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연재시작일: 2019.01.03
1. 작품 소개<br/><br/>“이혼해요, 우리.”<br/><br/>사랑 없는 정략결혼.<br/>결혼은 비즈니스일 뿐이라 생각했던 남자, 최무원.<br/>그런 그에게 이혼을 말한 여자, 이유래.<br/>3년이 지난,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br/>낯선 관계로 재회하는데…….<br/><br/><br/>“우리 연애할래요?”<br/><br/>아내가 돌아왔다.<br/>그런데 이 여자, 그가 알던 예전의 ‘그 여자’ 맞아?<br/>멈추었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br/>하필이면 돌아온 아내에게.<br/><br/><br/>2. 미리 보기<br/><br/>자극적이고 아찔한 꿈의 상대가 하필이면 이혼한 전처일 것은 뭔가. 아무리 속궁합이 좋았다고 해도, 세상이 멸망해서 여자가 딱 하나 남았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아니어야지. 자존심도 없냐?<br/>무원은 땀에 젖은 겉옷과 속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욕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을 머리부터 덮어쓰자 조금씩 이성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는 여느 때처럼 냉정하게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br/>답은 곧 나왔다. 파일로의 새 담당자라는 여자가 문제였다. 하필이면 전처와 같은 이름, 이유래.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도 아닐 터. 그런데도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고작 이름 세 글자에 동요하는 자신이 우습다.<br/>‘아니, 어쩌면 동요가 아니라 발정인가?’<br/>샤워를 하고 나자 잠이 싹 달아났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서 그대로 출근을 했다.<br/>집무실 책상에는 남 실장에게 지시했던 파일로와 A사의 계약 관련 서류가 놓여 있었다. 무원은 직접 진한 커피를 한 잔 내린 뒤, 파일로의 서류부터 꺼냈다.<br/>파일로. 미국 출신의 디자이너 로버트 파일로가 4년 전에 창립한 신생 SPA브랜드. Zara, H&M, 유니클로로 대변되는 1세대 SPA브랜드에서 고급화, 특성화 전략을 더한 차세대 브랜드로 남성복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중저가 라인인 데다가 실용성과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잡아낸 센스 덕에 미국 현지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빠르게 지점 수를 늘려가는 중이다.<br/>정상적으로 절차가 진행되었다면 성원백화점이 한국 1호 매장이 되었을 터였다. 사업 가치를 따지면 이대로 계약을 날리기엔 아까운 브랜드다. 영업부장이 계약해지를 두고 난감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무원은 첨부된 담당자의 명함을 꺼낸 뒤, 서류를 덮었다.<br/>하루 종일 바쁜 업무가 이어졌다. 다행히 문제가 된 언론기사를 대부분 차단하는 데 성공했고, 이어진 실무진 회의에서는 갑작스러운 계약해지로 리뉴얼에 들어가는 매장들의 대처방안에 대해 논의했다.<br/>세 시간에 걸친 긴 회의를 끝내고 집무실로 돌아가자, 남 실장이 뒤따라 들어왔다. 그는 무원이 자리를 비운 동안 받은 연락과 메모에 대해 브리핑했다.<br/>“J물산 전무께서 주말에 라운딩 스케줄이 괜찮으신지 묻는 전화가 왔었습니다. 경제지인 U저널에서 ‘이달의 경제인’으로 대표님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요청이 왔었고, 본가의 성 비서님께서 연락하셨습니다.”<br/>표정변화 없이 브리핑을 듣던 무원은 ‘성 비서’란 이름에 멈칫했다.<br/>본가의 성 비서, 성선희는 20년 넘게 아버지의 개인비서로 지내며 본가 살림을 맡아 하고 있었다. 세 번의 결혼과 한 번의 사별, 두 번의 이혼을 거친 아버지가 유일하게 오랜 세월 옆에 두는 여자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그녀와 무원의 관계는 애매하고 조심스러웠다.<br/>“본가에 무슨 일 있습니까?”<br/>“특별한 문제는 아니고 한번 들러주십사 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신다고.”<br/>얼굴 본 지 오래되었으니 한번 들르라는 말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 직접 해도 될 말을 꼭 성 비서를 통하는 게 아버지다웠다.<br/>그는 수면부족으로 뻑뻑한 눈가를 누르며 업무를 지시했다.<br/>“J물산 전무에게는 다음으로 미루자고 좋게 전하세요. U저널과는 이미 성원건설 시절에 인터뷰했으니 이번에는 거절하십시오.”<br/>“알겠습니다.”<br/>“그리고 파일로 담당자와 약속 잡았습니까?”<br/>“네. 이틀 뒤로 정했습니다.”<br/>“내일로 합시다. 시간 끌어 좋을 문제는 아니니까. 어차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그쪽 아닙니까?”<br/>메모를 하던 남 실장의 눈이 커졌다. 평소 급박하게 약속을 정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답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베테랑 비서답게 내색하지 않았다.<br/>“알겠습니다. 그럼 내일로 정하겠습니다.”<br/>“그 외에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br/>“오전에 임원회의가 있고 저녁에는 한경모직 한 회장님과 식사 약속이 있으십니다.”<br/>“한 회장님과의 약속 취소하십시오. 컨디션이 안 좋습니다.”<br/>남 실장의 눈이 더욱 커졌다. 지금까지 대표가 한경모직 한 회장과의 약속을 취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한 회장은 중요한 인물이었다. 성원백화점에 있어서나 무원 개인에게 있어서도. 남 실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갔다.<br/>무원은 따로 빼두었던 파일로 담당자의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정확히는 이유래라는 이름을.<br/>스스로 생각해도 좀 미친 것 같지만 빨리 확인하고 넘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어젯밤 같은 이상한 꿈을 꾸거나 며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게 뻔했다. 뚜렷한 원인 없이 며칠씩 잠 못 드는 날이 이어지는 것. 이혼한 뒤로 가끔 나타나는 증상이었다.<br/>평소보다 일찍 백화점을 나온 무원은 직접 차를 운전했다. 붐비는 도로, 정지신호에 멈춰 선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시계 안의 날짜로 향했다. 역시나.<br/>무관심한 아버지가 어쩐 일이신가 했더니 시간이 참 빠르다. 생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어머니의 기일이기도 했다.<br/>무원의 생모는 그를 낳다가 죽었다. 사인은 임신중독증. 세계적으로 매년 5만 명 이상의 산모가 사망하는 요인으로 알려진 질환이지만 남자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병이기도 했다.<br/>평생을 알 수 없는 병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무원의 아버지, 최중원 회장은 깊이 좌절했고 오래 방황했다. 두 번의 재혼을 하긴 했지만 성원그룹 내에서 불리한 제 입지를 보강하기 위한 비즈니스 차원이었고 자식도 두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무원은 결혼에 대해 어떤 기대감도 가지지 않았다.<br/>결혼을 결정한 것도 철저하게 사업적인 계산 때문이었다. 무원이 원한 것은 후계자 경쟁에 이득을 줄 수 있는 처가였다. 그런데 차고 넘치는 혼처 중에서 원하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상대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가 원하는 집안에서는 사촌형인 이원을 원했고, 그를 원하는 집안과는 수지타산이 안 맞았다. 회장 아들이지만 장손이 아니라는 불리한 조건과 큰어머니인 윤은미 여사의 방해공작 때문이었다.<br/>유일하게 이원이 아닌 무원에게 관심을 보인 곳이 유성물산이었다. 당시 유성물산은 금싸라기 땅이라 불리는 P지구에 재개발 사업권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적인 불황에 따른 경제상황 악화라는 직격탄을 맞은 건설업계에서 P지구는 황금의 땅 엘도라도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성원건설을 키우고 싶었던 무원에게는 딱 맞는 혼처였다.<br/>물론 딱 맞는 혼처가 그를 찾아온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자는 유성물산 이 회장이 본처인 성북동 사모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서 낳은 ‘혼외자’였다.<br/>중매쟁이가 이 혼담을 가져왔던 날, 윤 여사는 우리 집안을 뭘로 보냐며 펄펄 뛰었다. 무원은 개의치 않고 혼담을 진행시켰다. 윤 여사를 제대로 엿 먹이는 혼사라는 데 뿌듯했고, 결혼식을 세 번이나 한 아버지를 둔 마당에 남의 집 가정사에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br/>무엇보다 첫 만남에서 아내 될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검은 원피스를 입고 나온 여자는 자신의 처지와 결혼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다. 표현이 적고 무덤덤한 성격이니, 양쪽 집안의 간섭에도 그를 귀찮게 하지 않고 안주인 노릇을 할 것 같았다.<br/>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내의 대학교 졸업에 맞춰 네 번 만나고 식을 올렸다. 네 번의 만남도 상견례, 결혼식과 예물, 신혼집 인테리어를 결정하기 위함이었다.<br/>늘 본가의 성 비서와 성북동 유성물산 사모가 동반했다. 대부분의 결정은 그들이 했고 아내가 될 여자는 지독할 정도로 의사표현이 없었다.<br/>결혼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생각한 대로 바라는 것도, 요구하는 것도 없는 아내였다.<br/><br/>「이혼해요, 우리.」<br/><br/>딱 하나, 빼고.
1. 작품 소개“이혼해요, 우리.”사랑 없는 정략결혼.결혼은 비즈니스일 뿐이라 생각했던 남자, 최무원.그런 그에게 이혼을 말한 여자, 이유래.3년이 지난,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낯선 관계로 재회하는데…….“우리 연애할래요?”아내가 돌아왔다.그런데 이 여자, 그가 알던 예전의 ‘그 여자’ 맞아?멈추었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하필이면 돌아온 아내에게.2. 미리 보기자극적이고 아찔한 꿈의 상대가 하필이면 이혼한 전처일 것은 뭔가. 아무리 속궁합이 좋았다고 해도, 세상이 멸망해서 여자가 딱 하나 남았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아니어야지. 자존심도 없냐?무원은 땀에 젖은 겉옷과 속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욕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을 머리부터 덮어쓰자 조금씩 이성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는 여느 때처럼 냉정하게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답은 곧 나왔다. 파일로의 새 담당자라는 여자가 문제였다. 하필이면 전처와 같은 이름, 이유래.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도 아닐 터. 그런데도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고작 이름 세 글자에 동요하는 자신이 우습다.‘아니, 어쩌면 동요가 아니라 발정인가?’샤워를 하고 나자 잠이 싹 달아났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서 그대로 출근을 했다.집무실 책상에는 남 실장에게 지시했던 파일로와 A사의 계약 관련 서류가 놓여 있었다. 무원은 직접 진한 커피를 한 잔 내린 뒤, 파일로의 서류부터 꺼냈다.파일로. 미국 출신의 디자이너 로버트 파일로가 4년 전에 창립한 신생 SPA브랜드. Zara, H&M, 유니클로로 대변되는 1세대 SPA브랜드에서 고급화, 특성화 전략을 더한 차세대 브랜드로 남성복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중저가 라인인 데다가 실용성과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잡아낸 센스 덕에 미국 현지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빠르게 지점 수를 늘려가는 중이다.정상적으로 절차가 진행되었다면 성원백화점이 한국 1호 매장이 되었을 터였다. 사업 가치를 따지면 이대로 계약을 날리기엔 아까운 브랜드다. 영업부장이 계약해지를 두고 난감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무원은 첨부된 담당자의 명함을 꺼낸 뒤, 서류를 덮었다.하루 종일 바쁜 업무가 이어졌다. 다행히 문제가 된 언론기사를 대부분 차단하는 데 성공했고, 이어진 실무진 회의에서는 갑작스러운 계약해지로 리뉴얼에 들어가는 매장들의 대처방안에 대해 논의했다.세 시간에 걸친 긴 회의를 끝내고 집무실로 돌아가자, 남 실장이 뒤따라 들어왔다. 그는 무원이 자리를 비운 동안 받은 연락과 메모에 대해 브리핑했다.“J물산 전무께서 주말에 라운딩 스케줄이 괜찮으신지 묻는 전화가 왔었습니다. 경제지인 U저널에서 ‘이달의 경제인’으로 대표님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요청이 왔었고, 본가의 성 비서님께서 연락하셨습니다.”표정변화 없이 브리핑을 듣던 무원은 ‘성 비서’란 이름에 멈칫했다.본가의 성 비서, 성선희는 20년 넘게 아버지의 개인비서로 지내며 본가 살림을 맡아 하고 있었다. 세 번의 결혼과 한 번의 사별, 두 번의 이혼을 거친 아버지가 유일하게 오랜 세월 옆에 두는 여자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그녀와 무원의 관계는 애매하고 조심스러웠다.“본가에 무슨 일 있습니까?”“특별한 문제는 아니고 한번 들러주십사 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신다고.”얼굴 본 지 오래되었으니 한번 들르라는 말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 직접 해도 될 말을 꼭 성 비서를 통하는 게 아버지다웠다.그는 수면부족으로 뻑뻑한 눈가를 누르며 업무를 지시했다.“J물산 전무에게는 다음으로 미루자고 좋게 전하세요. U저널과는 이미 성원건설 시절에 인터뷰했으니 이번에는 거절하십시오.”“알겠습니다.”“그리고 파일로 담당자와 약속 잡았습니까?”“네. 이틀 뒤로 정했습니다.”“내일로 합시다. 시간 끌어 좋을 문제는 아니니까. 어차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그쪽 아닙니까?”메모를 하던 남 실장의 눈이 커졌다. 평소 급박하게 약속을 정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답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베테랑 비서답게 내색하지 않았다.“알겠습니다. 그럼 내일로 정하겠습니다.”“그 외에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오전에 임원회의가 있고 저녁에는 한경모직 한 회장님과 식사 약속이 있으십니다.”“한 회장님과의 약속 취소하십시오. 컨디션이 안 좋습니다.”남 실장의 눈이 더욱 커졌다. 지금까지 대표가 한경모직 한 회장과의 약속을 취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한 회장은 중요한 인물이었다. 성원백화점에 있어서나 무원 개인에게 있어서도. 남 실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갔다.무원은 따로 빼두었던 파일로 담당자의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정확히는 이유래라는 이름을.스스로 생각해도 좀 미친 것 같지만 빨리 확인하고 넘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어젯밤 같은 이상한 꿈을 꾸거나 며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게 뻔했다. 뚜렷한 원인 없이 며칠씩 잠 못 드는 날이 이어지는 것. 이혼한 뒤로 가끔 나타나는 증상이었다.평소보다 일찍 백화점을 나온 무원은 직접 차를 운전했다. 붐비는 도로, 정지신호에 멈춰 선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시계 안의 날짜로 향했다. 역시나.무관심한 아버지가 어쩐 일이신가 했더니 시간이 참 빠르다. 생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어머니의 기일이기도 했다.무원의 생모는 그를 낳다가 죽었다. 사인은 임신중독증. 세계적으로 매년 5만 명 이상의 산모가 사망하는 요인으로 알려진 질환이지만 남자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병이기도 했다.평생을 알 수 없는 병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무원의 아버지, 최중원 회장은 깊이 좌절했고 오래 방황했다. 두 번의 재혼을 하긴 했지만 성원그룹 내에서 불리한 제 입지를 보강하기 위한 비즈니스 차원이었고 자식도 두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무원은 결혼에 대해 어떤 기대감도 가지지 않았다.결혼을 결정한 것도 철저하게 사업적인 계산 때문이었다. 무원이 원한 것은 후계자 경쟁에 이득을 줄 수 있는 처가였다. 그런데 차고 넘치는 혼처 중에서 원하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상대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가 원하는 집안에서는 사촌형인 이원을 원했고, 그를 원하는 집안과는 수지타산이 안 맞았다. 회장 아들이지만 장손이 아니라는 불리한 조건과 큰어머니인 윤은미 여사의 방해공작 때문이었다.유일하게 이원이 아닌 무원에게 관심을 보인 곳이 유성물산이었다. 당시 유성물산은 금싸라기 땅이라 불리는 P지구에 재개발 사업권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적인 불황에 따른 경제상황 악화라는 직격탄을 맞은 건설업계에서 P지구는 황금의 땅 엘도라도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성원건설을 키우고 싶었던 무원에게는 딱 맞는 혼처였다.물론 딱 맞는 혼처가 그를 찾아온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자는 유성물산 이 회장이 본처인 성북동 사모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서 낳은 ‘혼외자’였다.중매쟁이가 이 혼담을 가져왔던 날, 윤 여사는 우리 집안을 뭘로 보냐며 펄펄 뛰었다. 무원은 개의치 않고 혼담을 진행시켰다. 윤 여사를 제대로 엿 먹이는 혼사라는 데 뿌듯했고, 결혼식을 세 번이나 한 아버지를 둔 마당에 남의 집 가정사에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무엇보다 첫 만남에서 아내 될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검은 원피스를 입고 나온 여자는 자신의 처지와 결혼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다. 표현이 적고 무덤덤한 성격이니, 양쪽 집안의 간섭에도 그를 귀찮게 하지 않고 안주인 노릇을 할 것 같았다.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내의 대학교 졸업에 맞춰 네 번 만나고 식을 올렸다. 네 번의 만남도 상견례, 결혼식과 예물, 신혼집 인테리어를 결정하기 위함이었다.늘 본가의 성 비서와 성북동 유성물산 사모가 동반했다. 대부분의 결정은 그들이 했고 아내가 될 여자는 지독할 정도로 의사표현이 없었다.결혼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생각한 대로 바라는 것도, 요구하는 것도 없는 아내였다.「이혼해요, 우리.」딱 하나,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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