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붉은 여우 - 살아있는 재앙(災殃)의 사랑을 받는 소녀

지나가던사람 | 2016-07-25 18:39

 

 

 

만화를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음울한 색감이다. 검정과 빨강, 그리고 약간의 살색. 단 세 가지 종류의 채색과 명도의 차이만으로 표현되는 색감은 어두운 감각과 퇴폐적인 미(美)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거의 모든 인물들이 공유하는 외향적 특징인 날카로운 콧날과 뾰족한 얼굴선은, 익숙하지 않을 때는 인물 구분이 힘들고 어색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작품 안에 녹아들고 있다.

 

웹툰 ‘붉은 여우’에는 제목에서처럼 사람들로부터 ‘붉은 여우’라 이름 지어진 ‘무언가‘가 등장한다. 그, 혹은 그녀는 이 이야기의 중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는 법이 없다. 명백한 인외(人外)의 존재는 어떤 생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태풍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에 가깝다. 웹툰 ’붉은 여우‘ 여우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한 소녀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에서부터 소녀가 벗어나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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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 그녀는 공주이다. 우리도 현실에서 가끔씩 접할 수 있는, 마치 모든 이에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 눈부신 소녀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고, 이른 죽음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났고, 그 대가인지 아니면 운명이었는지 선대(先代)로부터 이어진 악연으로 붉은 여우에게 사로잡힌 불행한 소녀이기도 하다.

 

사나에게 사랑, 혹은 저주를 퍼붓는 ‘붉은 여우’는 말 그대로 재앙이다. 그, 그녀는 영원을 살아가며, 몇 십 년, 혹은 몇 백 년에 한 번씩 눈을 뜨고 인간을 살해한다. 붉은 여우에게서 합리나 이성을 찾는 것은 지극히 무의미하다. 적어도 인간의 기준에 의해서는 말이다. 그는 보통 무력한 인간의 목숨을 말없이 거둬가지만, 가끔씩 변덕스럽게 일종의 ‘선택지’를 주곤 한다.

 

공주 ‘사나’의 어머니 ‘소이나’,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도 그런 드문 경우 중 하나였다. 붉은 여우의 모습을 목격했을 때, 그녀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지만, 뱃속에 품고 있던 아이의 존재는 여우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불운인지 행운인지 모를 일련의 과정을 걸쳐, 모녀는 목숨을 부지하지만 그 대가로 붉은 여우는 그 핏줄을 집요하게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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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숨기고 있던 붉은 여우는 스스로 취한 위장에 의해 ‘사나’와의 관계가 한계에 달하자, 마침내 가면을 벗어던지고, 사나가 자라는 동안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을 가감 없이 쏟아낸다. 그러나 영원을 살아가며 인간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여우와, 어려서부터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또 모두를 사랑하며 자라온 사나의 간극은 결코 메울 수 없는 것이었다.

 

흔히 로맨스를 다룬 매체에서 등장하는, 자비로운 초월적 존재와 인간 사이의 낭만적인 연애는 이 만화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기적적으로 사악한 괴물을 무찌르는 용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붉은 여우는 인간에게 있어 재앙이다.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집채만 한 해일이나 대지를 두 조각내는 지진을 어찌할 수 없듯, 붉은 여우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 그, 그녀가 마음을 먹으면, 그것은 거의 대부분 이루어진다. 여우가 이해도, 공감도 하지 못하는 ‘인간의 감정’을 제외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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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다른 모든 인간, 그리고 여우가 사랑한 사나가 바라보는 세계는 너무나도 달라서, 사나가 여우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고, 여우도 그런 사나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여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살인을 비롯한 폭압적인 행위는 사나에게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히지만, 여우는 그 사실을 이해도, 공감도 하지 못한다. 그저 사나에게 자신만의 사랑을 강요할 뿐. 당연히도, 사나는 붉은 여우를 저주하고 증오하지만, 단지 손짓 한 번으로 주변의 모든 인간을 몰살시킬 수 있는 그의 능력을 두려워하여 복종한다.

 

사나와 붉은 여우는 끝없이 갈등하고 있을 뿐,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전혀 맞지 않은 연인 같기도 하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명백하다. 비극은 일방적으로 여우의 눈에 들어온 사나에게 집중되어 있다. 매우 부당한 일이지만, 사나가 처한 현실이 그렇다. 혹은, 여우라는 재앙을 가둬두기 위해 보잘 것 없는 소녀 하나쯤은 얼마든지 희생시킬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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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재앙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는 소녀. 힘의 차이는 잠시 간에 소녀를 묶어두지만, 다른 모든 사람이 그렇듯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나 또한 가만히만 있지는 않는다. 물론 그녀는 여우를 강제할 능력이 없지만, 몇 번쯤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여우가 스스로 제 발을 묶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끔찍한 형태의 애정과 일방적인 희생이 교차하는 지점에, 언제나 붉은 눈동자의 소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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