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소용돌이(うずまき)

툰가 10호 | 2016-12-14 12:03

소용돌이(うずまき)


소용돌이うずまき

이토 준지(伊藤潤二) | 쇼가쿠칸(小学館) / 시공사 | 1998년 연재 시작 | 3권(합본판 1권) 완결


“내게는 저 소용돌이가 강렬하게 자신을 어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마치 이런 인적 없는 지하에 만들어진 것을 저주하는 것처럼…. 소용돌이 모양은, 그 중심으로 사람의 시선을 끌지…. 이걸 만든 태고 사람들의 의도가 어떻든….”


– <소용돌이> 중 슈이치의 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일반명사 ‘소용돌이’를 ‘바닥이 팬 자리에서 물이 빙빙 돌면서 흐르는 현상이나 그런 곳’으로 명기하고 있다. 다른 뜻으로는 ‘힘이나 사상, 감정 따위가 서로 뒤엉켜 요란스러운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있으며, 물리학에서는 ‘유체 안에서 팽이처럼 회전하는 부분’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외에도 소용돌이는 나선형을 띠며 한곳으로 모이거나 퍼져 나가는 형상 때문에 흔히 집중과 확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 점 때문에 유독 편집증 환자들이 좋아한다는 설도 있으며, 애니메이션 <천원돌파 그렌라간>에서는 이를 우뚝 솟아 회전하는 나선으로 해석, 인류의 진화와 상승욕구로 상징화하며 작품의 주제와 긴밀히 연관시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일본의 대표적인 공포만화가 이토 준지가 바라본 소용돌이는 어떨까? 그에게 있어 소용돌이는 힘이나 사상, 감정 따위가 뒤엉켜 요란스러운 상태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말이다. 또한 그는 집중과 확산이란 측면에 집중해 소용돌이를 ‘악의적으로’ 확대해석한다. 그 결과, 주변 모든 것을 괴이한 형태로 뒤바꿔 늘어놓는 이토 준지의 악취미는 장편작 <소용돌이>에서 실로 극대화된다.



소용돌이(うずまき)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 왼쪽은 통상반, 오른쪽은 새롭게 나온 합본.



이토 준지는 현 일본 공포만화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다. 근래에는 호러 장르 외의 작품도 연재 중이지만, 여전히 그 뿌리는 공포에 둔 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선보이고 있다. 이토 준지 작품이 주는 공포의 근원은 우선 주변에 존재하는 온갖 것들을 공포의 언어로 뒤바꾸는 신묘한 능력에서 찾을 수 있다. 마치 영화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처럼 ‘운명’이란 무형의 적(敵)으로부터 닥쳐오는 공포를 다루는 것과도 엇비슷하다. 영화가 바람 한 점에 쓰러지는 물건의 연쇄반응 같은 예측불허의 적을 그리고 있다면, 이토 준지는 주위의 흔한 물건이나 현상을 이형의 것으로 변화시키고 뻔한 괴담이나 인간의 사소한 욕망을 무한정 확장하며 공포를 시각화한다. 친한 친구나 가족이 전혀 다른 누군가가 되고 평범한 일상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순간이 바로 그가 노리는 지점인 것이다.


그는 썩은 시체나 추악한 악령 등 이형의 존재를 극도로 섬세하게 묘사하며 그 자체로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론 그의 또 다른 대표작 <토미에> 시리즈의 ‘토미에’처럼 팜므파탈의 자태로 남자를 유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토미에조차도 아름다움의 정도가 지독해 상대로 하여금 그녀를 ‘토막 내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이게 만드는 존재다.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는 재생력에 더해 마치 플라나리아처럼 잘려진 토막 모두가 서서히 완전한 개체로 자라나는 그녀는 일찌감치 악녀와 마녀 이상의 불가해한 존재로서 섬뜩함을 자아냈다(<토미에> 시리즈는 무려 8편의 영화로 제작될 만큼 일본 영화 제작진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추악한 본질은 단순히 심리나 행동에서 그치지 않는다. 머리를 뚫고 자라나는 토미에의 또 다른 머리가 그러했듯, 그의 불쾌한 상상은 철저하게 공포의 형상으로 시각화된다.


 

이토 준지가 설계한 공포는 잘 만들어진 여느 호러 장르 작품과 마찬가지로 인간 본연의 욕망에 충실하다. 미(美)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 도를 넘어선 사랑, 과도한 물욕이 부른 살인충동, 이유 없는 괴롭힘과 그 반작용 등 인간의 뒤틀린 욕망으로 합일되는 호러 장르의 대표적인 동인에 근간을 둔다. 그러나 때때로 괴팍한 매력을 뽐내는 호러 장르 캐릭터를 통해 개그와 호러의 유연한 줄타기를 보여주기도 하고(<소이치의 저주일기> <괴기 히키즈리 형제> 등), 그야말로 기상천외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으로 기이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하기도 한다(<목매는 기구> 등). 이형의 존재를 끔찍하리만큼 섬세하게 묘사하는 이토 준지의 장기는 미형의 캐릭터조차 언제나 생기 없는 이물감을 머금고 있다. 물론 괴물을 그려내는 상상력과 묘사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고. <소용돌이>는 이러한 이토 준지의 장기와 특징이 두루 담겨 있는 작품으로 그의 다양한 면면을 모두 맛볼 수 있는, 이토 준지 세계의 가장 훌륭한 집약체다.



소용돌이(うずまき)

이토 준지 원작, 영화 <소용돌이>의 한 장면.



쿠로우즈(黑過)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소용돌이>는 그간 이토 준지가 선보였던 단편작들과 마찬가지로 기괴한 에피소드 연작으로 문을 연다. 주인공 슈이치의 아버지가 갑자기 소용돌이 모양에 집착하기 시작해 나중에는 자기 몸을 스스로 통 안에 소용돌이 형태로 말아 넣으며 죽음에 이른 첫 번째 에피소드는 ‘소용돌이’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접근에 불과하다. 이후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소용돌이로 수렴하는 상상력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음산하고 기괴한 시각적 충격은 회를 거듭하며 증대한다. 등에 소용돌이 문양이 나타나기 시작해 이내 단단한 등껍질이 생기며 달팽이로 변해가는 달팽이 인간을 비롯해, 소용돌이 모양으로 돌돌 말려 사람들을 홀리는 머리카락, 사람을 쫓아 집어삼키는 태풍 등. 소용돌이와 관련된 소재들을 점층적으로 파고들면서 처음엔 당치도 않다고 생각했던 온갖 비현실적인 소재를 소용돌이라는 ‘공포의 도형’ 안에 쓸어 담는다.


 

소용돌이라는 공통의 코드 아래 다양한 형태로 마을을 잠식해 가던 기괴한 사건들은 마침내 몇 백 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반복된 마을 원천의 저주라는 대단원을 향한다. 작은 움직임에도 돌개바람이 일어나는 기현상 때문에 마을은 쑥대밭이 되지만, 그럼에도 구원의 손길은 없다. 타지에서 온 헬리콥터는 이상기류(이 역시 소용돌이다)에 휩쓸려 추락하고, 여러 척의 거대한 군함마저 물속에 생긴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사람들은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유일한 집을 좌우로 확장하며 그 안에서 뒤엉키기 시작한다. 곧 먹을 것이 궁해지자 달팽이로 변한 인간을 먹는다. 주민들은 점점 인간의 형체를 잃어가고(앞서 말했듯 그가 창조한 모든 악의는 반드시 시각화된다), 마을은 소용돌이의 광기에 잠식당한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층층이 쌓아올린 <소용돌이>는 억겁의 세월을 두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거스를 수 없는 저주로 점차 자리를 넓힌다.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었던 소용돌이의 저주를 향해 스멀스멀 자리를 넓힌 대단원은 인간이라는 미미한 존재를 마침내 결코 맞설 수 없는 무형의 상대 아래 무릎 꿇린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오히려 ‘이제야 끝나는구나’ 싶은 평화로운 죽음이 함께한다. 그야말로 소용돌이만큼이나 엄청난 확산, 거대한 파급력이다.


 

기발한 상상력을 공포의 언어로 가공하는 이토 준지의 행보는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그가 창조한 지독한 공포의 세계는 아직까지도 쿠로우즈 마을만한 거대한 절망의 재미를 만들어내진 못하고 있다. 이토 준지 월드의 핵심을 모두 쓸어안은 <소용돌이>야말로 여전히 일본의 대표적인 호러 작가 이토 준지, 나아가 오늘날 일본 호러 장르를 대변하는 지표다.


<출처: 에이코믹스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4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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