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비굴해도 괜찮아 - 찌질한 일상을 긍정하다

누자비어스 | 2016-08-04 04:36

 

 

 

참으로 적나라한 제목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쁜 의미만은 아니다. 내용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제목이 어떤가 하면, 이상적인 셈이니까 말이다. 웹툰 ‘비굴해도 괜찮아’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보태자면, 더 정확한 제목은 ‘비굴하지 않아’ 정도가 아니었을지.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사실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만화는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평범한 ‘서민’이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할까. 여기서 서민은 언론이나 일부 사람들이 자기 좋을 때만 써먹는 레토릭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제법 엄밀하게 분류한 계층으로서의 서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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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어떠한 계층인가 하니, 하루 세 끼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고, 여행을 가고 싶을 때면 허리띠를 졸라매면 그럭저럭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트에서는 할인 식품에 먼저 눈이 가고, 돈을 버는 식구들 중에 한 명이라도 손을 놓아버리면 생계가 당장 곤란해질 터였다. 말하자면 당장 오늘 먹고 살 것부터 걱정하는 극빈층이나, 충분한 재산과 소득이 보장되는 중산층, 굳이 뼈 빠지게 일 안해도 먹고사는 고소득층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속세의 풍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다. 

 

주인공 고씨네 가족이 바로 대표적인 서민들이다. 물론 어머니를 비롯해서 - 아버지가 놈팽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아쉽지만! - 첫째, 둘째, 나중에는 막내인 주인공까지 직업 전선에 뛰어들게 되니까, 네 식구 중에 무려 세 명이 근로자인 것이다. 가정 살림도 ‘규모의 경제’에 의거하여 네 명이 같이 살면서 셋이 일을 하면 기본적인 의식주가 쪼들리지는 않겠지만, 작중에서 묘사되는 생활과 변변찮은 직장을 살펴보면 넉넉하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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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고찬’은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으로, 본인이 직접 언급했다시피 ‘문과에 학점도 별로고 딱히 특기도 없는’ 이 시대의 잉여 고학력자(?)의 대표격이다. 여자 친구도 없고 언제 제대로 된 직장을 잡을지도 알 수 없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성실한 가족들 덕분에 밥 굶을 걱정은 거의 없다는 점일까. 밥을 차려주는 것만으로도 용돈 내지는 월급을 줄 수 있는 가족들의 존재는, 든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형 ‘고산’과 누님 ‘고소미’는 직장인이다. 고산은 좋은 대학의 경제학과 재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유수의 금융회사 인턴으로 있다. 인턴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드러내고 있으며, 집에서도 위세가 대단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의 얘기다.

 

누나 고소미는 일단 정식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함부로 직원의 사생활을 캐는 꼴을 보아 영 정상적인 일터는 아닌 것 같다. 하여튼 소미는 가장 빨리 경제적으로 독립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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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김미륜’ 여사와 아버지 ‘고철’씨로 말할 것 같으면, 가정의 기둥이었어야 할 아버지는 하루 종일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술만 먹고 다니는 전형적인 막장이고, 김미륜 여사는 고철 대신에 부동산 중개소를 운영하며 실질적으로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물론 고철은 집안에서 가장의 권위는 커녕 웬수 취급을 받고 있지만, 술에 취해 머리가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인지 태생이 뻔뻔한 것인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만화는 아니다. 줄거리는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구구절절 설명한 네 식구의 일상 정도일까. 쭉 훑어보면 알겠지만 넷 중 어느 누구도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와는 거리가 멀다. 자연히 온갖 사적이고, 지저분하며, 때로는 다른 누군가의 온전한 악의로 인해, 혹은 스스로의 어리석은 실수에 의해 곤란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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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해도 괜찮아’는 그런 고씨 식구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고 해학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짜증나는 상황이 닥쳐올 때 주인공 찬이 독백처럼 내뱉는 말들이나, 가족들이 주고 받는 대화들은 현실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겪고 있을 고된 생활을 풍자한다. 다소 예스러운 코믹만화를 보는 듯한 그림체와, 그에 걸맞은 일상의 유머까지. 지금 나의 하루가 너무 고되다고 생각한다면, 한 번 크게 웃을 목적으로 책장을 넘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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