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당신과 당신의 도서관 - 도서관과 삶에 대하여

경리단 | 2016-06-18 11:32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정말로 오랜 시간동안 계속 똑같은 일에만 매달려 있다 보면 누구나 본래의 목적을 잊기 마련이다. 흔히 초심(初心)을 잃는다고 표현한다. 사람의 의지가 한계가 명백한 탓일 수도 있고, 주변의 환경이 시작하기 전에 생각했던 만큼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초심을 잃으면 이제 남은 것은 ‘관성’ 뿐이다. 관성만으로는 이루려던 일을 성공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운이 좋아 성공한들 머지않아 후회와 허탈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웹툰 ‘당신과 당신의 도서관’ 은 초심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쩌면 처음부터 초심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원래부터 없었는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잃어버렸는지 그조차도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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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도서관에 처박혀서 수험서만 들여다보고 있는 고시 장수생들의 현실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공무원, 교사, 변호사에 지원하는 사람들 중에 투철한 직업의식과 소명감으로 무장한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있다고 해도 1년, 2년, 3년을 똑같은 공부만 하고 똑같은 시험만 보고 있다면 대체 얼마나 남아있겠는가?

 

주인공 ‘용덕’ 은 임용고시 수험생 3년차로, 달리 말하면 백수 3년차인 29세 남성이다. 매일 같이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하고 있으며, 3년째 백수라는 영 좋지 않은 사회적 환경의 결과로 주변 인간관계조차 하나둘 망가지고 있다.

 

그가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에도 그를 기다리던 여자친구인 ‘영미’ 조차 이별을 선언하고, 하필이면 학창시절부터 용덕과 사이가 좋지 않던 ‘영빈’ 과 사귄다. 더욱 공교로운 건 영빈은 이미 7급에 합격한 어엿한 공무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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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장수생들이 득실거리는 도서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안나’ 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안나는 상당한 미인에, 미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 출신이며, 석사과정을 준비 중인데 잠시 도서관에서 봉사활동 중이다. 뛰어난 스펙과는 별개로 성깔이 상당히, 아니 많이 있는 편인데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싸가지가 없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명색이 ‘사서’ 로 봉사 중인데도 책 대출을 처리해 달라는 용덕의 요청에 자동 기기를 이용하라며 쿨하게 거부하고, 이에 항의하자 와인(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와인을 마시고 있다)을 뿌려버린다. 몇몇 남자들이 찝적거리자 아예 도서관 대출실 문을 잠가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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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대단치 않은 변화는 분노한 도서관 이용자들과 안나 사이를 도서관장이 중재하면서 시작됐다. 안나는 고스펙을 활용해 무료 과외를 해주겠다고 제안하고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서 용덕을 포함한 몇몇이 스터디를 하게 된다.

 

온갖 기이하고 화끈하며 잔인한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지금 시대에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사회적으로 뒤쳐진 한 남성이 자존심까지 내버리고 어떻게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려고 버둥거리는, 구차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웹툰이 충분히 재밌는 것은 역시 우리네 인생이 대부분 대단치 않은 탓도 있겠지만, 부가적으로 몇 가지 장점을 거론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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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심리묘사다. 주인공 용덕을 포함해 대부분의 인물들이 심리적으로 극한의 상황에 몰려있다. 이러한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방식이 매우 세련되다. 주변인물과 별 것도 아닌 이유로 주먹질을 하며 싸우거나 혼잣말, 혹은 마음 속 생각을 대사 방식으로 처리하는 단순한 방법이 아니라, 그리 길지 않은 컷에서 누구나 고민하고 있을 때 할 법한 행동과 표정을 통해서, 대사나 격렬한 다툼이 없어도 인물들의 심리를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특히나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거나 경험을 겪은 독자라면, 그야말로 심금을 울릴 만한 솜씨다.

 

작품에서 계속 등장하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대사도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은 인물들이 오랜 세월 정신적 수련을 쌓은 현인이기 때문도 아니고, 대단한 철학과 오의를 내포하고 있는 대사도 아니다. 다만 그들이 오랜 시간동안 정신적 고통에 처해 있고, 또 그만큼 자신의 처지를 고민했기에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날카로운 통찰이다. 대장간에서 다져진 강철이 아니라 자연에서 바람과 물에 의해 풍화된 매끈한 보석과 같다. 작가가 유사한 경험을 직접 겪었거나 최소한 등장인물들의 입장을 깊기 공감했던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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