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꽃 - 닿을 듯 말 듯한 키스같은 이야기
덩치는 크지만 소극적이고 눈물이 많은 후미는 고등학교 입학식 첫 등교날 소꿉친구인 아키라와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푸른 꽃잎처럼 투명한 여고생들의 우정, 그리고.......
혹시 다들 백합물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에는 BL은 알고 있었지만 백합물은 금시초문이어서 (물론 대충 눈치로 때려 잡았지만) 검색을 해 보았더랬다. 예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백합물은 여자끼리의 로맨스 이야기를 말한다고 하는데, 정확히 왜 소녀들의 동성애를 ‘백합’이라고 표현하는지는 찾지 못했으니 혹시라도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기를 바란다.
아키라는 고등학교 진학 후 첫 등굣길에 우연히 한 여학생을 도와주게 된다. 늘씬한 키에 긴 머리를 가진 그 미인은 알고 보니 어릴 적 부모님의 이사로 헤어졌던 친구 후미다. 백합물이라고 야하고 금기를 깨는 상상들로 가득하다고 생각한다면 착각. 이 웹툰은 일상적인 여고생활을 보여주며 차분하면서도 덤덤하게 그들의 감정을 관찰할 뿐이다. 선이 곱고 예쁜 이야기라고 하면 어울릴 것 같다.
‘푸른 꽃’은 아이들의 섬세한 감정들을 짚어내는 동시에 그림의 여백처럼 이야기에도 구구절절이 설명들을 갖다 붙이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물을 많이 섞은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번져나가는 것이, 마치 이 소녀들의 물들어가는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더욱 좋았고.
닿을 듯 말 듯한 키스같은 잔상을 주는 이 웹툰은 일본에서는 티비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되었던 인기 작품이라고 했는데, 마지막 장을 모두 넘기고 나니 왜인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서정적이면서도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장르적인 특성을 모두 배제하고 보자면 이 이야기는 간이 옅은 일본 음식처럼 혀에 천천히 베어드는 담백하고 은은한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찬찬히 살펴보자면 이야기가 좀 급전개 되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다만 그것들이 흐름에 벗어나지 않고 납득 가능한 정도의 전개이기 때문에 크게 이질적이지는 않다.
세상의 어떤 미인은 자로 잰 듯 정확한 컴퓨터 미인이다. 또 누군가는 전형적인 미인의 틀을 조금씩 벗어나지만 그 독특함으로 주변을 압도한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대단히 아름답지도, 특출 나지도 않은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향기와 분위기만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푸른 꽃’은 그 세 번째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테크닉이나 이야기의 장치들이 없어도 그림이 갖고 있는 그 분위기, 그것 하나만으로도 읽는 사람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다 읽고 난 뒤에는 나를 둘러싼 주변까지 물방울을 가득히 머금어 옅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바스러운 칭찬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독자들도 읽어 본다면 충분히 내 말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알고 보니 이 웹툰은 한국에서도 3권까지밖에 정식 출간을 하지 않아서 레진에서의 연재가 시무라 타카코 님의 팬들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매니아 층에서만 유명하지만, 사실 그녀는 일본 내 베스트 작가 30위 내에 항상 꼽히는 베테랑 작가라고. 푸른 꽃 이외에도 섹시가이, 어떻게든 되는 날들, 방랑소년으로 유명한 분이시라고 하니 혹시 평소에 백합물에 관심 있었던 독자들은 그의 만화를 눈 여겨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