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부딪히는 터부(랄) <스퍼맨>
대화하며 은근히 터부시되는 주제의 대표를 하나 뽑자면 역시 성(性)을 들 수가 있다. 술자리나 뒷골목 담화에선 종종 입에 오르내리지만 공적인 자리에선 그 이름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해야 하는 주제다. 이를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사회를 개방적이라 부르며 우리도 그런 사회에서 살아야 함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입으로 막상 섹스! 라고 외치기엔 여러모로 부담스럽고 민망한게 현실이다. 그런 소심한 우리 앞에 당당히 치부를 드러내는 영웅이 나타났다. 착달라붙는 빨간 타이즈를 입은 그 이름 [스퍼맨] 이라 한다.
초월적인 정력을 가진 주인공은 자위 행위를 하면 분비물이 천장을 찌를 정도로 혈기 왕성한 청년이다. 하지만 여자친구와 사귀고 나서 처음으로 관계를 가지려는 날, 의문의 요원들에게 납치되어 실험실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자신이 슈퍼 정자를 가진 영웅 [스퍼맨]의 자질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변신 조건은 성적으로 흥분하는 것, 엉업결에 스퍼맨이 된 주인공이었지만 정적으로 흥분하기만 하면 변신하는 체질 때문에 일상 생활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좋아하는 선배와 거사도 치를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주인공의 고민은 날로 깊어져 가고, 이 와중에 스퍼맨의 힘을 노리는 악의 세력은 점점 주인공을 덮쳐온다.
[스파이더 맨]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주제를 벤 삼촌의 죽음과 이를 방치한 피터의 트라우마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장면이 있다. 영웅이 어떻게 남을 지켜야 한단 의식을 가지게 되는 지 그 동기가 생겨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 장면이었다. [스퍼맨]에선 영웅이 어떻게 소명의식을 갖추게 되는 지를 설명해가며 독자들에게 스퍼맨의 고뇌를 각인시킨다. 강제로 해야되는 변신 때문에 일상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특유의 강력한 정력 탓에 성관계도 맺지 못하는 데다 스퍼맨이란 이름은 쪽팔리기 까지하며 타이즈 복장은 민망하기 그지 없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이렇게 능력 탓에 곤란한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초능력 제거 무료 시술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이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히어로를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작품은 스퍼맨의 소명의식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이 사로잡히는 순간을 그려낸다. 이 순간들은 철저하게 성적인 개그에 휩싸여 있지만, 주인공의 동기 부여엔 아주 적절한 대목들이다. 주인공이 타인을 구하기 위해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나는 순간은 감동적이지만, 조금 민망하다.
민망하다. 이 작품의 개그 코드는 매우 민망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연구소 건물은 모양부터 노골적이고, 등장인물들은 개방적이다 못해 과감할 지경이다. 이 작품의 개그는 이런 민망한 상황 속에서 제정신을 차린 주인공의 딴죽과 난감함을 보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니란 걸 인지한 상태에서, 그 상황에서 벌어질 난감함과 민망함을 공유하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노골적인 묘사들은 의도적인 장치로 인식되기에 거부감이 줄어들고, 오히려 훌륭한 의도가 된다.
메이저라 할 수 있는 네이버 웹툰 뿐만아니라 마이너한 사이트에서도 시도하기 힘든 발상이었다. 하지만 하일권 작가는 자칫하면 싸보일 수 있는 소재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취향에 맞는 다면 얼마든지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전개와 기승전결이 완벽한 구조, 여기에 더해 화려한 피날레까지 히어로물이 갖출 수 있는 모든 걸 갖춘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