은 일반의 직장인들에 비하여 결코 많다고 할수는 없는 것이다. 그나마 주간지가 아닌 월간지나 격주간지에 연재하는 작가들은 이보다 경제적으로 더 궁색한 경우가 태반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나마 지금 잡지 지면에 연재를 가진 작가들이 이러한데 가끔 단편을 실으면서 장기 만화 연재를 준비하는 비인기 작가나 작가 후보생의 생활은 어떨까? 당연히 낮에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밤에는 원고를 만드는 힘든 생활의 연속이다.
03.
작가들이 경제적으로 그나마 나아지는 것은 단행본이 나오면서 부터인데, 이 단행본 첫 권이 나오기까지 아주 궁핍한 생활을 하는 작가들이 태반이라 일본에서는 ‘연재거지'라는 은어가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단행본이 잘 팔려서 안정된 생활이 가능한 수익을 만들어 주는 것인가는 아주 다른 별개 차원의 문제이다. 100만부라는 숫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던 일본이지만 1990 년대 중반 이후 만화 불황이 시작된 이후로는 만화 단행본의 판매율이 뚝 떨어져 단행본을 내지 못하는 만화나 내도 초판 3-4만을 겨우 넘기는 단행본이 부지기수다. ( 그럼 , “[원피스] 같은 단행본은 무언가?” 라고 반문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나, 최근 경향은 그런 메가 히트작은 논외로 하되, 중간급의 히트를 날리는 흥행작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즉, 빈익빈 부익부이다)
04.
만화가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일본에서 만화가의 수명은 아주 짧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1년 작가 (연재를 시작해서 1년정도 버티다가 사라지는 작가) 나 6개월 작가라는 말은 아주 흔하다. 작가들은 이 짧은 자신의 수명 -상품 가치가 유지되는 기간- 안에 자신이 만화가를 그만둔 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이익을 최대치로 발휘해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일본의 원소스 멀티 유즈 (한 개의 만화를 이용하여 캐릭터 상품이나, 애니메이션등의 관련 상품을 동시에 내어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것) 가 발달하는 것도, 작가의 짧은 전성기 안에 최대한 많은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 발달한 개념이다. 즉, 일본에서 만화가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기나긴 시간은 아주 짧을지도 모르는 기간 안에 자신이 갈고 닦은 재능을 잡지라는 무대에 보여주기 위한 인고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듯이 일본의 일반적인 만화가들은 우리들의 인식과는 다르게 모두가 행복하게 많은 돈을 벌며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며, 여유롭기 때문에 제작환경이 좋아서 그렇게 좋은 만화가 나오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오히려 밑의 생활은 어렵지만 만약에 히트를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원고를 만들고 이런 것이 모여서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상대를 평가할 때 가장 성공한 자의 일면만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성공의 이면에는 수백배는 많은 무명의 작가들이 겪는 궁핍과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음호 에는 과연 일본은 검열로부터 자유로운가? 라는 테마로 이야기를 진행해 보자.
1. '일본의 만화 시장은 거대하며, 그만큼 히트 할 경우, 거대한 부를 벌어들일 가능성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지 모두가 다 경제적인 윤택함을 누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 1개의 성공적인 작품은 100여개의 쓰레기 작품 (실패작) 위에 피어나는 한떨기 꽃이라고 하던가'
2. 일본의 성공한 작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에가와 타츠야. 그러나 이런 성공을 한 인물은 지극히 드물며, 보통의 일반적인 작가는 그와는 비교도 안되는 적은 원고료로 겨우 만화를 제작하는 경우가 태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