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레시피 하나는 끝장나는 <공작부인의 50가지 티 레시피>

심지하 | 2019-10-1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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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 하나는 끝장나는 <공작부인의 50가지 티 레시피>

웹툰화 된 로맨스 판타지가 넘쳐나는 요즈음, 그 중에서도 나름대로 <전문성>을 앞세워 인기몰이중인 <공작부인의 50가지 티 레시피>를 소개해본다. 동명의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둔 이 웹툰은 Ant studio의 유려한 작화와 원작의 '차 덕질'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웹툰이다.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차 는 부릉부릉 자동차car가 아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티타임의 그 차te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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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소설 표지. 주인공인 클로에와 남편 알폰스.>


카카오 페이지에서 연재중인 이 작품의 내용은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줄곧 남의 눈치만 보며 살아가던 한국인 박하정. 그녀는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만큼 주위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 동료들이 하지 않는 궂은 일도 전부 도맡아 하고, 그러다보니 야근은 당연한데다 열심히 일한 보람도 없이 공적도 승진도 자꾸만 밀린다.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못하고 묵묵히 일만하던 그녀는 결국 모두가 기피하던 프로젝트를 떠맡게 되고, 프로젝트는 회사에 어마어마한 손해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그로 인해 결국 회사에서 잘리게 된 박하정. 사직서를 내던 날 술을 마시며 '이제 더는 남의 눈치 따위 보면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박하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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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몸, 클로에 바텐바르크 공작 부인.


모두 예상했듯 눈을 뜨니 낯선 세계에서 다른 사람의 몸으로 눈뜨게 된다. 여기까지는 흔히들 알고 있는 빙의물의 도입부와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작부인의 50가지 티 레시피>를 다른 빙의물과 다르게 만드는가? 그건 바로 작가의 덕력이다.


21세기 한국인이었던 박하정보다 훨씬 풍요롭고 부유한 삶을 살아야 마땅한 공작부인 <클로에 바텐베르크 공작부인>은 놀랍게도 하녀들과 시종들에게 외면받고, 귀족사회에서도 왕따당하는 처참한 신세의 여자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지만 박하정보다 스무 배는 더 남의 눈치를 보고, 남에게 미움바독 싶지 않아 하는 클로에. 그러나 주눅 든 어깨는 아무리 예의범절을 받아도 교정되지 않고, 웅얼웅얼 혼자 중얼거리는듯한 말투는 사교계에서 늘 비웃음을 당하기 일쑤였다. 자아가 없는 사람처럼 취향도 패션도 그저 유행을 좇기에 급급했던 클로에.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자신감도 자존감도 없으면서 그저 나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하는 모순된 행동탓에 비웃음과 미움만 샀던 클로에는 타고난 매력을 하나도 써보지 못한 채 자라왔다. 

대부분 빙의물이 그렇듯 주인공은 과거처럼 살지 않겠다며 새로운 인물의 몸으로 인생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한다. 싫은 소리 한 번 못하던 몸으로 자신을 기만하던 하녀장의 뺨을 때리며 경고한다던가, 이전처럼 '차'덕질을 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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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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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정의 삶에서 진심으로 좋아했던 딱 하나, 바로 차. 차를 위해 클로에의 몸을 쓴 박하정은 그렇게 어려워하던 남편, 알폰스 바텐베르크 공작과 대화도 트게 되고, 사교활동도 나서게 된다. 전생의 덕질이 현생에 도움이 되는 흐뭇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이 그렇듯 작가님 역시 상당한 차 덕후인듯 작중 나오는 차 레시피는 차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번 쯤 차를 마셔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음식만화가 아닌 차tea만화를 보며 이렇게 입맛을 돋구게 만드는 작화 역시 훌륭하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로맨스 판타지 입문작으로 추천할만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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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클로에가 두려워하던 남편, 알폰스 바텐베르크 공작.

다만……본래 되도록이면 리뷰에는 좋은 점만을 기재하고자 하나 안타까운 점들이 몇몇 있어 이를 짧게나마 적어본다.

첫번째, 작품 외적인 문제이다. 리뷰를 작성하며 <공작부인의 50가지 티레시피>를 검색한 결과 웹툰과 원작소설 리뷰 이외에 다양한 불법사이트 링크가 떴다. 참혹한 일이다. 구글 이미지 상에 뜬 이미지 중 불법 웹툰 사이트의 이미지가 상당부분 존재했다. 웹툰 시장은 물론 문화컨텐츠시장의 해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공작부인의 50가지 티레시피>는 카카오 페이지에서 매주 토요일 연재중이다. 앞선 내용이 궁금하다면 원작 소설을 정당한 값을 치르고 읽거나, 마찬가지로 연재 예정편을 정당한 값을 치루고 공식 루트로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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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읽다 보면 종종 작품의 개연성에 의문이 든다. 스토리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로서 티 레시피가 등장하는 것이 아닌, 티 레시피를 위해 스토리가 진행된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특히 작품속 차에 대한 위치와 설정을 읽다보면 그렇다. 작중 클로에가 사는 제국에선 커피가 유행하며, 작품 속에서 차는 한미한 자들이나 먹는 '풀을 우려낸 액체'에 불과하다. 이때문에 클로에는 주위 사람들과 함께 차를 즐기고, 또 차를 유행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그런 것 치곤, 차가 너무 잘 나가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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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현대에 버금갈만큼 다양한 차 문화와 다기, 기구들. 모든 기술은 필요에 의해 발전하며, 문화는 수요 없이 발전하지 않는다. 차와 관련된 모든 것이 '수입'된 것이며 이는 '공작가의 엄청난 재력 덕분'이라고 한들 작중에서 차와 관련된 물건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는다. (차와 관련된 가게도 있고, 작중 한미한 가문인 포트넘 가문의 부부도 쉽게 차를 구한다.) 또한 모두가 주인공이 '뛰어난 기술로' 우려낸 차를 마시고 '이런 놀라운 맛이?!'라며 놀라는 부분은 어쩐지 과장된 90년대 요리만화를 떠올리게 한다. 분명 작중에서 등장하는 티 레시피들은 훌륭해보이지만 '너희가 모르는, 그러나 엄청나게 대단한 문물을 보여주마!'라는 모습에선 작위적인 기분조차 느껴진다. 21세기 지구에서 차와 커피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유럽풍 의상과 저택에서 사는 인물들이 커피를 선호하며 차를 '미개한' 것 취급하는 분위기를 어떤 의도에서 넣었는 지는 어림짐작할 수 있으나, 앞서 말한 불편한 연출과 맞물려 몰입을 깨게 만든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주변인과 환경을 하향시키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연출이나 좋은 연출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소설이 원작과 무조건 궤를 같이 한다는 보장은 없으니, 앞으로를 좀 더 기대하며 아직은 계속 읽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