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사이다를 부탁해!» - '사이다'라는 카타르시스와 그 너머
네이버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웹툰계의 가장 큰 유통망이자 서비스 업체이고 스스로도 자신의 시장 선도적 위치를 잘 인지하고 있다. 그런 네이버가 주기적으로 기획 옴니버스 웹툰을 선보일 때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만화거장전», 공포 단편선, 개그 단편선 등의 기획을 통해 인기 작가는 물론 대한민국 만화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주요 작가들의 작품까지도 선보인 바 있다. 이번에도 네이버는 «2017 사이다를 부탁해!»를 통해 인기 웹툰 작가들이 신나게 놀아볼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었다.
특히 이번 기획전에는 지금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들이 독자 사연을 다룬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재미를 보장할 수 있다. «대학일기»의 자까, «연놈»의 상하, «놓지마 정신줄»의 나승훈, «밥 먹고 갈래요?»의 오묘, «Ho!»의 억수씨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인기작을 그렸고 또 그리고 있는 작가들이 한 에피소드씩을 맡았다. 독자 사연을 각색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변주해 내는 작가들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아는 작가에게서는 신선함을, 몰랐던 작가에게서는 놀라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다’라는 주제에 충실하게 독자 사연은 에피소드의 뼈대로만 사용했고, 구체적인 묘사와 특히 결말 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고유한 스타일을 극대화해 풀어낸 에피소드들이 많다. 각 에피소드는 옴니버스 개그 만화라는 형식에 충실하며, 사연 자체가 주는 공감의 재미와 그 사연을 풀어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주는 개그의 재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획이다. 가령 «운빨로맨스»의 김달님 작가가 담당한 ‘청춘잔치’ 에피소드는 어르신을 모시고 가는 여행이 주는 어려움이라는 소재를 사르카스틱(Sarcastic, 비꼼, 풍자)한 대사 및 표현을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러한 기획 웹툰은 그 기획 의도에 맞게 여러 인기 작가들의 고유한 스타일로 다양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향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개그만화는 기본적으로 개그로 소비하면 된다. 그러나 개그만화라고 개그만화로’만’ 소비할 필요도 없다.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우리에게 ‘사이다’가 필요한 걸까? 왜 우리는 ‘고구마’ 먹은 듯한 답답함 속에 살고 있을까? ‘사이다’는 유력 대선 후보들까지 즐겨 사용할 정도로 지금 우리 시대가 바라마지 않는 것이 되었다. 우리는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한 현실을 ‘사이다’ 마시듯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사이다’는 찰나의 카타르시스 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렵고, 우리는 결국 또 ‘고구마’ 먹기를 피할 수 없다. 카타르시스는 순간적인 감정의 해소일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 사연으로 구성된 각 에피소드들은 사실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실제적 문제들이다. 여기에는 가족 문제, 경제 문제, 계층 문제, 세대 문제, 조직 문제, 애정 문제 등, 서로 복잡하게 얽힌 여러 행동 주체들의 입장이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지만, 시야를 넓혀 다른 생각을 하면 더 좋은 일일 것이다. ‘무언가에’ 넓은 시야를 가져본 사람은 ‘모든 것에’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그 만화는 개그를 향유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거기서 개그 이상을 향유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 개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