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의 세포들» - 즐겁게 보다보면 깨달음이 와요

‘여성의 심리’란 정말이지 남자가 알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미묘해 보입니다. 기분, 판단 기준, 행동 패턴, 화가 나는 포인트 등등, 아무리 봐도 남성과 여성은 참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사회적 젠더의 형성, 문화와 양육 환경의 영향, 성차별적 인식구조, 가부장적 세계관 같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고려해보아도, 남성은 보다 단순하고 여성은 보다 복잡한 존재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런 요소들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고, 혹은 그런 요소들을 제거한 본질적인 여성이나 남성 자체가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남성 중에서도 이러한 여성의 심리를 잘 아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닙니다. 심지어 작품을 통해 잘 표현하기까지 하죠. «달콤한 인생»에서 사랑과 연애에 대한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이동건 작가는, «유미의 세포들»을 통해 여성 심리의 복잡다단한 면을 코믹하면서도 심도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실 «유미의 세포들»은 따로 소개가 필요없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죠.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이미 2016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작가는 여성들만 알 수 있는,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여성들이라면 더욱 잘 알 수 있고 그래서 더 공감할 수 있는 상황과 감정을 섬세하게 잡아냅니다. 그것은 물론 순간적인 것입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순간적인 느낌과 기분, 알 수 없는 찝찝함, 문득 떠오르는 감정, 남성은 잘 모르는 미묘한 긴장같은 것 말이죠. 작가는 그 순간을 정확히 포착해 복잡다단한 여성의 내면을 캐릭터화된 세포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물론 개그를 위한 장치로만 기능하는 세포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미의 세포들은 ‘~로서의 나’를 상징합니다. 즉 내 안에는 이성적인 나, 감성적인 나,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 응큼한 나,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나 등등 수많은 나의 단편들이 혼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 내 안엔 내가 너무도 많죠?
이러한 수많은 나의 모습을 풀어내는 방향은 기본적으로 코믹함입니다. 귀여운 세포 캐릭터들이 유미나라에서 투닥거리는 모습은 귀여운 듯 과격한 듯 웃음을 자아냅니다. 순간순간 빛을 발하는 개그 센스에는 그저 놀라워하며 웃어버릴 뿐이지요. 개념을 만화화하는 발상 역시 특별합니다. 가령 영혼 없는 칭찬을 택배의 내용물로 표현하는 발상은 놀랍도록 섬세합니다. 작가의 발상과 센스는 탄탄한 연출력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합니다. 컷툰 형식이 처음 도입될 즈음 이 형식을 적극 수용한 이동건 작가는, 컷툰 형식 자체를 이용해 연출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현실 세계와 세포 세계의 갑작스러운 대비와 반전은 모바일 컷툰으로 감상해야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컷을 갑자기 등장시키며 놀라운 웃음을 자아내게 했던 작가는, 최근 에피소드에서는 여러 컷을 연속적으로 이어붙이는 진일보한 연출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 놀라운 발상과 개그 센스가 작품 내내 이어집니다.
이 작품을 보고나면 가끔씩 ‘이게 이런 거였구나’ 하는 놀라운 기분이 듭니다. 그것은 분명 제가 남성이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여성을 알기 위해서는 여성과 많이 만나보고 대화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속마음을 다 알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죠. 그럴 때 «유미의 세포들»이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이 작품이 정답을 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까운 사람과 대화의 물꼬를 틔워줄 힌트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남자분들, 어서 정주행 한 번 하시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