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작가의 식탁을 찾다, 『문호의 식채』

관리자 | 2017-10-06 09:19

작가의 식탁을 찾다, 『문호의 식채』


작가의 식탁을 찾다, 『문호의 식채』

『문호의 식채』 | 글. 아츠시 미부 & 그림. 케이 혼조우 | 미우 | 8천원


 


 일본 문호들의 식탁에는 그들의 글만큼이나 엄청난 요리가 올라오지 않았을까. 조금 더 기대를 보태자면, 그들이 나와 똑같은 음식을 먹었다면 어떻게 표현 했을지가 궁금하다. 일본문학 특유의 탐미적 묘사로 혀에 닿기만 해도 녹는 소고기나 다랑어의 맛을 표현하면 읽는 것만으로도 침이 잔뜩 고일 것만 같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물어보는 것은 차치하고 일단 그들이 사랑한 음식을 나도 먹어보아야 할 테다. 아츠시 미부가 쓰고 케이 혼조우가 그린 어려운 제목의 『문호의 식채』는 이름만 대도 수긍하게 되는 일본 작가 6인이 사랑한 음식을 찾아 나선다. 작가들이 먹었던 음식에 대해 다룬다니, 어쩐지 좋은 맛집 가이드가 될 것만 같다. 그런데 그들이 사랑한 음식은 기대만큼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메밀소바라고도 불리는 자루소바나 서민들이 즐겨먹던 떡 쿠즈모치 등이다. 그제야 반찬을 뜻하는 ‘식채’라는 말이 왜 제목에 붙여졌는지 이해가 간다. 작품은 일품요리가 아닌, 그들이 즐겨먹던 음식 그리고 그런 음식들을 먹던 일상에까지 눈을 맞춘다.


 


작가의 식탁을 찾다, 『문호의 식채』

결핵성척추염으로 누워서 지냈던 하이쿠의 대가 마사오카 시키가 먹던 밥상을 구현했다

 


 『문호의 식채』가 들여다 본 작가들은 나츠메 소세키, 마사오카 시키, 히구치 이치요, 나가이 카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다. 누가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자신의 분야에서 쟁쟁했으며 일본 근대문학을 풍요롭게 만들었던 장본인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이 먹은 매일의 음식에 대해 낱낱이 기록했을 리 없을 테다. 그래서 작품은 가상의 인물인 마이초 신문의 기자, 카와나카 케이조의 눈으로 그들의 식탁을 재구성한다.


 카와나카는 본사 정치부에 있다가 후카가와 지국으로 좌천된 인물이다. 후카가와에서는 본인이 좋아하는 식도락에나 매진하며 태만하게 지낸다. 쿠로다 국장은 그에게 이제 기획거리를 물고 올 때가 되었다고 다그치고, 카와나카는 별 계획도 없이 대뜸 음식에 대한 글을 연재하겠다고 선언한다. 너무 흔해빠지지 않았나 하는 우려에 카와나카는 메이지 시대 문인들이 즐겼던 음식을 추적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과연 가능한지가 문제다.


 


작가의 식탁을 찾다, 『문호의 식채』

나츠메 소세키의 『도련님』에서 늙은 하녀 키요가 손수 용돈을 털어 사주던 모미지야키

 


 거창해 보였던 기획은 ‘문사의 주문’이라는 이름으로 의외로 순조롭게 시작된다.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유명한 나츠메 소세키의 식탁이 첫 번째 대상이다. 근대화의 격변 속에서 지식인으로 살면서 세상의 변화를 누구보다 예리하게 묘사했던 소세키라면, 내가 먹은 음식 중 무엇이 좋았다고 한 줄이라도 남겨뒀을 것 같은 기대마저 든다. 그러나 그런 보기 좋고 먹기도 쉬운 먹잇감이 대번에 나타날 리 없다. 그래서 카와나카는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소세키의 음식을 마치 탐정처럼 추리해나간다. 마침내 『도련님』에서는 작은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본가의 하녀 키요가 주인공인 도련님에게 본인의 용돈을 털어 사주던 과자 ‘모미지야키’다. 모미지야키를 실제로 소세키가 즐겨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빠른 근대화에 의문을 품으며 조금 다르게 세상을 바라봤던 소세키에게는 의미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온통 거짓처럼 보이는 현실보다 자신에게 늘 다정했던 하녀 키요가 사줬던 유년의 과자가 더 소중했을 테니까. 서구적인 마돈나보다 작고 늙은 하녀 키요가 좋았던 도련님이라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다소 연결 짓기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카와나카는 나름의 결론을 내며 이런 멋진 가설을 완성한다. 어쨌거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소세키를 만나지 않는 이상, 정말 그가 과자에 그런 원념을 담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다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료를 찾고 그리하여 그들이 먹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음식을 현재의 내가 즐기면서 그들의 일상을 상상한다. 그런 마음으로 읽어가다 보면 어쩐지 다자이 오사무가 죽음을 결심한 날의 뒷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한다.


 


작가의 식탁을 찾다, 『문호의 식채』

늘 같은 식당, 같은 자리, 같은 메뉴를 선호했던 소설가 나가이 카후

 


 카와나카의 흥미로운 추적이 담긴 에피소드가 끝나면 탄탄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아츠시 미부의 칼럼이 따라붙는다. 카와나카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마치 그가 신문에 쓴 기획을 읽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 글과 작가의 삶을 음식으로 연결 짓는 미부의 글 자체도 흥미롭다.


 6인의 식탁을 전부 훑고 나면 그들이 즐겨먹었던 혹은 즐겨먹었을 것이란 추정되는 음식이 모두 그들의 삶이나 작품과 닮아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 각자의 책 한권과 즐겨 찾던 음식점 지도를 만들어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싶게 만든다.



출처 : 에이코믹스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34414
윤태호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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