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레이 - 악당을 위한 영웅, 영웅을 위한 악당

박성원 | 2016-08-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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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놀이가 ‘놀이’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건 그 자체로 문제가 있을 거예요. ‘영웅’이라는 개인에게 의존하는 사회는 그리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힘들 테니까요. 잘난 영웅한테 다 맡겨버렸는데, 그 사람이 아파서 몸져눕거나 갑자기 변심해서 일을 관두면 어쩌겠어요? 그런 불안정한 요소보다는 전문성과 책임 의식으로 무장한 관료집단이 백 배 더 믿을 만하죠. 물론 관료제의 단점은 또 나름대로 존재하지만요.

 

순수한 영웅만 해도 그럴 텐데, 돈을 벌려는 불순한 목적에서 놀이가 출발했다면 더욱 그렇겠죠. 사실 영웅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도 어려운 사기꾼에 불과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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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영웅 ‘그레이’가 백주대낮에 대로 한복판에서 악당이라는 ‘피노키’를 살해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물론 그레이는 즉각 체포당합니다. 경찰서 취조실에 끌려가서, 갑자기 자신의 과거를 풀어놓기 시작하죠. 영웅이 되기로 한 계기부터 그 과정까지요. 그레이가 털어놓은 ‘진실’은, 대중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웅의 행보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위조된 영웅이었거든요.

 

‘이설원’은 일단 기업을 물려받은 2세 경영자입니다. ‘아트토이’라는 회사인데,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장난감 같은 걸 만드는 회사 같아요.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표현하면 소위 ‘금수저’인데, 본인을 포함해서 임직원, 주변 사람, 그리고 작고하신 아버지까지 모두에게 불행한 사실은 그가 경영에는 관심도 소질도 없다는 것이죠. 어쩌면 회사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사들을 앞에 두고 진행한 프리젠테이션은 번번이 은근한 조롱과 함께 퇴짜를 맞기 일쑤거든요. 꼰대들의 영향력이 문제라면 그들을 쳐내는 것도 이설원의 역할일 텐데, 사실 거기까지 가면 만화의 장르가 바뀔 테니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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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나 되는 게 없던 금수저이자 2세 경영자이며, 동시에 히어로 마니아인 이설원은 영웅 캐릭터를 출시하는 대신에 우연한 계기로 아예 자신이 영웅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돈이야 많으니 아예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엔지니어를 불러서 돈을 쥐어주자 멋진 히어로 슈트가 탄생하죠.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접하던 그런 것들에 비하면 외형이 비슷할 뿐 성능이 많이 떨어지지만, 같은 금수저라도 급의 차이가 있는 법.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탄생한 슈트를 입고 이설원은 서울 거리로 나섭니다. 물론 영웅이 되기 위해서죠.

 

그러나 서울특별시는 고담시가 아니었습니다. 이설원도 베트맨이 아니었고요. 아마 그가 민관을 가리지 않고 서울 전체의 CCTV를 해킹할 능력이 있었으면 조금 나았을지도 모르겠는데, 애석하게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뭔가 범죄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면 이미 경찰이 와 있거나 사건이 해결된 다음이었습니다. 설령 운 좋게 먼저 현장에 도착해도 개인의 사적 조치를 엄격히 제재하는 한국에서는 범죄자로 몰리기 일쑤였죠. 이건 공권력이 확고한 나라에서는 어디나 마찬가지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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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설원, 아니 그레이는 영웅이 되기 위해 ‘악당’까지 창조하기에 이릅니다. 말하자면 그는 영웅이 되기 위한 영웅인 셈이죠.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한강물에 뛰어내린 류지환을 건져내 그에게 ‘피노키’라는 역할을 맡깁니다. 물론 두둑한 보수와 함께 말이죠. 이제 사악한 피노키는 서울 곳곳을 헤집고 다니며 시민들을 공포에 빠뜨립니다. 물론 경찰들은 절대 그를 잡지 못해요. 그때 그레이가 등장해서 피노키를 퇴치합니다. 연무가 일어나고 한바탕 ‘쇼’를 벌이고 나면 피노키의 범죄 행각은 무력화 되지만, 그레이도 피노키도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무대가 끝나면 배우가 사라져야 하는 법이니까요. 이 모든 게 계획된 설정이죠.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대체로 이런 종류의 사기는 내부자들로부터 균열이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피노키가 범죄의 스케일을 키울수록 그 속에 들어있는 류지환은 회의를 느낍니다. 처음으로 자신을 필요로 한, 동시에 돈까지 넉넉히 챙겨준 이설원에게 처음에는 깊은 감사와 호의를 느끼지만, 사실 이설원도 그리 바람직한 인물상은 못 되는지라, 얄팍한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서울이라는 무대 위에서 벌이는 두 배우의 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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