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죽음과 함께 시작된 13번의 새로운 삶, '이제 곧 죽습니다.'
박은구
| 2019-07-18 13:43
최근 네이버에는 수많은 신작 웹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퀄리티가 굉장히 높은 웹툰들도 존재하고,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작품들도 존재한다. 사람마다 취향이 갈리기에 제각기 다른 평가를 받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이 작품은 필자에 취향은 확실히 저격한 작품이다.
<한 남성이 건물 옥상에서 모든 걸 포기한 얼굴로 중얼거리고 있다.>
<주인공의 이름은 최이재 31세, 백수이다.>
첫 장면부터 어떤 남성이 대한민국의 자살율에 대해서 얘기하더니 자신이 자살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 건물에 옥상 위에서. 그의 이름은 최이재 성별은 남성 나이는 31세, 백수이다. 대학 졸업하고 5년 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즉, 아직도 취준생이고 다른 말로 하면 백수이다. 자신이 주관적으로 평가해도 답 없는 쓰레기이다. 자신조차도 쓰레기라고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돈 없는 백수임에도 불구하고 기껏 얻은 돈을 주식에다 꼬라박는 짓거리를 하는 걸 보면 답이 없긴하다. 돈도 없으면서 월세는 밀려서 내지도 못하는데 주식은 어디서 얻은 돈으로 하는 것인지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대학교 시절부터 사귀기 시작했던 여자친구가 있던 주인공,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연애를 이어갔지만 그보다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던 여자친구는 졸업과 동시에 바로 취업에 성공했고, 반대로 주인공은 계속해서 취업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여자친구는 계속 주인공을 믿고 기다려주었으나 그것도 딱 세 달전까지였다. 전혀 바뀐 게 없이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에게 환멸감을 느낀 여자 주인공은 바로 이별을 통보한다. 그것이 서로의 청춘을 바친 6년 연애의 종지부였다.
이와중에도 주인공은 술 쳐먹고 전 여자친구에게 전화해 하소연을 해댄다. 역겨움의 극치,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주인공. 여자 주인공은 팩트로 주인공을 후두려패버리고 엎친 데 덮친 격 면접 봤던 회사에서 불합격 메세지가 오자 그걸 확인하며 자살을 결심한다. 유서에 내용도 가관이다. 오로지 비관, 비관 세상을 비관하는 내용 밖에 없다.
<결국 자살을 한다.>
유서의 내용은 이렇다. "x까라. 다x까라.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회사에서도 떨어졌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난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x나 깔끔하고 쿨하게.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라고 하는 멍청한 x발새x들 살 용기가 없으니 죽는 사람한테 그딴 x같은 소리 지껄이지 마라. 나는 이렇게 죽는 것보다 계속 사는 것이 더 무섭다. 아무것도 바뀔 희망이 없는 이딴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통뿐이니까. 죽음은 그저 그런 내 고통을 끝내줄 하찮은 도구일 뿐이다. 내 생각대로 사는 건 실패했지만, 죽는 건 내 x대로 할 거다. 난 내 죽음을 온전히 통제할 것이다. " 상당히 중 2병적인 유서라고 생각한다.
<결국 죽음을 선택한 최이재>
<그러나 갑자기 눈을 뜬 자신을 보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눈을 떠보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최이재, 어떻게 된 것일까.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유서를 인용하며 잘 읽었다고 말한다.
"죽음은 그저그런 내 고통을 끊어줄 하찮은 도구일 뿐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적응이 되지 않은 최이재는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에게 누구냐고 물어본다. 그런 최이재에게 자신의 명함이라고 카드를 건네주는데 그 카드에는 죽음이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다. 그 혹은 그녀의 정체는 바로 죽음이었던 것이다. 죽음의 신인지, 죽음을 다루는 신인지, 혹은 죽음 그 자체 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어떠한 초월적인 존재였고 죽음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최이재는 그런 죽음을 깔 보았고 그로 인해 죽음은 분노했다. 인간인 주제에 자신을 이렇게까지 화나게 한 것은 최이재가 처음이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죽음을 가볍게 여긴 최이재는 벌을 받게 된다. 죽음을 하찮은 도구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최이재는 앞으로 13번의 각기 다른 죽음을 겪게 되고, 한 번 죽을 때마다 다시 곧 죽음을 겪을 다른 사람의 몸으로 깨어난다. 어떤 몸에서 깨어나든 무조건 죽는다. 그러나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그대로 살아갈 수도 있다. 그렇게 지금 다시 되살아난 존재의 삶에 대해서 설명해주는데 현재 최이재가 사용하는 육체의 주인은 해외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 탄 성공한 사업가이다.억 소리가 나는 명품들을 온몸에 두르고 있다. 멍청한 최이재는 이런 인생이면 살아볼만 하겠다고 좋아한다. 죽음을 피할 수 있으면 이 육체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되도 안되는 희망을 품고, 그런 최이재를 바라보며 죽음은 다시 한 번 인간에 대해서 재평가한다.
이미 내가 죽을 것이라는 걸 알고 죽는 것만큼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없다는 뜻일까. 첫번째 삶의 사업가로서 살아보려 했던 최이재는 결국 비행기 사고로 다시 죽게 되고, 다시 죽음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 죽음은 아직 11번의 죽음을 더 겪어야 한다고 말하며 하지만 네가 무조건 살아남는 엔딩은 존재하니까 네가 노력하기 나름이라는 조언을 해준다. 그렇게 두번 째 삶을 시작하지만 그 삶은 한 조직의 배신자로서의 삶이었고, 눈을 뜬 그 순간은 이미 배신자로서 처형당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불가항력에 가까운 상황으로서 도저히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두번째 삶도 막을 내리고 세번째 삶을 살게 된다. 여기까지가 전반적인 이야기이고, 아마 죽음을 무시한 징벌로서 각기 다른 죽음을 통해서 삶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될지 사실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엄청난 잠재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 작품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