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날로그 맨 - 서글픈 청춘의 초상

위성 | 2016-09-28 15:09

 

 

 

만화가 김수박이 스스로의 삶을 기초로 해 구성, 자신의 서울 생활보고서이자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 픽션과 논픽션, 현실과 몽상을 넘나들며 한국 만화의 독창적 영역에 들어간 바로 그 만화, 아날로그 맨.

 

농담이었으면 뉴스에 등장했을 리가 없는 단어, 헬조선 2015. 대학진학률이 아무리 높아도 취업률 앞에 좌절하게 되는 세상이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먹을 것이 넘쳐나지만, 가끔은 마치 그것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상차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가의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매주 목요일 백화점 오픈 시간마다 줄을 섰다는 친구의 이야기 또한 나와 같은 잉여들에게는 거리가 좀 먼 이야기이다.

 

얼마 전 방영했던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을 보며 서글펐던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서글펐고, 서글펐고, 서글펐다. 부모님 뵐 면목도, 돈도 없어 귀성길에 오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었을 잉여로운 Show가, 그것을 보고 ‘예능이잖아.’라고 쿨하게 넘기지 못하는 내가.

 

 

2.gif

 

 

웹툰 ‘아날로그맨’을 읽으며 퍼뜩 그 쇼가 생각났던 것은, 이것이 꾸며낸 것이 아닌 현실 위에 쌓아올린 이야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간적 배경은 십년도 더 전이지만 그곳에서 펼쳐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지금의 괴로운 청춘들과 그리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 웹툰은 나에게 조촐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헐렝이의 시선은 사실 만화적인 느낌보다 다큐멘터리같은 느낌을 준다. 나조차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두고 아무렇지 않게 “왜?”냐고 묻는 무신경한 주변인들. 왜 사는 게 재미없는지, 왜 결혼은 안하는지, 왜, 왜, 왜. 그럼 너는 왜 그렇게 생각 없이 지껄이느냐고 묻고 싶어지는 장면들이 지나가면 이 웹툰의 여정의 시작되는 친구의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오래 전 다툼을 벌인 후 긴 시간 연락이 없었던 친구 칠칠이가 보내 온 손편지였다. 그는 얼마 전 한국 전쟁, 가장 치열했던 전적지 다부동 숲속으로 숨어 자신의 주민권과 사회적 권리를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말을 전한다. 동시에 그를 초대하며 다부동 숲속으로 가는 길 편이 적혀 있는 인쇄물을 동봉한다. 그리고 삼천 원 중 이천 원으로 계란을 사먹고 천원밖에 남지 않은 헐렝은, 결국 기차에 몸을 싣는다.

 

 

3.gif

 

 

만화가 김수박은 마치 진중한 영화를 한 편 찍는 듯한 어조로 이야기를 읊조리는데 그때마다 등장하는 한 줄, 한 줄의 말들이 좋은 싯구를 옮겨다 적은 듯 섬세하고 깊다. 그림 또한 마찬가지다. 흑백영화처럼 검은 잉크로 그려낸 것 같은 캐릭터와 배경들은 그가 읊조리는 대사들을 받아 적기에 좋은 화선지처럼 보이니 말이다.

알고 보니 김수박 화백은 <또 하나의 약속>의 모티브가 된 작품인 <삼성에 없는 단 한가지>로 프랑스 녹색당이 주는 ‘해바라기 상’을 받은 작가였다. 사회가 답답하니까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접근한다는 그의 젊은 시절이 바로 ‘아날로그맨’에 담겨 있는 셈이다.

 

 

4.gif

 

 

환상은 희망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선명한 사실은 각성을 시켜 준다. 그런데 김수박 화백이 각성시켜 주는 이야기에는 어쩐지 희망이 느껴진다. 그 세월을 다 견디고 지금의 자리에 오른 그를 보며 희망을 가져도 되냐고, 조용히 묻고 싶어진다.

 

 

1.gif

 

 

 

 

웹툰가이드 인기글

추천

여기부터 저기까지 내 색으로 물들이는 과정 : <스피릿 핑거스>
뚜뚜 | 2016-12-26
나를 배고프게 하는 <오무라이스 잼잼>
망구몽구 | 2016-12-26
사람때문에 소름돋는 웹툰 <기기괴괴>
시을 | 2016-12-26
말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안다면? <좋아하면 울리는>
망구몽구 | 2016-12-23
아주 일상적인 그리고 투쟁적인 : <참치와 돌고래>
뚜뚜 | 2016-12-22
돌아온 <일진의 크기> - 어택
패스좀해 | 2016-12-22
열정은 넘치는데 호구처럼 일해야 하나요? <열정호구>
시을 | 2016-12-21
[BL] 집착과 의존의 실타래, <아무런 말도 없이>
찹쌀떡 | 2016-12-21
스파이더맨 백 인 블랙
김봉석 | 2016-12-21
슬픔이 기쁨에게 - 혼자를 기르는 법
므르므즈 | 2016-12-20
아브라카다브라 하쿠나마타타 <아수라발발타>
패스좀해 | 2016-12-20
가벼움을 내리누르는 진중함 - 매지컬 고삼즈
므르므즈 | 2016-12-19
헬레니즘(?)웹툰 <트리니티 원더>
패스좀해 | 2016-12-19
지뢰진(地雷震)
툰가 10호 | 2016-12-16
11분의 1(じゅういちぶんのいち) - 1권
툰가 10호 | 2016-12-16
러프(ラフ)
툰가 10호 | 2016-12-16
만화와 시뮬레이션은 무엇이 다른가 - 러브 슬립
므르므즈 | 2016-12-16
가공된 민담의 멋 - 아스타드 왕립 유랑극단
므르므즈 | 2016-12-15
참치의 돌고래 사랑은 이루어질까? <참치와 돌고래>
시을 | 2016-12-15
소용돌이(うずまき)
툰가 10호 | 2016-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