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금 특별한 저승길 체험기 <구사일생>

찹쌀떡 | 2017-01-31 00:19

조금 특별한 저승길 체험기 <구사일생>



[웹툰 리뷰]구사일생 - 이랭


케이툰 수요웹툰 연재중

글/그림 이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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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길에 들어가며



[웹툰 리뷰]구사일생 - 이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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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가보지 못 했지만 한 번쯤은 상상해보는 길이 있다. 바로 죽은 뒤 혼이 떠나는 ‘저승길’이다. 여기 이곳 이승에 있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저승길은 대체로 어둡고, 춥고, 무섭고, 삭막한 이미지를 동반한다. 거기에다 최근 종영해 아쉬움을 사고 있는 <도깨비>의 단짝 친구 사자(使者)를 추가하면 완벽하다. 한 마디로 그리 썩 밝지 않은 형용사들을 다 갖다 붙이면, 우리가 떠올리는 저승이 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발상을 조금만 전환해보면 꽤 신선한 그림이 만들어진다. 상상해보자. 만약 저승길이 생각보다 어둡고, 춥고, 무섭고, 삭막하지 않다면? 어쩌면, 우리가 늘상 떠올리던 ‘흔한 저승길.jpg’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면? 물론 저승길이 예상외로 아름답다고 해서 저승길에 가고 싶어지지는 않을테지만. 어쨌든, 지금부터 생각보다 ‘저승’답지 않아 독자들을 여러 번 당황시키는 저승길을 만나보자. 케이툰의 <구사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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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으로 가는 길 : 여기 저승길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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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죽고 나서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전설의 고향’에 나올 법한 스산한 연기와 바람,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남자는커녕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벤치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의문의 남자가 전부다. 그리고 그들이 앉아있는 곳은 주인공 명우가 뺑소니 사고를 당해 죽기 일보 직전인 사고 현장. 두 남자는 이곳에서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저승길의 초입치고는 꽤 평범하다. 그래서 더 범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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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걷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당고개 공원 화장실’. 명우는 저승사자가 화장실도 가냐며 우스갯소리로 넘기려 하지만 옆에 있는 의문의 남자는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위해서는 음의 기운이 가장 강력한 곳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화장실, 그 중에서도 음기를 맡고 있는 여자 화장실이 저승으로 프리패스 하는 데는 한 방이라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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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반의 끝에 쉼호흡 한 번 하고 여자 화장실 문을 열자 명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마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명장면인 팝콘 눈을 연상케 하는 노랗고 푹신푹신한 길. (심지어 걸을 때마다 ‘뽀잉’하는 귀여운 소리가 난다.) 한 술 더 떠 상공에는 고속도로에서나 볼 법한 ‘여기서부터 저승입니다’ 하는 친절한 안내 문구까지 휘황찬란하게 날리고 있다. 흔히 생각하던 저승의 모습과는 거리가 조금, 아니 조금 많이 멀다. 이쯤 되니 저승 세계의 시스템(?)이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 본격적인 저승길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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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길동무 :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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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째깍, 퇴근만을 기다리며 흘러가는 시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것 같은 회사원을 닮은 남자. 그의 직업은 정확히 말하면 아직 죽지 않은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오는 길잡이다. 다시 말해서 저승사자도, 염라대왕도, 신도 아니라는 것. <구사일생>에서의 저승 시스템은 꽤 복잡하다. 저승사자들이 무서운 표정을 하고 어두컴컴한 저승을 배회하며 지키고 있을 거라는 우리의 예상을 깨고 수많은 길잡이들이 체계적인 단계를 밟아 각자 배정 받은 혼을 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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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점을 제기할 수 있다. 길동무가 혼을 배정 받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가설을 세워볼 수는 있다. 길잡이와 길잡이에 이끌려 가는 혼은 이승에서 아는 사이였다는 것. 아직 확실한 부분이 아니라 ‘가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5화에서 또 다른 길잡이가 자신이 데려온 혼을 향해 분을 토해내는 장면을 보면 이전에 어떤 관계를 맺은 사이였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이 추측이 억측이 아니라면, 명우와 명우의 길잡이도 서로에 관한 사연이 있을지 모른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직 웹툰이 초중반부를 달리고 있으니 둘의 관계는 향후에 확인해보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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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확실한 건 있다. 명우의 길잡이는 ‘츤데레’라는 사실이다. 궁금한 게 많은 명우의 질문을 “글쎄”라는 단 두 글자의 대답으로 단칼에 쳐내다가도 명우가 위험에 처하면 단박에 달려가 구해준다. 말수는 좀 적지만 심성이 못된 건 아니다. 그렇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도 말 없는 길잡이가 영 답답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좀 말해주면 어디 덧나나 싶기도 하고, 그러니 명우는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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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관 : 인생의 마지막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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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초 동안 머릿속에서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 생사의 갈림길에 오고 갔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는 말. <구사일생>의 저승관에 따르면 이들이 경험한 기이한 현상은 주마등관에서 상영한 영화 덕분이다. 물론 주인공도 ‘아직 죽지 않은 영혼’ 명부에 속해있기 때문에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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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독자의 기대를 져 버리지 않는다는 듯 주마등관도 저승길만큼 범상치 않다. 티켓을 파는 사람도, 팝콘을 튀겨주는 사람도, 영화를 상영하는 사람도 단 한 명뿐이다. 바로 영사사자. 사자(使者)의 호칭을 단 자들은 왠지 아무 것도 안 하고 존재만으로도 냉기를 풍길 것 같은데 생각 외로 하는 일도 참 많다. 게다가 공원 정자에서 바둑을 즐겨 둘 것 같은, 선뜻 사자라고 믿기 어려운 푸근한 동네 할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도 아재 개그를 몹시 좋아하는.) 이것도 <구사일생>에서만 엿볼 수 있는 저승길의 매력 아닌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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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관에서는 아직 죽지 않은 영혼의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 상영한다. 관객은 주마등관을 운영하는 영사사자와 죽은 자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인 자신이다. 죽은 자들은 주인공의 인생을 보며 각자 느낀 바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데, 그 점수의 평균이 인생 점수가 된다. 만일 죽지 않은 영혼이 기적적으로 이승에 돌아가게 된다면 주마등관에서의 기억은 지워지고 영화 속 내용만이 어렴풋하게 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주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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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길을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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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저승길을 나올 시간이다. 아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어쨌든 제 발로 가고 싶어지는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 <구사일생>에 대해 짤막하게 논해보자. 본 웹툰은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판타지 장르의 웹툰이다. 판타지 장르는 대개 작품만의 세계관이 분명하고 그 세계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독자들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한두 회 정도만 놓쳐도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지고 몰입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타지 요소가 가득 들어있는 본 웹툰을 독자들이 부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이승 세계를 반영한 저승관 덕분이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인 화장실, 죽지 않은 영혼들의 인생을 상영해주는 영화관, 그리고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한 저승의 길잡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징적인 요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승 세계와 몹시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러니 작가가 억지로 독자를 작품에 몰입하게끔 유도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공감하고 흥미를 갖는 건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구사일생. ‘아홉 번 죽을 뻔하다 한 번 살아난다’는 뜻으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겪고 간신히 목숨을 건짐을 뜻한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던 사람은 누구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같은 맥락에서 웹툰 <구사일생>은 사후세계라는 역설적인 공간을 통해 우리에게 사자성어의 의미와 유사한 메시지를 던진다. 저승길에 들어서 후회하기 전에 한 번뿐인 인생을 값지게 살아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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