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스러운 듯 아쉬운 - [스포] 데드 데이즈
좀비만큼 먼 나라 이야기면서도 우리에게 친숙한 소재는 또 없을 것이다. 심지어 호러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다방면에서 이용되고 있다. 매년 좀비 영화가 한 편 씩은 얼굴을 비추고, 한국에서도 <부산행>이 개봉하여 큰 흥행을 이뤄냈다. 게임에서도 좀비는 단골 소재다. 좀비를 소재로 한 게임이 매년 서바이벌, RPG, 잠입 액션, FPS, 시뮬레이션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나온다. 그러니 웹툰에도 좀비 열풍이 불지 말란 법이 있으랴. 여기 좀비 사태를 다룬 작품이 있다.
미디어에 노출되어 세뇌된 사람들을 좀비로 풍자하는 표현 방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와 낯설지 않다. 스티븐 킹의 소설 <셀>에선 휴대폰을 사용하면 전염되는 좀비가 등장한다. <데드 데이즈>에선 특정 기업의 음료수를 사먹으면 전염되는 독특한 바이러스를 소재로 삼았다. 대기업이 어떤 실험을 위해 ‘라벨 D’라는 음료수를 공짜로 시민들에게 뿌렸고 아무도 이 음료수에 의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단체로 좀비가 되었다. 전염은 되지 않지만 음료수를 먹으면 무조건 걸리는 탓에 많은 사람들이 좀비처럼 변하고 만다.
작가는 작품 후기에서 좀비로 변한 매개체인 라벨 D를 유언비어에 비유한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유언비어를 비판적 사고 없이 흡수하는 모습은 좀비와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품은 일종의 풍자로 기능한다.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는 대중에 대한 비판이자, 여론을 조작하고 유언비어를 이용하는 대기업에 대한 고도의 비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비판과 동시에 이뤄지는 작품 전개는 다소 납득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후반부에 들어 좀비들은 아날로그 음악에 얌전해진다. 주인공 일행은 이 사실을 깨닫고 좀비사태를 종식시킨다. 소수에 의한 지배를 비판했던 구도에 비해 지나치게 영웅적인 전개다. 우연한 기회로 불확실한 해법을 알게 된 인물이 그걸로 모두를 구하는 전개라니. 소수에 의한 지배를 비판한 작품에서 소수의 계몽을 결말 연출로 써먹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작가는 후기에서 말했지만 정작 미디어의 노예를 구한 것은 또 다른 소수, 선민이었다. 정보는 불확실하고, 구도는 다시 반복된다. 메시지에 어울리지 않는 결말에 아쉬움을 느꼈다. 합리적인 판단은 자신이 하는 게 아니던가.
<데드 데이즈>는 영화를 연상시키는 멋진 작화와 연출로 승부를 본다. 좀비가 쫓아오는 장면에서 나타나는 박진감은 어느 영화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극적인 연출을 위해서인지 작품은 사소한 개연성을 희생한다. 굳이 문을 잠글 필요가 없음에도 여자 생존자는 옥상 문을 잠그고, 얼굴로 구분한다면서 좀비들은 고개 숙인 빈도를 공격하지 않는다. 박진감을 위해 희생한 것이겠지만, 의도가 너무 빤히 드러나기에 이 작은 부분들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좀비를 비틀어 표현한 작품의 구성은 좋았다. 하지만 그 구성의 아이디어와 기대만큼 전개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앞으로 작가에게 남은 숙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