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와해 된 시선 - 가장 안온한 곳에서 닥쳐오는 위협

경리단 | 2015-11-03 23:34

 

‘공포’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낯설고, 갑작스러우며, 기괴한 존재들, 이를 테면 귀신이나 연쇄살인마, 괴물 따위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것은 무지(無知)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위험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본능이지만, 어쩌면 진정한 공포는 우리의 일상 속,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우 드문 경우이기 때문에 간과하기 쉽지만, 사람들은 가장 친숙하고 편안해야 할 장소나 인물이 자신에게 적대적일 때 단순한 괴로움을 넘어 공포를 느낀다. 이유 없는 적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 나를 보호하고 편을 들어줄 몇 안 되는 이들마저 등을 돌린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공포도 없을 것이다.

 

‘가정’에서 배척받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집은 단순히 잠을 자고 생활하는 공간이 아닌 안심하고 편히 쉴 수 있는 터전이며, 피로 이어져 있는 가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최고의 우군이었다. 그런 가정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마음 놓을 수 없으며, 심지어는 위험을 느낀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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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와해 된 시선’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 작품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주인공 ‘다혜’와 ‘다운’의 가정은 분명히 정상이 아니다. 가정마다 나름의 규칙이 있고, 가족 간의 관계도 천차만별이라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할 수 없다지만, 다혜의 집은 확실히 정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부모도 사람이기 때문에 정이 더 가는 자식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테지만, 다혜네 부모의 다운 편애는 병적인 수준에 가깝다.

 

대학생이었던(것으로 추정되는) 다운은 올 F의 처참한 성적을 받고, 급기야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백수 신분으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놀고먹으며 게임기나 두들기고, 누나의 지갑에 손을 대서 돈을 훔쳐가는 인생 막장이다. 부모는 그런 다운을 비난하기는 커녕 끼고 돌고 있다. 한창 젊은 때의 사내 녀석이 공부도, 직장도, 하다못해 집안일도 돕지 않고 놀자판을 벌이는 데 ‘남자는 기죽으면 안 된다’며 용돈을 쥐어주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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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누나인 ‘다혜’는 휴학 이후 알바까지 꼬박꼬박 다니고 있지만, 별다른 이유도 없이 언제나 구박을 당하며, 집안일을 비롯해서 각종 잔심부름은 언제나 그녀의 몫이다. 명백히 다운에게 잘못이 있는 다툼에서도 언제나 부모는 다운을 응호한다. 다혜는 분노하지만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상 독립할 날을 기다리며 속을 삭일뿐이다.

 

단지 막장 남동생과 그런 남동생을 무작정 편드는 부모만으로도 끔찍하지만, 더욱 심각한 점은 다운이 사회적 잉여를 넘어서 정신병, 그것도 다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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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으로 벽을 칠하고 기괴한 그림을 도배하는 것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우연히 목격한 다운의 컴퓨터에는 도저히 정상이라고 간주할 수 없는 누나에 대한 성적 욕구와 그로테스크한 저주로 가득 차 있다. 문이 잠겨있는 바람에 창문을 통해 방 안을 살펴본 친척과 눈이 마주치는 데도 다운은 자위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간단한 정신 감정에서는 심각한 장애가 의심되는 결과가 튀어나오고, 언젠가는 잠든 척하는 다혜를 한참 동안 내려다 보다 말없이 밖으로 나간다.

 

누가 봐도 다운은 명백한 정신적 장애 내지는 질병을 앓고 있지만, 부모는 절대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이 비틀린 관계가 ‘가정’에서 발생하는 데 있다. 사회적으로 최소의 단위이자, 경제적으로 종속된 부모 자식 사이에 있어 막대한 권력을 지닌 부모가 나서지 않으면, 다혜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부모가 노골적으로 다운을 보호하는 이상 다혜의 저항은 무의미하다. 달리 말하면 남동생의 인생 따위야 어떻게 되든 누나인 다혜는 무시하면 그만이겠지만, 다운의 언행은 갈수록 과감해지고, 같은 지붕 아래에서 먹고 자는 이상 다운이 금기를 범할 의지만 있다면 다혜는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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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해 된 시선’은 불과 10화 남짓밖에 연재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작으로, 짧은 초반 분량에도 독자들을 강하게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역시 ‘현실적이고 일상과 밀접한 공포’에 있다. 다운과 다혜, 남매와 부모, 이 가족관계는 분명 겉으로는 그럭저럭 평온한 일상이 유지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속은 곪을 대로 곪아 있다. 부모는 한 자식을 병적으로 편애하고, 편애받고 있는 다운은 어쩌면 그런 비뚤어진 사랑으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다른 가족들을 위협하고 있으며, 소외된 다혜는 자신의 가정에 혐오감을 느낀다. 무력하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더욱 잔인할 파국은 시시각각 다혜를 조여 온다.

 

다혜는 명백하게 적대적인 존재와 동거하고 있는 꼴이지만, ‘돈’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장애로 인해 함부로 몸을 피할 수 없다. 그나마 집 밖, 동성의 친구와 알바하는 가게의 동료 등 다른 지인들을 통해 사회적 교류를 이어가며, 정신적 안정을 느끼지만, 집안에 도사리고 있는 검은 아가리는 그저 외면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다혜의 입장에서는 지금 상태만으로도 이미 최악이지만, 상황은 악화되기만 할 뿐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다혜가 겪고 있는 참을 수 없는 부당한 처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생활하며 어떻게든 더 나은 삶을 모색하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독자들은 자연히 이 모래 위의 성과 같은 불안한 일상이나마 유지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많은 이야기들은 그런 바람과는 정반대로 나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개가 더욱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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