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미묘하지 않은 이야기 - [스포일러] 재앙은 미묘하게
층간 소음 문제는 항상 사회의 화두였다. 층과 층 사이에 끼어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물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매일 아침 무의식중에 끌었던 의자 소리에, 변기 물 내리는 소리에, 샤워기 소리에 아랫집 사람이 칼을 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매일 점심 즈음 망치질을 하는 기벽이 있는 윗집 탓에 꽤 오랜 시간 고통 받은 경험이 떠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내가 가끔 내는 큰 소리에 아랫집이 남몰래 화를 삭이고 있는 게 아닐까? 경각심이란 좋은 것이다. 여기 경각심을 일깨우는 웹툰이 왔다.
소음으로 가득한 도심에서 벗어나 농촌의 고요한 생활을 영위하려던 주인공의 욕망은 이사 첫날부터 무참히 깨진다. 독립영화 시놉시스같은 이 장면은 작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시작이다. 그냥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뿐이고, 그냥 너무 민감한 것뿐이다. 참으면 되지만, 불행히도 주인공은 소음이 싫다. 그래서 항의한다. 당연히 상대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그냥 작은 소음 아니던가. 여기서 합의점을 찾기는 글러 보인다.
사건은 주인공이 반격을 가하면서 심화된다. 안마기를 가져다 놓고 온갖 소음을 틀어대는 주인공에게 윗집 남자는 항의하고, 옆집에 사는 여자는 뜬금없이 싸움을 부추긴다. 둘만의 소음 싸움은 아파트 전체로 퍼져서 어느새 아파트는 매일 밤 시끄러운 동네가 된다.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긴다. 조금 떨어진 축사에선 소들이 소음 탓에 유산을 하고 말았다. 농부는 아파트에 소송을 걸고 아파트 주민들은 5억원을 배상할 처지에 놓인다.
다시 사건 초기로 돌아가 보자. 애초에 이렇게 큰 일로 번질 이야기가 아니었다. 문제가 있는 집은 단 두 집이었다. 주인공은 소음에 유난히 민감한 인물이었고, 윗집 사람들은 아랫집에 무관심했다. 이 대립 구도가 사건을 키웠다. 대화와 소통을 거부한 윗집 사람으로 인해 싸움이 시작됐다. 하지만 윗집 사람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반격을 가한 주인공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주변 사람들 역시 상황에 대한 이해보단 맞공격에 나서면서 아파트는 분쟁의 중심지가 됐다.
이 모습은 요즘 일어나는 층간 소음 분쟁의 해결 방식과 비슷하다. 아랫집이 항의하면, 윗집이 묵살한다. 그러면 얼마 간 더 버텨보다 참다못한 아랫집은 끓어오르는 화와 연장을 들고 윗집 문을 두드린다. 대화와 타협은 잊혀진지 오래다. 가해자의 태도가 피해자를 새로운 가해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죗값은 이 '가해자들'에게 떨어진다.
작품 내에서 이성적으로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없다. 주인공마저도 이성적인 대안을 포기하고 복수를 감행한다. 결과는 아파트 전체의 폭주와 5억원의 배상금으로 돌아온다. 비이성적으로 대응할수록 분쟁은 커지고, 대안이 없는 작품 속 모습은 답답하기만 하다. 주인공은 결국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 도피하고 만다. 평화적인 해결은 그냥 도피하는 것뿐인 것이다.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남은 사람들은 결국 공멸하고 만다.
사소한 재앙이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런 방식의 해결 방법이 언제까지 이어져야 하는가. 글쎄 이렇게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내 아랫집이 칼을 갈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서로 조심하는 게 먼저인지, 건축사에게 불평하는 게 먼저인지를 떠나 쿵쿵 소리내며 걷던 걸음을 조금 조심해보는 게 어떨까. 이만 아랫집에 음식을 조공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