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를 기르는 법» - 세상에 압도당하는 개인의 불안에 대하여
«혼자를 기르는 법» - 세상에 압도당하는 개인의 불안에 대하여
한 사회에는 그 사회에 지배적인 특정한 정서가 있다고들 한다. 2017년 현재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정서는 무엇일까. 감히 그것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불안’인 것 같다. 한국 사회를 사는 모든 사람은 존재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고, 이제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가져야 하는 (재산이든 커리어든 자아성취든) 청년들에게는, 그 극히 적은 가능성 때문에라도 불안감은 더 크게 느껴진다.
여기 자신을 ‘병균의 병균의 병균의 병균’이라고 인식하는 ‘이시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잡은 고기를 주인에게 갖다 바치는 가마우지와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월급쟁이이고, 다른 사람의 ‘시다’로만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못한, 초라하고 상처받은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소박하고 깔끔한 집에서 작은 동물과 물고기를 기르며 살기를 원하며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또 동시에, 자신이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걱정하며 자신의 의미가 ‘똥’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삶은 왜 불안한가? 다시 말해, 왜 ‘불안하지 않을 수 없는가’? 왜 우리는 이러한 삶을 불안하다 여기며, 예컨대 남들보다 월등한 실력과 돈과 사람을 가진 것 따위의 다른 삶을 안정적이라 여기는가? 나는 그 이유로 원자적 개인의 등장과 ‘성공의 서사’를 말하고 싶다.
현대사회의 등장과 함께 농경 사회적 의미의 공동체는 점차 해체되고 원자적 개인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노동의 변화는 생활양식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어 사고방식의 변화도 가져왔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공동체로서 존재할 수 없으며 나아가 공동체로서 존재하기를 거부한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존재하기를 스스로 바라고, 개인을 침범하는 공동체 윤리를 불편해한다. 개인은 더이상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온전한 개인’으로서 고유의 세계를 갖고 존재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개인 대 개인으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우리’로서가 아닌 ‘나’로서일 뿐이다. 현대사회에서의 개인들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기에는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너무 강해졌고 원자적 개인으로서 상호작용하지 않기에는 인간 고유의 외로움이 너무 큰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공적으로 살아야 하는’ 세상을 살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꼭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성공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세속적이든 이상적이든, 많은 돈을 벌든 돈에서 초연한 채 자유를 만끽하며 살든,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기를 바라며 실패하고 싶지 않다. 매스미디어든 SNS든 나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는 모두 누군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이야기뿐이다. 누구는 자기 사업을 가졌고, 누구는 대기업에 취직했으며, 누구는 여행을 다니며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누구는 도시를 떠나 소박한 삶을 꾸리며 산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성공적으로’ 살 수는 없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삶이든 말이다. 오히려 대다수 사람은 그저 그런 모습으로 남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시다’로 살아간다. 게다가 이제 우리의 정체성은 더이상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기에,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과 효능감을 느낄 수도 없다. 우리는 철저한 원자적 개인으로서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구축해 스스로 ‘성공’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도 남기지 못하는, 무가치하게 ‘똥만 싸는’ 존재에 다름없다.

그러한 개인은 억울하다. 왜냐하면, 현대사회를 사는 모든 이들은 죽을 힘을 다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허투루 사는 사람이 없고, 누구 하나 힘을 아껴가며 사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초라해야 하고, 무가치해야 한다. 왜? ‘성공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덮쳐오는 세계를 감당하는 것만 해도 내 모든 힘을 다 쏟아야 하는데,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내기까지 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곧바로 나의 가치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닐까?
«혼자를 기르는 법»의 연출이 건조한 모노톤인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현대사회에서의 개인은 이제 냉소적이기 쉽기 때문이다. 나라는 개인은 마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존재이자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소우주같은 존재같지만, 실은 그것을 ‘성공적으로’ 달성하지 못하는 순간 의미 없이 ‘똥만 싸는’ 그저 그런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런 감정을 한 번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이시다’의 말과 행동과 감정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나를 향해 덮쳐오는 세계에 맞서 살아남는 경험 그 전체에 대하여, 감당하기 어려운 세계와 경험에 원자적 개인인 내가 어떻게 맞서며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를 날것 그대로 쏟아내는 작품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