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도 무너지고 - 더 게이머
창작물에서 대리 만족을 추구하는 게 뭐가 나쁜가. 하지만 <더 게이머>의 전개방식에서는 그리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어느 날 세상을 게임으로 느끼게 되는 '더 게이머'의 능력을 얻게 된 한지한은 그 능력을 통해 세상을 즐기기 시작한다. 요약 끝. 작품의 줄거리는 한지한이 게임 능력을 체감할 때 마다 주변인이나 한지한이 "이거 완전 사기잖아?" 하고 추임새를 넣는 것과 한지한이 버는 돈을 통해 대리만족의 쾌감을 느끼는 것, 그리고 악당의 묘한 철학을 한지한의 힘과 논리로 격파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정리되는 과정은 진부한 설명 연출로 이루어져있다.
여기서 진부한 설명 연출이란, 굳이 궁금하지도 않은 대상에 대해 많은 지면을 낭비해가며 설명해주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작품 1부를 보면 한지한이 스킬 하나를 얻고 그 스킬을 수련하는 과정을 지독하게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매 스킬마다 등장인물들이 빠지지 않고 "이거 사기네!" 하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매 주 반복한다. 어찌됐건 목적이 있어야할 만화가 일주일 씩 자기 수명을 수련으로 유예해나가는 셈이다.
대리만족을 노린 만화의 이같은 방식이 나쁘다고 하고 싶진 않다. 어떤 철학이나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하는 것보다 독자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전개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식이다. 하지만 <더 게이머>의 방식은 작가의 대리만족에 더 치중된 듯하다.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여지가 남아있어야 하는 데, 여기엔 그 여지가 없다.
작품의 전개 과정이 특히 그렇다. 매 번 주인공이 가진 스킬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는 것이며, 작품 내에서 어레인지된 설정들을 장문으로 설명하는 모습은 독자의 감정 이입을 극도로 방해한다. 오히려 독자와 주인공을 분리시키는 데 일조했다. 대리 만족 작품이면 주인공과 자신을 일체화 시킬 수 있어야 하는 데 그 누구도 이렇게 말 많은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설명은 작가가 자기 자식을 독자들에게 자랑하는 것 비슷하게 보인다. "내 자식이 이렇게 사기캐야!" 그렇게 된다면 독자들의 화답은 하나뿐이다. "이거 사기네!"
"이거 사기네!" 작품의 지나친 설명은 독자를 철저하게 작품에서 분리시켰다. 주인공 옆에서 리액션하는 엑스트라 포지션에 독자들을 위치시킨다. 대리 만족 작품은 그 기반이 얄팍한 만큼 작품의 몰입도가 떨어지면 날선 비판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눈을 덮고, 귀를 막고 이 만화가 재밌다는 사실만 철저하게 주입시켜야 했지만 지나친 자기 자랑에 힘입어 작품은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 작품은 3부가 지난 시점이다. 아직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조금 더 좋은 작품이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