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짜여진 시나리오에서 오는 쾌감 1 <한줌물망초>
영화, 소설, 웹툰을 보다보면 가끔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가장 기분 좋은 소름은 단연 경이로움에서 오는 소름인데, 독자들에게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이런 소름을 느끼기 위해서는 거의 정형화된 공식(?)이 있는데, 첫째가 잘 짜여진 시나리오요, 둘째가 잘 뿌려진 떡밥과 적절한 떡밥 회수, 그리고 마지막이 반전이다. 만약 해적왕이 꿈인 소년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웬만한 떡밥들과 그것의 회수에는 간에 기별도 안 갈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기가 막히는 떡밥들의 연속과 그저 비슷한 이야기인, 옴니버스 식 구성(사실 다른 두 개의 작품이지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본 작품이, 사실은 연결된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은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며 감탄하게 된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하나인 듯 하나아닌 하나같은 두 작품이다.
나를 잊지말아요~(feat. 허각)
<한줌물망초>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웹툰의 제목을 유심히 한번 보길 바란다. 사실 물망초의 꽃말은 다른 꽃들에 비해 잘 알려진 편인데, 바로 ‘나를 잊지 말아요’이다. 제목만 봐도 벌써 슬픈 예감이 드는 웹툰. 게다가, 이 웹툰은 웹툰 제 1법칙을 당당히 어기고 시작한다. 그것도 단 1화 만에...
주인공은 절대 죽지않는다라는 생각을 여지없이 깨부숴버린다.
혜진양 작가의 잔혹성(?)을 미처 접하지 못한 독자들이라면 적잖이 당황할 법도 한 이런 전개는 아직 새발의 피일 뿐이니, 혹시라도 심신이 미약한 독자라면 무리하지 말길 바란다. 하지만 정말 추천하는 작품이기에 아직도 연재중인 ‘함정 속 치즈’같은 작품들을 보며 자신의 나약한 심신을 단련하고 오길 권장한다. 적어도 그 작품에서는 사람이 죽어나진 않으니...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feat 블락비)
리뷰에 앞서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웹툰을 먼저 보고 오길 바란다. 그리고 <한줌 물망초>를 <미호 이야기>전에 보길 권장한다.
멍청한 선비놈!! 이때까진 도깨비가 귀여워 보였지...
이야기의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 설정은 바로 도깨비와의 내기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수세기 동안 진행되어 온 내기인데,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사실 엄연히 말하자면 같은 사람이지만)과 비극을 지니고 있다. 혜진양의 웹툰을 보고 있노라면 혜진양이 도깨비에 대해 얼마나 x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가게 한다. <미호 이야기>와 <한줌 물망초> 속 도깨비는 내기를 좋아하는 개구쟁이 같은 면을 지녔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잔인한 개x끼다(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야기의 초반에 등장하는 도깨비는 선비를 사랑하는 귀엽고 착한 생명체이지만, 귀여운 외관에 속아서는 안 된다. 여하튼 이 도깨비의 지랄맞은 성격과 내기 때문에 이야기는 흥미롭게 진행 된다. 처음 대부분의 독자들은 도깨비와의 내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작품을 감상한다. 그러다 이 이야기가 작가의 전작, <미호 이야기>와 이어져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리고 도깨비와의 내기 역시 <미호 이야기>에서부터 계속 돼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인다.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봐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지만, 이야기는 꽤 복잡하다. 이 이야기의 배경지식(전작 <미호이야기>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다고해도 스토리가 간단히 읽히지는 않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배경지식을 갖고 볼 때 이야기가 더 복잡해진다. 등장인물이 워낙 많기도 하거니와 각각 인물들의 전생(심지어 전생이 한번 등장하는 게 아니라 전전생, 전전전생도 등장한다.) 관계도가 친절하게 등장하진 않기 때문에, 작품 감상 중간 중간에 멘붕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이 관계도는 굉장한 스포가 될 수도 있으니 그냥 못 본 척 넘어가도 좋다.
그럼에도 <한줌물망초>가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역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선 복잡하지만, 납득 불가능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잡함을 이해하고 나서 밀려오는 쾌감은 아무도 풀지 못한 난제를 해결했을 때 느끼는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또 전작<미호 이야기>와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것을 연재 중반이 넘어서 독자들이 깨닫게 하면서, <미호 이야기>를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소름과 함께 다시 한 번 <미호 이야기>를 정주행 하게 만들고, 그렇지 않은 독자들도 <미호 이야기>를 읽도록 만든다. 두 작품 외에도 번외 편, 외전 등을 만들어 작품사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으니 시간만 충분하다면 겁먹지 말고 도전해보자(심지어 <미호 이야기>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독자들에게 만화 속에 등장하여 사과하고 각 편마다 등장인물을 위한 설명 컷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도깨비에 대한 분노가 치미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민이 가기도 한다. 사연 없는 악당 없다고 도깨비도 알고 보면 참 불쌍한 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도깨비나 인간이나 욕심 때문에 시작한 내기가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같은 상황을 계속 반복했다는 점에서, 기억을 깨끗하게 잊어버리는 인간보다 상처를 계속 안고 가야하는 도깨비가 불쌍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도깨비는 나쁘다. 그리고 인연이도...(이름부터 이년이...)
귀엽게만 느껴지던 도깨비가 무서워보이는 효과!!(근데 저거 겨터...ㄹ....?)
끝으로
<한줌물망초>는 짧게 요약하기엔 너무나도 복잡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고, <미호 이야기>를 빼놓고 얘기하는 건 수염 없는 김흥국과도 같기 때문에 두 작품을 다 정주행 하고서 생각 정리가 필요한 작품이다. 리뷰를 쓰면서 잘 만들어진 등장인물 관계도를 찾다가 우연히 찾은 블로그의 주소를 남길 테니 혹시라도 <한줌물망초>와 <미호 이야기>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한번 방문해보길 바란다(개인적으로 해당 블로그와 아무런 연관은 없다).
http://sangjin5256.blog.me/120178718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