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계태엽 - 찰나의 시간, 그것은 커다란 기회

비오는밤에 | 2016-06-23 01:07

 

 

 

시간과 죽음만큼 절대적인 개념도 없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죽은 사람은 살려낼 수 없다.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 있는 초월자가 아닌 이상에야 그렇다. 사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죽음과 시간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이다.

미치광이가 아닌 이상에야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어찌할 수 있는 한계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나간 시간과 죽은 누군가를 보며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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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시계태엽’ 에 등장하는 사연의 주인공들은 이미 흘러간 시간과 예정된, 혹은 불시에 찾아온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다. 시간은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떤 감정을 느끼든, 사정이 어떻든 간에 도도히 흘러간다. 죽음은 때로 통제를 벗어나 불청객처럼 사람들을 찾는다.

불가항적인 죽음은 언제든 들이닥칠 수 있다.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어머니를, 죄 지은 어머니를 마침내 용서하고 다시 만난 그 순간에, 어처구니없는 그리고 무의미한 죽음이 찾아와도,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이의 생명을 대가로 자신이 살아났을 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죽음과 시간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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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 은 만화에서 후회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남자이다. 그의 언급에 따르면 수백 년을 잠들어 있었다고 하니, 평범한 인간은 절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시온은 그가 누차 언급하듯 신이 아니다. 신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은 절대 막을 수 없고, 다만 시간을 약간 되돌릴 뿐이다. 최소한의 개입이 가능한, 그러나 여전히 죽음 앞에 무능한 그는 자신에게 질려 매우 긴 시간 잠들었지만, 죽음의 문턱에서도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걱정하는 한 남자에 의해 잠에서 깨어난다.

 

시온은 절망하는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며 자조적으로 얘기하지만, 질긴 인연에 의해 거두어 같이 살게 된 ‘해리’ 의 종용에 결국 시간을 되돌린다. 물론 죽을 운명에 처한 이를 살리지는 못한다. 죽음은 심지어 극적으로 형태를 바꾸면서까지 본업을 완수한다. 다만 그는 어떤 기회를 한 번 더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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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가는 사람이 남아있는 사람과 함께, 혹은 남은 사람이 가려는 사람과 함께 매듭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아마도 마지막을 보고 있는 사람한테는 그의 삶에 대한 긍정이, 다른 이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사람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이 필요할 것이다.

완전한 끝, 삶의 종결 앞에서 어떤 기회가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모든 것의 끝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해피 엔딩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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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상당히 고전적인 순정만화풍의 그림체이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잔혹동화라고 부를 수도 있을 테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이 녹록치 않아 이를 잔혹동화라고 하기엔 망설여진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압도적인 절망 앞에, 마지막 인사라도 건넬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주어진 현실에 끝없이 충실하며 이를 대비하기엔 우리는 정신적으로 너무 나약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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