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지갑 놓고 나왔다 - 일상툰인줄 알았지?
여기 이 웹툰을 한번 들여다보자. 사실 기존의 미적 기준과는 다소 거리가 멀기에 섬네일을 보면 이게 무슨 그림인가 싶어 궁금증에 클릭을 유도하게끔 만드는 이 그림.
아홉 살에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와
혼자 남겨진 채로 살아가는 엄마.
한 사람은 가야 할 곳으로 가고
한 사람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두 사람이 정말로 이별하는 이야기
“안녕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 잘 있어. 잘 있어 엄마”
이쯤 되면 독자들은 혼란에 빠지고 도대체 이 만화의 장르가 무엇이며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궁금해서라도 다음 편을 클릭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차츰 이 만화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가가 글을 풀어내가는 방식은 동화 같기도 하면서 몽환적이다. 대부분의 이 웹툰을 읽은 독자들이 공감하겠지만 예를 들어 잔인한 장면을 회상하는 부분에서 그런 장면 하나 없이 그 경험들이 주었던 공포나 끔찍하고 날카로운 느낌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줄 수 있다면 이미 이 웹툰은 웹툰이라는 틀을 벗어난 다른 예술 장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불편한 얘기를 담아내면서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것.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을 연상케 한다. 간간이 들어있는 농담들은 한숨을 돌릴 여지를 주지만 오히려 읽는 사람을 웃프게 만든다. 작가는 오히려 그저 덤덤하게 표현해 나갈 뿐..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친절하게 등장인물들에 대한 전후 사정 부연 설명까지 잊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기존 주인공과 대립관계에 있던 악당으로 비췄던 사람들에 대한 이해심을 높이고 더 나아가서는 이 작품에 악인은 하나도 없다는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게끔 만든다.
사실 역할에 대한 책임 - 엄마의 역할 - 딸의 역할을 서로 강요만 하는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것이 힘든 일이겠지만. 사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엄마로서 딸로서 가 아닌 인간 그 자체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작가는 시사하고 있음과 동시에 딸도 개인적인 욕구가 있는 한 인격체이고, 엄마도 개인적인 욕구가 있는 인격체일 뿐이라고..
‘우리 엄마는 나한테 왜 그래.’ ‘내 자식은 왜 저럴까.’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은 결국엔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지게 한다는 것을 ..
작가가 풀어내가는 방식이 너무 담담하기에 어쩌면 상황에 대해 객관적이 되면서도 그 무덤덤함에서 짙게 배어 나오는 슬픔이 더 배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이 웹툰 제목과 작가의 이름 또한 무덤덤하다.
지금까지의 웹툰 내용으로 추측해보자면 지갑 놓고 나온 것과 이 웹툰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작가의 이름 또한 왜 미역의 효능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은 작가의 쿨한 성격을 대변하면서도 기존 체제에 대한 조용한 도전으로까지 보인다. 그런데. 도대체 미역의 효능을 이름으로 쓸 만큼 중요한 일이 있었던 걸까. 개인적으로는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지만 작가님이 정말 미역을 좋아하시거나.. 아니면 그냥 작가님만의 센스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