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봄, 가을 - 봄이 가면 가을이 온다

비오는밤에 | 2016-09-20 22:13

 

 

 

학창 시절에는 한 번쯤 신기하다고 생각할 만한 ‘사건’이나 ‘현상’들이 일어나고는 한다. 원리구실을 따져보면 사실 별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나중에 다 자라 어른이 되면,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지, 다시 한 번 그때의 감각을 경험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웹툰 ‘봄, 가을’은 90년대 중반의 여름을 배경으로, 한여름에 노랗게 단풍이 든 은행나무와 함께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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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입시와 조금 떨어져 여유가 있는 고등학생 ‘이봄’. 99년의 지구 멸망을 기다리는지, 아니면 두려워하는지, 몇 번씩 미스터리 서적을 탐독하며 밤을 지새우기 일쑤인 다소 독특한 성격을 가진 여고생이다.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하루. 등굣길에 봄은 우연히 그 모습을 보게 된다. ‘한가을’. 그녀와 묘한 한 쌍을 이루는 이름의, 키가 작은 남자아이다. 가을이 손으로 만지고 있던 은행나무는 더운 계절이 무색하게 노랗게 물들고, 코스모스가 피어나며, 가끔식은 몸 주위에 새파란 빛이 감돈다.(혹은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호기심 많은 봄은 자연스럽게 가을에게 강한 흥미를 느끼게 되고, 학교에서 친한 (남자사람)친구인 ‘한결’과 가을의 인연을 듣고 더더욱 관심을 갖는다. 한결과 가을은 더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알던 사이였는데, 한결이 치명적인 사고를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가을이 그를 구하는 대신 ‘죽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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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이 죽었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 사고가 너무나도 치명적이었기 때문에, 비록 -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 죽음을 직면할 용기가 없어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을은 스스로 밝히기를 몇 년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년 격차를 줄여 한결과 같은 학년, 학교에 오게 된 것이었다.

 

봄은 어떻게든 가을에 대해 알아내고, 또 친해지려고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가을의 반응은 까칠하기만 하다. 보이지 않는 높은 벽을 두른 듯,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결을 제외하면 어떤 관심에도 거부 반응을 보일 뿐이다. 민망하기 짝이 없는 퇴짜를 몇 번이고 당하면 누구나 질려서 관심을 끊기 마련이지만, 이 속 좋은 여학생은 포기를 모른다. 퇴짜를 맞은 만큼 다시 들이대고, 마침내 등하굣길을 같이 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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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가을’에서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사실 그리 특별하지 않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90년대 중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화자 되는 시대. 지금으로부터 벌써 강산이 두 번 바뀌었을 과거이지만, 학생들의 모습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은근히 뇌물(촌지)를 요구하는 교사를 보고 있노라면, 통념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사회가 발전한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듯하다.

 

공부, 입시, 진로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는 혼란스러운 시기. 가을은 방황하는 여느 학생들처럼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결은 다소 바보 같은 이유로 농구에 빠져 밥 먹고 하는 일이라고는 농구밖에 없는 것 같다. 다소 불안정하지만 동시에 평온한 학생들 사이에 끼어든 가을이라는 기이한 존재.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떠들고, 과거는 여전히 모호하며, 가끔 이유 없이 깊은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등 사고 이후 몇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불안정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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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는 조금 덜 할지 몰라도, 마찬가지로 불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봄과 한결은 자연스럽게 그런 가을을 받아들인다. 물론 가을이 끼어든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여전히 시험에 치이고, 못된 교사에게 시달리며, 매번 잔소리를 듣지만, 거의 모든 학생, 청소년들의 삶이 대체로 그렇지 않겠는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을의 존재쯤은 큰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가을은 그들의 친구가 되고, 어떨 때는 ‘신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은 계속된다. 봄이 가면 가을이 오고, 다시 가을이 가면 봄이 오듯, 작은 위기를 지나,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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