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그를 훔쳐본다 - 관음증 있는 그녀의 일상
이 작품도 tvN에서 드라마화된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늘 그렇듯이,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우리의 삶과도 비슷하고, 몰입감도 있으며 재미있다. 훔쳐본다는 설정이 다소 소름이 돋긴 하지만, 우리가 드라마나 만화를 보는 이유가 으레 그렇듯 모든 것이 상식적일 필요는 없다. 드라마에서는 이제 상식적인 귀싸대기로는 분이 안 풀렸는지 김치로 귀싸대기를 때리는 판국이다. 그리고 현실과 만화를 구분 못하고 진짜로 아까운 김치로 귀싸대기를 때리거나, 스토킹을 하는 바보도 없을 테고 말이다.
주인공 고독미는 동화 삽화를 그리며 살아간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거의 그러하듯 그녀는 밥 먹고 일하고 밥 먹고 일한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답게 외출을 싫어한다. 그러다 자신의 중학교 시절 왕따를 주도시킨 동창생 차도휘를 길에서 만나게 된다. 체력이 떨어져 오랜만에 영양식을 만들어 놓았는데.. 먹으러 갈 틈도 주지 않고 차도휘는 고독미의 손을 이끌고 카페로 들어가 물어보지도 않은 자기 자랑을 잔뜩 늘어놓는다. 고독미 같은 성격의 사람들은 무병장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주변에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는 사람들.
그냥 바쁘다고 하고 갈 길 갔어도 될 것을 힘들게 자처해서 듣고 싶지도 않은 차도휘의 자기자랑을 잔뜩 들어준 고독미는 집에 와서 아깐 이랬었어야 해하며 후회를 한다. 어떻게 보면 참 미련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너무 착하고 정감 가기도 한다. 자신을 변호할 줄 모르고 맺고 끊는 것을 잘 하지 못해서 자신의 인생의 중심이 없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안타깝지만 말이다. 그러던 그때 고독미는 맞은편 건물의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를 보는 순간 그녀의 마음은 눈 녹듯이 녹아내리고, 그날 이후부터 그를 훔쳐보는 것은 그녀의 일상이 된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을 따라 하는 그녀. 그가 빨래를 하면 그녀도 빨래를 하고 그가 물을 마시면 그녀도 물을 마신다. 훔쳐본다는 부분에 있어서 조금 소름이 돋는 설정이긴 하지만, 그녀가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따금 기타를 치는 그를 보며 자신도 기타를 배워보겠다고 술에 취해 거금 30만 원을 들여 인터넷에서 기타를 사는 행동도 한다.
그가 정기적으로 목욕탕을 가는 날. 어쩐 일인지 그가 쫙 빼입고 외출 준비를 한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한다. 어떤 여자를 만날지. 이런 좋은 날 광합성이나 해볼까. 아니야 추운 날은 집에 있어야 되라고 하며.. 하지만 그녀는 결국 그를 미행한다. (...) 어쩌다 놓쳐버린 그. 그녀는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와서 사고가 난 것은 아닐까 아니야 죽었을 리가 없어하고 별별 생각을 다하며 그를 기다리지만 그는 제시간에 돌아오지 않고 외박을 했다.
그가 무사히 돌아오면 다시는 훔쳐보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하지만 창밖으로 돌아오는 그를 바라보며 그 다짐은 금세 잊히고 (?)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음날, 평소대로 그를 훔쳐보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는데 건너편에 처음 보는 남자가 팬티만 입고 있고, 둘은 눈이 마주쳤다.
그 이후로 그녀는 그녀가 짝사랑하는 그를 더 이상 훔쳐볼 수 없게 되었다. 건너편 집에 들어온 알 수 없는 이 남자는 바로 달려와 관음증은 정신건강에 해롭습니다.라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지지를 않나, 자신을 짝사랑하냐는 질문을 하지를 않나.. 이 노란 머리 팬티 남과의 악연은 계속되어 우연히 들린 떡볶이집에서도 마주치게 된다. 가는 길에 다 식을 텐데 여기서 먹고 가지 그러냐는 그의 말에 가뜩이나 외출을 싫어하는 소심한 여주인공은 떡볶이를 주문했는데 가져오지도 못한 채 집으로 줄행랑을 치고, 이 팬티 남은 떡볶이를 그녀의 집 앞으로 직접 배달까지 해주며 이 둘은 묘한 애증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소극적인 고독미가 온전한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는 건, 어렸을 적 세일러문이 변신하는 것을 보는 것만큼 흥미롭다. 우리도 고독미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거절을 못하거나 답답한 면을 지니고 있을 것이고, 또 이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으니 우리는 이런 만화를 시대가 지나도 사랑할 수밖에 없나 보다.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스토킹을 자신이 당할 때 어떤 기분인지 역지사지로 생각하게 해주는 점도 좋은 웹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