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술 - 고영훈 작가의 환성적인 술의 세계

namu | 2016-09-0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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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객꾼은 적당한 고객을 골라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을 타깃으로 접근. 작은 핀으로 고객의 말을 분석하여 진담인지 빈말인지 가려준다. 이 핀은 현실의 음주 측정기와 같은 용도다. 측정기로 쓰였던 입장권 핀을 고객의 옷에 꽂은 뒤 본사에 등록, 고객에게 발각될 시에 핀은 자동 소멸되고 등록 역시 취소된다. 입장권은 고객이 완벽하고 안전하게 혼자가 되었을 때를 인지하고, 대기 중인 배달부에게 위치를 전송한다. 고객의 코앞에서 포탈을 타고 배달부가 찾아오고 관처럼 생긴 배달통에 고객을 넣어 ‘술'이라 불리는 세계로 돌아간다. 통로를 지나면 원래 세계에 맞는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지점을 배정받으면 지점의 바텐더들에게 고객을 배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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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구역이 이 웹툰의 중심지. 이곳에는 12구역이 존재, 12명의 ‘안녕남' 씨가 각각 자신의 구역을 감시한다. ‘안녕남' 씨는 거대한 거인의 모습을 하고 있고, 줄여서 녕남 씨라 부른다. 배달된 고객을 3일 내로 처리하지 못하면 본사에서 검열관이 찾아오게 되고 조사 후 직원들의 실수로 판명 나면 고객도 죽고 직원들은 흑족으로 전락한다. 흑족은 이 세계에서 가장 하급 미물에 속하는 존재로 검은 타르같이 찐득찐득한 형체를 띄고 있으며, 보통 이 세계 도처에 강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으나 가까이 가면 공격적으로 변한다. 이 11구역의 바텐더 분홍머리의 수필과 보라 머리의 원샷, 지점장이자 총감독 노란색 머리의 한통과 파출부이지만 청소하는 게 제일 싫은 빨간 머리의 첫잔, 항상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는 조그맣고 앙증맞은 하늘색 머리의 미니 지니, 바텐더들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들을 깨끗하게 씻겨주는 기계 때밀이 씨가 한 팀을 이루고 있다. 줄여서 필, 샷, 통, 잔, 지니, 녕남 씨. 그리고 이 세계의 총감독을 맡고 있는 환상의 세계 술의 매니저 스카치까지.. 고영훈 작가의 작명 센스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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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파리만 날리던 11구역에 오랜만에 손님이 도착한다. 이 손님은 한가정의 가장. 힘들게 고아로 자라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자수성가해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믿었던 장 사장에게 사업적으로 배신을 당하게 되고 그의 마음은 장 사장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있다. 여기에 배달된 고객들은 바텐더가 타주는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로 있게 되고, 바텐더 중 한 명을 안주로 택해 먹게 (..) 되면, 바텐더가 고객의 몸으로 들어가 동기화를 하게 되고 기억을 다운로드한다. 죽이고 싶은 사람을 제거하고 나면 바텐더는 몸을 떠나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되고, 그 후엔 고객도 죽는다. 아기자기하고 동화적인 색감과는 달리 고영훈 작가 특유의 연출법 - 훈훈한 가족과 죽음의 대치는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묘하게 서늘하고 냉소적인 느낌을 준다. 이쯤 되면 왕좌의 게임에서 등장인물이 죽을 때마다 북마크 해놓는 것처럼 고영훈 작가의 작품에서 누군가 죽을 때마다 체크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농담입니다.)

 

중간중간 ‘트레이스’적인 요소를 놓지 않은듯한 신들이 등장한다. 파출부 첫잔과 배달부 선불(..)의 추격신과 첫잔이 소환해낸 소환물은 트레이스 - ‘마지막 날'에 등장하는듯한 거대 트러블의 형상을 한듯한 여인의 형태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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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때 컴퓨터 화면이 지직거리듯이 화면이 군데군데 구멍 난듯한 형상으로 밤이 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 설정 역시 몽환적이면서 ‘술'이라는 세계에 대한 독보적이면서 독창적인 느낌을 실어준다. 작품 안의 작품 개념으로 티비 속에 나오는 트레이스를 보는 재미도 덤이다. 손님이 없던 11구역에 이틀 연속 손님이 찾아오면서 가게는 축제 분위기. 하지만 이 여주인공 ‘심연'이 너무 예뻤던 탓일까. 필과 샷은 여성에게 건네준 술을 마시면 안 된다며 고의적으로 동시에 술잔을 파괴한다. 때마침 티비에서는 트레이스 장미 편의 장미가 등장하며 ‘나 좀 구해줘요'라는 대사를 한다. 이 역시 적절한 상황에 자신의 작품을 배치하는 작가의 센스가 엿보이는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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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장르에 있어 거의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고영훈의 색다른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술' 액션물이 아닌 다른 장르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웹툰 시작부터 완결까지 그만의 독창적이고 신비스러운 느낌과 동화적인 판타지가 가미된 수작이다. 어릴 적 보던 만화들은 생각해보면 앞뒤가 안 맞는, 혹은 주인공에게 무언가 하자가 한두 개씩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 만화의 환상적인 느낌에 반해 캐릭터들에게 푹 빠졌던 기억이 있다. 고영훈 작가의 이 ‘술'이라는 작품 또한, 그만의 캐릭터와 설정이 너무 독보적이라 어릴 적 푹 빠져있기를 즐기던 공상만화 속 세계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그의 창조된 세계에 빠져들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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