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포] 적절한듯 아쉬운 정치극 - 새벽을 얽매는 뱀

므르므즈 | 2016-06-12 15:07

새벽을얽매는뱀_폴빠_1.jpeg

 

 

  생각해보자면 판타지 정치극 만큼 뜬구름 잡는 소리도 없다.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욱 그렇다. 아가모토가 와칸다 국왕과 비브라늄 무역 통상 조약을 맺었다고 말한들 아가모토가 누구고, 와칸다가 어딘지 모른다면 와닿는 게 아무것도 없듯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타지 배경 정치극은 필연적으로 배경 설명을 과하게 하기 마련이다. 지명을 이해하는 사이에 사건은 휙휙 지나가고, 이는 필연적인 단점이기에 판타지 정치극은 대부분 독자에게 혼란만 낳고 모습을 감춘다.

 

  사실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검을 든 인물이 검기를 안쓰고 마법사가 d&d 기반도 아니면서 써-클 타령을 하지 않는 판타지라면 모두 만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들을 다 빼놓고도 수준 미달인 작품은 있기에 개인적인 바람은 한 번도 그 욕구를 충족한 적이 없었다. 요즘엔 써클 타령도 지겨워졌는 지 이세계 용사 놀이가 대세가 됐기 때문인데, 기존의 판타지가 이세계에서 온 용사가 검기와 9써클 마법을 배워서 세상을 구하며 겸사겸사 여자를 후리는 내용이었다면, 요즘 판타지는 이세계에서 온 용사가 여자를 후리는 겸사 겸사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구하는 내용이다.

 

  이런 자기 복제에 가까운 내용에 대해 긴 분량을 할애하여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기엔 여기 지면은 너무 적고 내 시간도 아깝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하자. 깽판 판타지가 많은 판국에 [새벽을 얽매는 뱀]은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독특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고.

 

  겁나먼 왕국의 어느 작은 섬나라인 세글란의 대공녀인 이름 긴 주인공 아가씨는 요정 용병의 호위를 받으며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여행길은 초호화와도, 안락한 여행과도 거리가 멀어서 가는 길마다 고생의 연속이라 바람 잘 날이 없다. 즉, 고생만 하는 아가씨를 보면서 가학심을 충족시키는 만화라는 것인데, 그걸 증명하듯 작품은 주인공과 용병에게 초점을 맞춰서 스토리를 진행한다. 짧은 분량에, 다루는 것은 국가 전체를 관통하는 정치극이면서도 정치에는 문외한인 주인공과 박식한 요정 용병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인데 이건 작품 전체에서 양날의 검이 되었다.

 

  장점이라 하면, 주인공이 정말 아아무것도 모르기에 용병이 매 번 지명은 어떻고, 여기는 이런 곳이고 여기가 이렇다는 설명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있었다. 덕분에 작품 내 배경 지식은 열심히 두 번 정도 정독하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만큼 풍부하게 나타나며, 인물 관계도도  어렵지않게 그려낼 수 있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려주는 설명 역이 작품 안에 제대로 녹아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이 정치에 문외한이고 사건과 살짝 떨어져 있는 대공녀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어필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단점도 있었다. 분명 작품은 '새벽'을 늙은 통치자들이 후계자들에게 왕국을 넘기는 과도기라 정의하며, 이 후계자들이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리지만 정작 대공녀와 왕녀를 제외하면 이 후계자들의 개성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각각 할애된 분량이 너무 짧아 잠깐 등장하며 자신이 이런 성격의 인물이라고 자기 소개만 하고 사라지기 때문인데

좀 더 다양한 시각에서 등장인물을 다루며 이야기를 진행했다면 캐릭터의 매력이 더 살아났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전개가 지나치게 축약되고 짤막하게 이어져 보는 사람을 다소 심심하게 만드는 단점도 있었다. 이렇게 끝내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전개가 급박하고 허무하게 이어져 추가 컷이 몇 컷 더 있다면 딱 호흡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여러번 들었다. 물론 이거야 개인마다 다른 것이겠지만, 어찌됐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 읽으면서 스토리 작가가 조급해하고 서두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무리에 모든 사건을 설명해주는 전개를 매우 싫어하는 데, 이런 전개는 보통 세부적으로 묘사해야 될 부분을 빼고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나간 작품에서 자주 써먹는 방법이다. [새벽을 얽매는 뱀] 역시 이런 결말 방식을 선택했다. 텍스트로 하는 것이 아주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엔 여지가 없다.

 

반전의 충격도, 아~ 하는 쾌감도 느낄 새가 없는 것이다. 그냥 결말에 남은 건 사실은 이랬다네 하는 무미건조한 텍스트일 뿐이고 여기에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나는 기껏 읽은 작품의 깔끔한 반전을 그저 그랬구나 하는 단순한 감정으로 치부하는 전개에 익숙하지 못하다. 때문에 나는 이 작품에 아쉬움을 느낀다. 좀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것들이 남는 것이다. 무덤덤한 결말에 조금 아쉽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이 작품 역시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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