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 - 이 시대 마지막 영웅의 이야기
원작 웹툰은 독자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은 반면 KBS에서 드라마로 각색한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 드라마 자체가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을 보면, 이제는 독특한 소재가 없다는 드라마 시나리오의 문제가 아닌, 연출과 각색의 문제라는 느낌이 든다. ‘카우보이’ 말 그대로 소모는 사내라는 뜻인데, 서부 영화나 서부영화 콘셉트의 도마뱀이 등장하는 랭고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시대적 특성상 다양한 인종이 여기저기 몰려들어와 유목민 생활을 하고, 어중이떠중이들이 여기저기 들이닥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총을 쏘게 되었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다지 멋있지 않은 직업임에는 분명하다.
대륙의 특성상 야생동물의 습격도 한몫한다 볼 수 있다. 필자가 환장해 마지않는 카우보이 비밥에서는 카우보이 자체가 현상금 사냥꾼으로 묘사된다. 하여 굳이 이 웹툰의 제목을 풀이하자면 이 시대의 마지막 진정한 사나이.
카우보이보다는 ‘라스트'라는 단어에 중점을 두는 것이 더 웹툰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극중 심덕수와 박평달의 외모가 묘하게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을 보면, 정의의 사도 같은 느낌을 표현하려 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고독하고 정의로운 사나이의 이미지 말이다. 1993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가 은퇴한 무법자가 다시 무법자의 인생을 살게 되는 이야기라는 점이, 은퇴한 노인들이 경찰들을 대신해 수사를 한다는 점을 떠올려 보았을 때 ‘돌아온 무법자'의 느낌이 묘하게 닮아있다.
작품의 시작은 강렬하다 공사현장에서 묵직하게 포크레인으로 들어올려진 시체, 방을 가득 채운 파리떼, 골방에서 구더기가 들끓어 썩어가는 노파.. 소외된 계층의 소외된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전쟁 때 피난 와서 아리동에 쭉 자리 잡고 가게, 집을 몇 개 가지고 있는 심덕수 영감은 처자식한테 돈 쓰는 게 아까워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으며, 성질이 괴팍해 주변에 친구도 없다. 스크루지 같은 그도 사실 마음먹은 대로 말이 나가지 않아서 그렇지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는 캐릭터라는 것은 초반 몇 화만에 금방 드러난다. 물에 말은 밥에 김치를 반찬으로 후룩후룩 식사를 하며 명국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를 부르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하는 그.
하지만 여전히 그의 취미는 세입자들에게 월세 독촉하기. 아랫집 사는 최 씨와 세 들어 사는 지은 학생에게 달세를 내라며 매일같이 독촉하러 찾아간다. 우연의 일치로 최 씨는 자살하려 마음먹고 로프와 소주를 사 오는 길이었고, 앉아서 한 잔 하자는 최 씨의 말에 심덕수는 오랜만에 사람과의 대화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종종 노인들끼리 죽었나 살았나 생사확인도 할 겸 이런 자리를 종종 갖자 이야기한다. 그러자 최 씨는 아리동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이 죽거나 사라지는 사건이 있었고, 그다음은 젊은 여성들이었다는 묘한 이야기를 한다.
다음날. 심덕수는 해장국이라도 한 그릇하자며 최 씨의 집을 찾아왔지만 최 씨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주변에서 평판 좋지 않은 심덕수에게 불리한 주변 증언이 이어졌고, 뉴스는 최 씨가 계속되는 월세 독촉으로 인해 삶을 비관하고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최 씨의 집을 한 바퀴 둘러보는 심덕수. 최 씨가 형사 시절같이 근무했던 박평달 형사가 찾아오면서 최 씨가 최근 미국에 있는 자식들을 보러 가기 위해 비행기 표를 마련한 것을 보여주며 자살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월세를 밀리면 반드시 죽기라도 하는 법칙이 있는 걸까. 최 씨가 죽고 다음날 지은 학생은 실종되었고, 그녀의 집에 가끔 찾아오던 지은 학생의 친구는 토막이 나 냉장고에서 발견되었다. 박평달은 섣불리 경찰에 신고하게 되면 지은 학생이 죽을 수도 있다며 결국 심덕수와 박평달은 사건 조사에 나서게 된다.
개봉을 앞둔 영화 탐정 : 더 비기닝 같은 영화도 그렇고, 이 작품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도 그렇고, 이런 작품들이 많은 사랑을 받게 된데 있어서는, 사람들의 공권력에 대한 불신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 같은 경우에는 별다른 능력 없이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 있어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갖지만 말이다. 조각난 퍼즐을 맞추어 가는듯한 추리의 과정 또한 인상적인 작품이다. 아리동의 마지막 희망 노인들이 펼쳐가는 수사 과정. 그들은 과연 범인을 잡고 아리동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