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산책 - 잠에서 깨어난 우리들의 공주님

박성원 | 2016-06-01 10:32

 

 

 

제목을 참 잘 지은 것 같아요. 내용과 직접적인 상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이 만화를 읽고 나니 정말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산책을 하고 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산책의 끝이 좀 미묘하긴 했지만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꽤 기묘한 곳입니다. 전형적인 시골의 작은 도시라고 할까요. 마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고요. 그런데 보통의 시골에는 볼 수 없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마 작중에서 제법 규모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기업이 이곳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거든요. 이 투자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기업의 투자가 아니에요. 그럴만한 입지도 안 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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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총수쯤 되는 양반의 딸이 있는데, 이 딸내미가 아주 오랫동안 의식 불명이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산 좋고 물 좋은(아마도?) 촌동네에 커다란 저택을 마련해서 요양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전문 의료진이 같이 온 것은 당연하지요. 그게 벌써 10년 가까이 된 일이랍니다. 한편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 딸이 ‘잠들어 있는’ 동네에 애착이 생긴 건지 그냥 변덕이었는지 이 기업집단은 마을에도 적잖은 공적 투자를 베푼 모양이에요. 사유지를 개방해서 아이들이 쉴 수 있게 한다든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마을 사람들이 애착을 가지는 정도를 보면 그 외에도 다양한 것으로 짐작되지요.

 

워낙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마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저택’과 ‘공주님’의 영향을 받고 있지요. 여기서 공주님은 깨어나지 않는 딸의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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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바로 그 ‘공주님’이 오랜 시간 끝에 기적적으로 눈을 뜨면서 시작됩니다. 무슨 대단한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에요. 너무 오래되어서 처음의 감정과 열정이 무뎌진 일들은 깜짝 선물처럼 이루어져도 대단치 않은 법이거든요. 한편으로 비슷한 시기에 서울로 갔던 주인공 ‘순조’가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고향에는 여동생 ‘윤조’가 살고 있고요.

 

이 두 남매는 불행하지만 그렇게까지 비극적인 인물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실이기도 하고, 본인들의 인식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지. 순조와 윤조는 여느 마을 아이들처럼 ‘공주님’에 대해 생각하며 자랐는데 둘의 아버지는 저택을 소유한 기업에서 일했었습니다. 그리고 둘이 다 자라기도 전에 어떤 불행한 - 기업의 행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 사건으로 자살해 버리고, 아이들은 이제 어른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남겨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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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의 상황은 아주 위태로운데, 갑자기 나타나 둘을 후원하겠다고 자처한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로 아버지의 친구인지 뭔지는 알 수 없어요. 남매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하니까요. 어쨌든 간에 그 친구 덕분에 입에 풀칠은 하고 살지만, 언젠가부터 남매의 집에 드나들기 시작하더니 아예 짐을 풀고 그곳에서 살기 시작합니다. 순조와 윤조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언제나 그렇듯 현실을 지배하는 가장 큰 문제는 ‘돈’입니다. 돈이 없으니 불안한 상황에서도 남매는 ‘(자칭)아버지의 친구’의 알 수 없는 호의를 뿌리치지 못하지요. 순조는 공부까지 잠시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내려오지만 특별한 해결책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작중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여동생과 투닥거리거나 이상한 말을 늘어놓는 정도가 전부라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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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는 ‘공주님’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엉뚱한 소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공주님을 유괴해서 돈을 요구한다나요. 이것은 부분적으로 복수이기도 하고 현실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과연 유괴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동네방네 내가 곧 공주님을 유괴하겠소 하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마 쉬울 것 같지는 않아요.

 

결말은 다소 애매한 편입니다. 작가가 뭘 의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상 깊은 끝을 원했다면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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